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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두 개이면서 하나인



벽에 걸린 팽팽한 빨강 풍선과 식탁 위에서 시들어가는 빨강 풍선은 전혀 다른 물리적 상태에 있지만 실은 같은 풍선이기도 하다. 원래 벽에 걸린 그림은 식탁 위 풍선의 과거 모습이었다. 작가는 사진 속에 보이는 세트를 만든 뒤, 그림을 걸 위치에 풍선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액자 속에 담을 만큼만 이미지를 오려내어 중국 그림 공장으로 보낸다. 익명의 어느 화가가 자신이 찍은 풍선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동안, 그 실제 대상인 풍선은 자신의 ‘초상화’를 기다리며 서서히 늙어간다. 이윽고 중국에서부터 풍선 그림이 도착해 벽에 걸리면 과거의 풍선과 현재의 풍선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존 세르빈스키는 오히려 물리학자이기에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우유 방울이 떨어지면서 표면에 왕관 모양을 만들고, 말이 힘차게 뛰어오를 때는 두 발로 함께 도약한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하지만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볼 수 없던 세계였다. 연속이나 고속 촬영은 비가시적인 시간의 흐름까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긴 시간의 흐름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 이럴 때 보통은 화려한 꽃이 시들 때까지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두거나, 식탁 위의 싱그러운 사과가 쭈글거릴 때까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관찰하는 식이다. 그러나 사진가이면서 하버드대의 응용물리학자인 세르빈스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좀 더 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리학자인 그에게도 시간은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다. 물리학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살면서 느끼는 시간은 일종의 기다림 같은 것이었다. 결국 그의 사진이 담는 시간은 나의 과거 모습인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의 흐름,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이다. 이 간극을 위해 머나먼 중국, 이름 모를 화가의 손길을 빌렸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일어나는 숱한 변수와 우연까지를 계산에 넣기 위해.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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