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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연습을 위한 연습

오민, 연습무의 연습무, 2018, 6분18초, 4채널 오디오 설치 ⓒ오민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연습이 과정이라면, 그 종착점은 최고의 결과일까. 특정한 행동을 더 능률적으로 해낼 필요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 행동을 반복하여 몸에 익히는 연습의 과정을 거친다. 연습은 몸에 습관을 입힌다. 익숙해질수록 최고의 결과를 낼 가능성은 높다. 연습에 매진하는 오늘의 땀방울은 빛나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정말 그런가. 연습은 늘, 온전히 ‘다가올 미래’ ‘최종적인 결과’로 빨려 들어갈 뿐일까. 학부 시절에 피아노를 전공한 작가 오민은 쇼팽 이후 위상이 달라져버린 ‘에튀드’에 주목했다. 기계적인 연습 과정을 통하여 악기의 연주 기교와 표현 방식을 습득하여 ‘예술적인’ 다른 곡을 잘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 에튀드, 연습곡. 쇼팽은 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진 반복의 지루함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연습곡에 불어넣었다. 연주자들에게 ‘과정’이었던 연습곡이 ‘최종’ 무대 위에 오르면서, 연습과 최종은 흥미로운 관계망 안으로 진입했다. 결과를 위한 연습이 결과 그 자체가 되었다.

 

오민은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급기야 ‘최종’에 도달한 에튀드의 시간을 다시 뒤집어 본다. 그는 안무가 이양희의 연습 장면을 담은 작업 ‘연습무의 연습무’를 통해 ‘에튀드’가 그저 ‘연습’이었던 시간을 소환했다. 화면 안에서, 이양희는 시선, 동작, 목소리라는 세 가지 그룹으로 조직한 ‘연습무’를 창작하기 위해 연습 중이다. 오민은 그 가운데 안무가가 시선을 연습하는 장면에 집중했다. 하나의 화면은 안무가의 얼굴을, 다른 화면은 안무가의 뒷모습을 담았다. 이때 그는 숲 한가운데 서 있거나, 회색빛 담벼락을 마주한 채 앉아 있다. 안무가는 대상을 바꾸어가며 초점의 깊이를 움직이고 너비를 변주하는 연습을 했다. 관객의 시선이, 멈춰 있거나 흔들리는 이양희의 눈빛과 그 눈빛이 도달한 공간 사이를 계속 오갈 때도, 연습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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