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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유진

병훈, 예천 죽림리 초간정, 2015

누구나 멋진 풍경을 그리워한다. 수직 절벽 아래로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안개 자욱한 연못을 에워싼 짙은 단풍 숲은 머물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 이발소 그림이나 달력 사진은 현실에 몸이 매여 있는 우리를 이런 곳으로 가장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그럼에도 늘 싸구려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다. 너무 진짜 같기만 해도 상투적이고, 진짜만 못해도 촌스럽다. 뻔한 구도와 조야한 색깔은 이런 인상에 한몫한다. 거기에 우리 눈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는 풍경화의 전통도 이런 선입견을 부추긴다. 김병훈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과연 아름다운 풍경을 달력 사진처럼 재현하면 안되는 것인가. 우리가 관념 속에서 기억하는 풍경과 실제로 가서 맞닥뜨리는 풍경의 오차 폭을 사진에서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를 두고 그는 오랫동안 고심했다.

결국 그는 좋은 장비를 잔뜩 싸들고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는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처럼 풍류의 공간들을 찾아나섰다. 대신 비슷한 계절에 여러 번 반복해서 갔다. 중형 카메라 렌즈가 갖는 화면 비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풍경 사진의 스펙터클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미세하게 조정해 한 장으로 만든다. 비록 같은 장소지만 여러 장이 덧대어졌다는 점에서 그것은 진경이라기보다는 신선들이 산다는 선경에 가까워진다. 재작년 사진과 작년에 찍은 사진이 덧대어진 이 풍경은 선비들이 신선놀음을 하던 과거의 시간까지를 은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고요하고 자연 그대로라는 작품 제목 ‘유진’은 우리 관념이 기대하는 가장 세속적인 이미지로 거듭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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