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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선승혜의 그림 친구]‘부드러움의 힘’

한국문화에서 ‘곱은옥’은 부드러움의 상징 원형이다. ‘곱은옥(曲玉)’은 누에고치가 살짝 구부러진 듯한 모습으로 옥을 깎은 꾸미개다. ‘곱은옥’은 길을 상상하게 한다. 곱은옥은 아시아대륙 가운데 한국, 만주,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다. 곱은옥은 한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를 풍미했다. 중국의 홍산문화에 ‘C’자형 옥기가 있지만, 곱은옥과 모양도 크기도 다르다. 손에 쥐면 쏙 들어오는 크기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상징적 표시물로 어울린다. 긴 이동의 여정에서 곱은옥을 가진 자가 우리의 지도자라는 상징 같다. 곱은옥으로 연결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시아의 고대 미감을 상상해본다.

곱은옥의 모양은 부드러움이다. 비정형 윤곽선은 각지지 않고 흐르듯 부드럽다. 표면은 부드러운 촉감을 위해 정성껏 갈려 있다. 손에 쥐고, 가슴에 품어도 상처를 주지 않는 부드러움이다. 곱은옥을 손으로 잡을 때, 전쟁과 생존의 도구였던 칼, 창, 도끼를 쥐는 것과 분명히 다른 마음가짐이다. 부드러운 비정형의 미감은 한국조각의 원형으로도 손색없다.

‘천마총 금관’(부분), 신라, 5~6세기, 국보 188호



곱은옥의 색은 바램의 빛깔이다. 고정된 재질보다 상황에 맞는 재료를 찾는다. 동물의 어금니나 뼈, 돌로 만든 초기의 재질로 시작해 비취, 백옥, 수정까지 다양한 재료를 곱게 가공했다. 비취의 푸릇푸릇한 초록빛으로 건강한 생명을 기원했다. 백옥으로, 우윳빛으로, 우아함으로 고움을 지키고 싶었을까? 수정으로 빛을 통과시켜 빛을 내는 투명의 신비감을 원했을까? 바람을 담기 위한 곱은옥의 최고 재료는 현지에서 구하기도 하고, 먼 타국에서 수입하기도 했겠다.

곱은옥의 단단함은 부드러움의 힘이다. 단단하게 살아남는 힘이다. 곱은옥을 사랑한 신라사람들은 황금나무 같은 금관에 곱은옥이 주렁주렁 열매 맺히게 꾸몄다. 금관총의 금관은 비취의 곱은옥을 많이 달아서 강한 힘을 과시했다. 반면 천마총의 금관은 우윳빛 곱은옥으로 황금빛과 어우러져서 우아한 힘을 보여주었다. 부드러운 미감의 절정이다. 다시금 한국문화의 외유내강의 힘에 반하게 된다.


선승혜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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