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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본다는 것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디 노토는 ‘본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는 젊은 사진가다.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목격 혹은 기록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더 크게는 본 것을 기억하고 본 것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윤리적인 태도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사건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이 말에 유독 민감하고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가는 것과 보는 것의 연관성은 어떻게 될까. 반드시 현장에 가서 본 것만이 진정성을 지니는 것일까. 가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혹시 습관처럼 사건을 ‘채집’하려고 가는 것은 아닐까.

조르지오는 ‘아랍의 봄’ 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혁명의 열기와 상처, 절박한 외침을 인터넷을 통해 목격했다. 스마트폰이나 소형 카메라로 찍은 ‘아랍의 봄’에 관한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은 지금도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돌아다닌다. 그 이미지들의 완성도는 훌륭하지 않지만, 혁명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이 직접 타전한 기록물로서의 절실함은 훨씬 강력하다. 그러나 이미지 홍수의 시대, 시민들이 찍은 분쟁 지역의 사진들은 생각보다 관심을 받지 못한다. 조르지오는 이런 장면들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은 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재촬영했다. 평소 사진을 찍을 때처럼 모니터 화면에서 자기식의 구도를 잡았다. 이렇게 해서 ‘아랍의 봄’에 관한 한 권의 사진집도 엮어냈다. 그가 본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기록이다. 말하자면 2차 목격자인 셈이다. 사진가로서 잘 본다는 것, 그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거리라고 그는 말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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