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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빚쟁이의 느린 그림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20년 화가 생활에 완성작은 50점이 좀 넘고, 남아있는 것은 30점 정도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전작이 거의 걸작 취급을 받았음은 물론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에 의해 자주 도난의 표적이 되었다. 유명 화가치고 아주 적은 수의 작품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그림을 가끔, 그리고 천천히 그렸기 때문일까? 43세까지 살았으니 어림잡아 1년에 2~3점 정도를 그린 셈. 


더불어 베르메르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은밀하며 묘연한 느낌의 실체는 무엇일까? 14명의 자녀가 득실거리는 소란스러운 집 안에서 어떻게 한결같이 고요하고 적막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베르메르의 이런 기질과 성향은 범죄자 집안 출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젊은 시절 칼부림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지폐 위조범이었다는 사실은 작품에 대한 미묘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결혼하던 해에 비로소 정식 화가가 된 베르메르는 처가살이를 해야 했다. 장모의 입김이 강했던 처가의 주수입원은 집세 수입과 사채놀이였다.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경제가 악화되자 채무자의 지불이 늦어졌고, 베르메르는 대부금의 회수와 이자 징수를 위해 곳곳을 다녀야만 했다. 바로 빚쟁이가 된 것인데, 그 탓에 그림에 집중할 여유를 잃어갔다.


장모가 베르메르에게 금전 관련 업무를 맡긴 것으로 보아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것 같고, 그에게 남다른 사업가 기질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수학적 재능은 사업에만 소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런 경향은 카메라옵스큐라(카메라의 전신)를 통해 치밀하게 계산해서 그리는 베르메르식 그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베르메르 회화의 매력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음모가적 기질과 자신의 섬세한 성향이 맞물려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물론 두 기질의 근원은 하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