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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동굴



금값이 비싸다. 김익현은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방송을 통해 이 반짝이는 금붙이를 처음 보았다. 나랏빚을 갚겠다고 장롱 속 돌 반지를 꺼내들고 긴 행렬을 이룬 모습은 진풍경이기는 했다. 당시 이 금 모으기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했는데, 이웃이든 나라든 어려움에 처하면 황금도 기꺼이 내놓는 특유의 미덕이라든지, 나라가 잘못한 살림을 백성이 해결하게 만드는 대국민 이벤트라는 식이었다. 도대체 금이 무엇이기에 빚더미에 빠진 나라마저도 구하는 것일까. 금 모으기 방송을 보고 자란 김익현이 훗날 사진가가 되어 이 반짝이는 것을 향한 욕망의 뿌리를 찾다 도달한 곳은 금은방이 아니라 금을 채굴하던 광산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금광이 많았다. 우리 시대에 금 모으기 열풍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는 금광 개발에 미친 시대였다.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이 정신없이 금광을 파헤치던 그때, 금맥을 찾으면 신문사를 인수하고 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모든 기적이 가능했다. 이제 버려지다시피 입구를 막아놓은 폐금광 앞에서, 소설가도 독립운동가도 머슴도 달뜨게 했던 그 열풍을 확인할 길이란 없다. 김익현이 어렵사리 접근한 옛 금광 내부에는 다만 어둡고 깊은 갱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허무하리만치 텅 빈 구멍이다. 금은 물론이고 반짝이는 모든 욕망들은 저 어두운 곳에서 나온다. 아니면 모든 반짝이는 것들을 거둬내고 나면 텅 빈 구멍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려진 금광에 이르러 김익현이 목격하는 것은 수탈의 역사와 일확천금의 부푼 꿈마저도 삼켜 버린 동굴이다. 아무것도 없는 동굴 속에는 시간과 기억과 욕망을 삼킨 블랙홀이 숨어 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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