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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밤에

윤아미, At Night 2, 2011


밤은 천의 얼굴이다. 그때는 한없이 울적거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생각이 가볍고 명료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은 무서움과 그리움 사이를 줄타기도 한다. 단지 해가 사라진 시간이라고 하기에 밤은 너무도 묘해서 달밤은 해가 뜬 낮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윤아미가 밤을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자신에게 빗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에게 밤은 숨겨진 또 다른 내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감정이든 사람이든 숨길 때는 뭔가 사연이 있기 마련. 너무 아끼거나 남 앞에 드러내기 멋쩍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감춰 버릇한다.

그러므로 윤아미가 밤에 만나는, 혹은 밤에만 꺼내놓는 자신은 공인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아이처럼 엉뚱하고 짓궂기도 하고 때로는 은밀한 욕망덩어리기도 하며 또 때로는 통념과 선입견에 상처받은 외로운 영혼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분신은 몸 위에 빨간 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 상처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그 화살이 날아올 과녁이기도 하다. 이 빨간 점을 지닌 또 다른 나와 함께 작가는 밤마다 남의 담장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남자 소변기를 점령해 보기도 하며, 놀이터를 활보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장면들은 꿈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림책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윤아미의 사진 속에서 밤은 단연코 어른들의 동화를 위한 시간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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