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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르누아르, 여체 탐닉은 무죄?


목욕하는 두 여자, 캔버스에 오일, 1918-1919년(출처 :경향DB)



얼마 전 <르누아르>(2012)라는 영화를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남프랑스 코다쥐르에서의 르누아르의 말년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다. 이야기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부탁으로 모델 일을 하러온 ‘데데’라는 배우 지망생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말년의 르누아르에게 예술혼을 다시 불태우게 만든 마지막 모델이자 매혹적인 뮤즈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훗날 거장의 아들 중 드물게 성공한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부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르누아르는 전쟁 중에도 꽃과 여체를 주로 그렸다. 아들 장은 아버지에게 도덕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가는 이런 시기에 속물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한다. 르누아르는 전쟁에서 두 아들의 팔과 다리를 잃은 것으로 자기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 자체가 우울한데 그림이라도 밝아야지. 그림은 기쁨에 넘치고 활기차야 돼. 비극은 누군가가 그리겠지”라고 응답한다.

그런 까닭에 르누아르는 늘 살아있는 것을 그렸다. 무엇을 그리든 생생한 모델이 필요했다. 특히 그는 여성의 살아있는 육체의 보드랍고 빛나고 눈부신 모습에서 삶의 환희와 생명을 보았다. “데데의 가슴은 금빛이 감도는 가슴이야. 매끄럽고 둥글고 탄력이 있어. 그걸 못 느끼면 삶도 인생도 이해 못해.”

르누아르는 살아있는 여체를 그림으로써 전쟁과 황폐한 인간성에 대한 궁극적이고도 본질적인 회복과 치유를 성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극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온몸은 물론, 오리발처럼 굳어진 손을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녹여가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노년의 르누아르. 그 때문에 그림 속 여체의 모습은 예전보다 훨씬 거칠게 느껴지지만, 따뜻하고 어루만지는 시선만큼은 더욱 풍부해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르누아르가 탐미했던 빛과 바람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아프고, 어지럽고, 아련한 풍경이다. 빛의 황홀, 그 시대가 그립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