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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세상의 모든 슬픔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동판화, 1903년


 

죽은 아이를 안고 통곡하는 어미를 그린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인간이 고통받는 짐승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것은 서양미술사의 반복되는 소재 ‘피에타(Pieta·연민)’의 현대적 버전이다. 미술사상 이보다 더 사실적이고 극단적이며 강력한 슬픔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다.


케테 콜비츠(1867~1945)는 소외받고 학대받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하여 사회변혁을 꿈꾼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이다. 법학자임에도 법관생활을 하지 않고 미장이로 살아온 아버지와 유명한 신학자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콜비츠는 어릴 적부터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었다. 연애에는 젬병이었던 그녀는 빈민촌의 양심적인 의사인 칼 콜비츠와 결혼하면서 노동자를 포함한 빈자들과 동고동락하게 된다.


콜비츠는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린 적이 없다. 수채화나 유화도 그리지 않았고, 오로지 목판화, 에칭 등 판화와 드로잉을 주로 제작했다. 콜비츠는 프리다 칼로가 그러하듯 삶과 예술이 분리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자신이 체험한 삶 속에서 느끼는 감정만을 흑백 컬러로 드러냈다. 작가의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아이를 잃은 어미의 비극을 그린 이 작품은 11년 후에 자신에게 일어날 비극을 예감한 자화상이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둘째아들 페테를 잃었던 것! 페테가 열여덟살의 나이로 자원입대하겠다고 나섰을 때, 콜비츠는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했을 정도로 전쟁에 나가기를 종용했던 당사자다. 더욱이 2차 세계대전에서 똑같은 이름의 손자를 잃게 되며, 이것이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콜비츠의 대표작인 전쟁 연작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했다.


“나의 작품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구제받을 길 없는 자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을 위해,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 -케테 콜비츠-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