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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당신의 필요와 요구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고딕 양식의 집들은 생뚱맞다. 개성 없이 복제된 일련의 집들은 한껏 멋을 주려다가 실패한 공간처럼 보인다. 시골에 있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촌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속물스러움은 ‘나는 절대 저런 끔찍한 건물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풍경 속에서 살고 싶다’고 꿈꾼다. 이쯤 되면 우리의 욕망이 정체불명의 공간을 낳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인지도 혼돈스럽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당신의 필요와 요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여는 신은경은 이런 식으로 공간의 안과 밖을 다룬다. 처음에는 앤티크 의자와 조야한 벽화가 뒤죽박죽된 결혼식장이나 스튜디오의 키치적인 모습에 주목하더니 이제는 아예 공간 밖으로 나가 자연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풍경까지를 작업 대상으로 삼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루 필요량’이라는 이름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동안 먹어야 하는 영양제를 낱알씩 찍어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사람이 배제된 채 오직 공간과 대상만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물질의 유혹에 기꺼이 흔들리는 당신 혹은 나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신은경의 사진은 선언적이거나 비판적이거나 스펙터클하지 않고 무심하고 담담하다. 덕분에 사진 속에서 나를 발견해도 아무도 못 본 척 시치미를 뗄 수 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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