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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안녕, 신흥동


김영경, 꽃무늬 장판, 2014

지난달 군산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은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하나 반나절쯤 지내다 보니 따로따로 왔는데 단체 관광객이라도 되는 양 다들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파리에서 등산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한국 사람인 것처럼, 맛집이라 소문난 곳에 한 시간씩 줄을 서고, 지도에 박힌 답사 코스를 따라 걷고 있으면 분명 외지인이다. 그곳은 대개가 신흥동, 장미동 등 군산항 일대다. 일제강점기 미곡을 수출하면서 번성했던 군산의 씁쓸한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군산시가 공들여 다듬어 놓은 박물관이나 적산 가옥이 아니라면 이곳 또한 평일에는 쓸쓸해 보일 게 분명했다. 채만식이 <탁류>에서 그려낸 미곡수탈 시대의 천태만상과 우울은 이제 군산의 옛 건물들 속에서나 그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김영경은 사진으로 이렇듯 과거와 동거하는 군산을 담는다. 특히 ‘안녕, 신흥동’은 이름 그대로 일제강점기 새롭게 부흥한 동네를 기록한다. 외지인들이 눈도장을 찍고 가는 몇몇 장소가 아니라면 이곳은 산 밑에 놓인 1970~1980년대풍의 소박한 주택가일 뿐이다. 그마저도 정비사업 계획에 따라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하지만 도시의 민낯이라 할 신흥동의 오늘은 관광객의 부산한 발걸음 속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누수를 방지할 요량으로 꽃무늬 장판을 씌워둔 담벼락과 그 옆으로 진짜 꽃이 피는 고즈넉한 골목길은 실은 적산가옥보다도 더 눈길을 받아 마땅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초라하다. 김영경이 말하는 ‘안녕’은 이런 소외받은 풍경에 말을 거는 인사이자, 곧 사라질 운명에 고하는 작별 인사이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산보객이 되지 못한 채 관광객 틈에 끼이느라 이런 골목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대신 과거 삼봉이라 불린 여인숙을 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만든 ‘여인숙 갤러리’에서 이 골목길 사진을 만났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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