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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여성 화가로 산다는 것


19세기에 여자가 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지적, 사회적, 정치적 경험 속에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안정을 모토로 하는 중산층 가문의 여자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인상파 최초의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그랬다.

모리조는 집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화가에 입문했고, 재능에 있어서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예술과 결혼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갈등했다. 결혼을 거부할 만큼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작품은 아마추어의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즉 서사적 맥락과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취약해 보였다. 모리조의 작품은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부족했다.

모리조 자신도 자신의 자유와 창의력을 제한하던 개인적·사회적 제약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튈르리공원이나 뤽상부르공원의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자유, 미술품 가게의 진열장 앞에 멈춰 서고, 교회나 미술관에 들어가고, 밤에 오래된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자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며, 그런 자유가 없는 사람은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고백은 여성 화가뿐 아니라 당대 모든 여염집 여자들의 억압의 일상과 그에 대한 일탈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모리조의 인생을 보면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은, 그녀가 프랑스 화단의 이단아로서 문제작을 뽑아내던 마네와 평생 비밀스러운 연인 상태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는 비판과 풍자, 유머와 위트 같은 예술성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똑똑하고 재능 있고 강렬한 포스를 가진 여성 화가가 왜 아마추어적인 상태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더 이상 시대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17세기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가 화가인 아버지를 넘어선 멋진 여성 화가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