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유모와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1978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의 전시가 화제다. 게리 위노그랜드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사회상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담아낸 전설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전문가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반면에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는 알 턱이 없었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10만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평생을 유모나 가정부로 살았던 탓에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가족도 모아놓은 돈도 없이 말년을 보냈던 그의 사진은 2007년 밀린 창고비를 챙기려는 창고 주인에 의해 처음으로 동네 경매시장에 나왔다.

우연히 이 상자를 발견한 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재조명해 부동산 값을 올리려 했던 젊은 부동산업자 존 말루프였다. 그는 단지 동네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기념 사진을 기대하며 상자를 구입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영화까지 제작한 인물이 됐다. 덕분에 이런 일이면 늘 빠지지 않는 저작권 소송에도 휘말려 있다. 이제 비비안 마이어는 마치 새로운 스타의 출현이라도 되듯 전 세계에서 회자된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논의는 점점 가열될 기미다. 제대로 된 분류나 사진설명도 없이 오로지 찍는 일에만 열중했던 한 아마추어가 한 세대쯤 후에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마추어와 전문 작가를 나누는 숱한 작가 검증 시스템은 때로 그 구분이 모호함을 방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아도, 평생 전시를 하지 않아도, 유모로 살아도 빛나는 작업을 선보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작가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이면서 하나인  (0) 2015.07.02
나폴리와 마릴린 먼로  (0) 2015.06.25
안녕, 신흥동  (0) 2015.06.11
매그넘 퍼스트  (0) 2015.06.03
유진  (0) 201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