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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미친 사람을 그린다는 것?


낭만주의의 기본적인 정조는 ‘동경’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상상적인 것, 무한한 것, 먼 곳에 대한 동경을 모토로 한다. 현실감은 좀 떨어지고, 이국적인 것, 관능적인 것, 악마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탄생한 낭만주의는 천재와 광기의 예술가 개념을 만들었다. 통상 예술가를 생각할 때 과도한 감정, 자유와 방종, 괴팍함, 혼돈을 떠올린다면 낭만주의자로서의 예술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먼 곳에 대한 사랑 혹은 동경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시간적으로는 중세와 바로크 시대, 공간적으로는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같은 근동과 인도와 중국, 일본 같은 극동에 대한 향수를 가진다. 낭만주의자들이 하렘의 여자들과 말을 탄 모로코인과 같은 근동지방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화가들은 전쟁과 혁명을 많이 그린다. 침몰한 난파선과 학살 장면은 그들의 단골 메뉴다. 게다가 낭만주의 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그림이 동물화다. 아마 인간의 야만과 야수성을 동물에 투사해서 그렸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광인들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아마 낭만주의자들은 광인들이 자신들처럼 세상에 버려진 고아, 심지어 자신들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2세에 요절한 T 제리코는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10여점의 이름 모를 광인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림 속 남자는 붉은 술을 모자에 달고, 한쪽 어깨에는 담요를 두르고, 커다란 동전을 훈장처럼 목에 걸고 있다. 바짝 마른 얼굴에 흘겨 뜬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고, 입술은 굳건히 닫혀 있다. 그 누구와의 소통도 거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희한한 복장은 나폴레옹 시대의 군복을 닮았는데, 놀랍게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가 실패한 지 5년 후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초상은 나폴레옹과 함께 영영 사라져버린 찬란한 영광의 시대를 동경하는 프랑스 군중의 무기력함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