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부부간의 우정이 싹트다


‘이삭 마사 부부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622년께


아내가 남편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려놓았다. 모델은 네덜란드 할렘의 부유한 상인 이삭 마사(Isaac Massa)와 그의 아내인 시장의 딸 베아트릭스 판 데어 란(Beatrix van der Laen)이다. 당시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부부 초상화는 각각 다른 캔버스에 그려져 마치 결혼식 장면처럼 나란히 걸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부부를 한 화면에, 그것도 야외에 배치한 프란스 할스(1580~1666)의 그림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더군다나 당시로선 흔치 않게 여자가 남자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려놓았는데,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호방하게 웃고 있다. 여성의 표정은 또 어떤가! 당당하고 친근한 그녀의 웃음은 결혼의 만족도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게 하지 않는가.


이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의 결혼기념 초상화로 당시 중산층의 결혼이 정략결혼이 아닌 남녀 간의 우호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심장에 댄 남자의 오른손은 사랑을, 바로 옆 엉겅퀴는 정절을 표현한다. 여자의 오른손 검지에 보이는 두 개의 반지와 아이비 넝쿨 역시 사랑과 우정을 의미한다. 


할스는 삶을 사랑하고 세계를 긍정했던 신생공화국 네덜란드 시민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여유롭고 견고한 중산층 부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 중산층은 부부와 자녀 중심의 핵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아직 18세기만큼 아이들의 독립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가 높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부부관계만큼은 더욱 더 소중하고 절실해져 가는 시기였다. 이로써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 화가들은 부부 간의 사랑을 묘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정원을 배경으로 한 젊은 부부, 체스를 두는 부부, 하나의 술잔을 나누어 마시는 부부의 모습이 자주 그려지기 시작했다. 부부관계의 핵심이 우정과 파트너십으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구인다운 실용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