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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붉은 발과 성소수자

이번주 내내 낙원동에는 ‘낙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잊지 마세요. 5월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라고 적힌 분홍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질병으로 취급했던 동성애를 1990년 5월17일에야 비로소 질병 분류에서 삭제했고, 2004년 5월17일 미국 최초로 매사추세츠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 의미 깊은 날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이성애 중심 문화는 종교의 산물이라고 정의 내린 루이 조르주 탱의 제안으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선포되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 ‘무제(피)’, 1992, 플라스틱 비즈


쿠바 난민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한 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는 동성애자가 범죄자와 다를 바 없던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연인을 에이즈로 잃고, 그 역시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어가면서도 유색인종, 성소수자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했다.

그가 1992년 처음 발표한 설치 작품 ‘무제(피)’는 소수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업이다. 그는 전시장 통로에 붉은 구슬로 만든 발을 설치했다. 관람객은 이 발을 통과해야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발은 성소수자를 은유한다.

그들과 접촉하는 순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질병에 감염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두려워한다. 그 불쾌함과 불안감을 촉각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이 작품은 에이즈로 공포에 떨던 시절 성소수자와의 접촉을 꺼리던 사람들의 혐오 가득한 태도에 대한 작가의 심리상태를 전한다. 이후 이 작품은 구슬의 색깔과 설치 면적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전시됐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는 성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장애인 복지시설을 혐오시설이라 규정하며 설립을 반대하던 어느 지역 주민들의 단체 행동에서도 공포에 가까운 혐오의 시선을 봤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환경이 내 삶에 더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절대로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토레즈의 작품은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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