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모이세스

마리엘라 산카리와 그의 쌍둥이 언니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우리가 흔히 모세로 알고 있는 작가의 아버지 ‘모이세스’는 어느 날 스스로 생을 마쳤다.

타깝게도 어른들의 만류로 어린 자매는 아버지의 마지막 주검을 보지 못했다. 유대인의 전통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의 방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별 의식을 생략한 채 상실감을 견뎌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자매는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내내 의심했다. 아버지는 현실 세계에서는 사라졌지만, 마리엘라의 마음속에서는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아버지의 환영과 마주쳤고, 카페 한쪽에서도 아버지를 봤다고 착각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속 아버지도 같이 늙어갔다.



Mariela Sancari, Untitled from the series Moises, 2012



결국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아버지 대역을 해 줄 70세 전후의 노인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그 나이였다. 그렇게 만난 가상의 아버지들은 실제 아버지가 입었던 점퍼나 스웨터를 입고 작가의 카메라 앞에서 짧은 순간이나마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때로는 노숙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말쑥한 노신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작가의 머리카락을 빗겨주거나 안아주기도 했다. 이 흔치 않은 그리고 쉽지 않은 시간을 통해 작가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아버지가 아니라, 말 못할 괴로움 때문에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비로소 되찾는다. 마리엘라는 이제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보지 않으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연된다는 죽음학의 설명을 믿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름 그림자 영혼  (0) 2015.10.15
붉은 실  (0) 2015.10.08
살갗의 무게  (0) 2015.09.17
증거  (0) 2015.08.27
바그다드 호텔  (0) 201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