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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장화

Masamichi Kagaya, Autoradiograph 연작 중 Boot, 2013


장화 한 켤레. 아담한 크기에 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제각기 굵기가 다른 빛 알갱이들은 단순한 신발에 신비감마저 감돌게 한다. 이런 걸 어쩌면 사진의 눈속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진은 사소한 것들도 비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시각 놀이에 길들여지다 보면, 점점 사진이 객관적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장화 사진은 정반대로서의 눈속임이자 반전이다. 평범했을 이 장화는 이제는 예사롭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지대에서 주워온 이 신발이 발산하는 빛의 정체는 모두 방사능이다. 방사능에 많이 노출될수록 빛은 훨씬 굵고 찬란하다.

 

사진가 마사미치 가가야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누출의 영향을 추적하는 도쿄대 생물학자 사토시 모리 교수팀에 합류해 사진 기록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미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 방사능이 생태계, 특히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지에 대해 추적하고 연구한다. 놀랍게도 사고가 난 수년 후 후쿠시마에서 아주 먼 주택가에서 찍은 공기 청정기 필터 사진에서도 굵은 빛 알갱이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무색무취의 방사능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연구팀이 사용하는 사진기법은 자동방사선사진. 방사성물질이 사진 건판 위에 검정 흔적을 남기는 데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본래 연구와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 마사미치는 촬영 후 이 검정 알갱이들을 흰색으로 반전시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이 사진들은 사고 지역 정상화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사실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재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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