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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샤갈의 어머니 사랑


샤갈, 화덕가의 어머니, 1914년


 

샤갈은 가난이 주는 은총을 몸소 체험한 화가다. 러시아 비테브스크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물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풍요로운 시기였다. 무엇보다 유대종교 하시디즘(Hassidism)의 영향이 크다. 그보다 더 샤갈의 예술에 끼친 강력한 동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였다. 


샤갈은 가난한 나머지 늦은 나이까지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미술만큼은 재주가 뛰어나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어머니는 아들을 애달피 여기며 화가로서 인정하고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그래, 내 아들아. 난 알아, 넌 재능이 있어. 우리 집안에서 어떻게 너 같은 애가 태어났을까?” 어머니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다만 몇푼이라도 벌기 위해 구멍가게를 차려 가족을 열정적으로 돌보았다. 샤갈은 “통 속에 든 청어, 귀리, 각설탕, 밀가루, 푸른 봉지에 담긴 초, 이런 것들을 팔았다. 동전이 짤랑거렸다. 농부들, 상인들, 성직자들이 낮은 소리로 속삭이고 냄새를 풍겼다”고 회상한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분은 시적이지만 침묵을 지키는 민중의 가슴을 지녔다.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는 수염, 잿빛이 도는 밤색 눈동자, 황토색으로 그을린 주름진 피부, 노랗게 떴어도 맑은 그의 얼굴엔 가끔 미소가 떠올랐다”고 쓰고 있다.


이런 샤갈의 부모가 화덕 앞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마치 유치원 아이의 그림처럼 개념적이다. 중요한 사람은 크게,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은 아주 작게 그려졌다. 화면의 중심을 꽉 채운 어머니는 마치 마술사 같은 손놀림으로 일용할 빵을 뚝딱 만들어낼 태세다. 반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앞치마보다도 작고 늙게 그려졌다. 샤갈에게 엄마는 당당한 연금술사와 같은 존재였다면 아버지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샤갈의 어머니 사랑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