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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쇼룸

아날로그 시절의 앨범 사진은 기술적으로만 보면 거의가 B컷이다. 초점은 흔들리고 신체의 일부는 구도 밖으로 잘려나가기 일쑤다. 그럼에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꽤 진지했다. 똑딱이 수준의 카메라여도 필름을 사고 사진으로 뽑아내는 데는 값을 내야 했기에 촬영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그만큼 카메라를 쥔 사람의 주문이란 절대적이었다. 의욕이 클수록 모두가 얼어붙은 자세로 나오는 정반대의 결과가 허다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같아진 셀피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불편함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누르면 그뿐이다. 엉뚱한 표정, 흔들리는 동작이 담긴 B컷을 일부러 즐긴다.


Willem Popelier, Showroom, 2011


네덜란드 사진가 윌렘 포펠리에는 이런 표정들을 수집한다. 그는 전자제품 대리점 등에서 설치해 놓은 테스트용 캠 앞에서 사람들이 주변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촬영 놀이에 열중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포펠리에는 진열대를 돌며 지워지지 않은 채 컴퓨터에 저장된 이런 이미지들을 화면으로 띄운 뒤 재촬영한다. 이 작업의 제목은 ‘쇼룸’. 한 남자의 인생을 통째로 생중계하는 영화 <트루먼 쇼>처럼 우리가 우리만을 바라보며 사진 촬영을 즐겼다고 착각하는 사이, 도처에 널린 카메라는 우리의 동선과 표정까지를 캡처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전 세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의 수는 2억5000만대. 여기에 쇼룸의 캠이나 스마트폰까지 합치면 무수히 많은 눈들이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심은 금물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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