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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숲속의 섬

고양시편을 마무리하면서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백마역 옆에 있었던 ‘화사랑’이라고 하는 카페이다. 198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신촌역에서 경의선에 몸을 실어 4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백마역에 내렸다. 백마역에서 5분 거리, 철길 우측에 위치한 화사랑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림이 있는 사랑방’이라는 의미의 ‘화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주인장의 여동생 김애자씨가 시낭송회나 음악회 등의 다양한 예술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의 낭만과 정신을 담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박사과정 때인 1980년대 후반.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백마역의 화사랑을 예로 들며 주변사람들을 설득하곤 했었다. 지금도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술활동의 성공 모델로 화사랑에 대한 아련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마침 일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화사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 친구의 부인과 함께 화사랑을 이끌어 온 김애자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일산 풍동 애니골 입구에 있는 ‘숲속의 섬’이라는 카페가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벚꽃이 운치있게 흩날리는 진입로 안쪽으로 아담한 단층짜리 벽돌조 건물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담쟁이로 휘감긴 건물의 외관과 함께 인테리어도 마치 1980년대에 와있는 듯 질박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69세라고는 믿기지 않게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 자신이 운영해 온 카페 변천사를 내게 전해주었다.

 

화사랑에서 시작하여 ‘썩은 사과’ ‘초록 언덕’ ‘섬’ 그리고 지금의 ‘숲속의 섬’에 이르기까지.  카페 안에는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60여권의 방명록이 있다.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이 방명록에는 1980년 화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즐겨 찾았던 시인과 정치인 등 많은 저명인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쪽에는 오래된 풍금과 업라이트 피아노, 심지어 그랜드 피아노까지 놓여 있다.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오랜 기간 시낭송회를 이어오고 수많은 음악인들이 거쳐 갔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성악을 하는 나도 동료들과 함께 저 그랜드 피아노에 맞추어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를 한 번 했으면 하는 충동이 든다. 메뉴판에 씌어 있는 ‘since 1980’의 글귀처럼 화사랑, 아니 숲속의 섬 역사에 나도 하루쯤 넣어보고 싶다.

 

<윤희철 |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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