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위험을 무릅쓴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그림

NO. 14, 1960년, 캔버스에 유화


마크 로스코의 실물 회화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체험을 쏟아놓는다. 명상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는가 하면, 펑펑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진정 로스코의 추상회화는 망막을 혼란시키는 동시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림에 속한다. 그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자살했기 때문일까?

색면화가인 로스코는 소위 드리핑(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리는 기법) 화가인 잭슨 폴록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의 독보적 존재이다. 추상표현주의란 무엇인가? 형식은 추상이지만, 내용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태어난 추상표현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중에서도 색면 화가들은 전쟁의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실존적 입장에서 좀 더 근원적이고 강렬한 색면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분명 절망과 공포라는 심리적 아고니를 견디는 가장 적절한 예술적 방법이었다.

라트비아 출신의 미국 이민자 로스코는 예일대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유대인답게 젊은 시절부터 철학적 공방을 즐겼다. 로스코는 언제나 시니컬한 소피스트의 면모와 더불어 다소 속물적인 성향도 지니고 있었다. 특별히 색채들 사이의 관계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로스코는 화필자국이 거의 없는 색면들을 그렸고, 그 색면들이 그림 안에서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어떤 특정한 주제도 거부했던 그는 결국 절망에서 환희에 이르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었다.

로스코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험의 극치”로서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관람자가 고요한 관조와 경외의 분위기 속에 들어가기를 원했는데, 다시 말해 관람자들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길 희망했던 것. 그런 로스코는 다소 오만한 태도로 자기의 작품을 보는 일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이라고 말하곤 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