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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조강지처도 섹시할 때가 있었다?

그리스 최고의 여신 헤라는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헤라를 그린 그림이 드물고 걸작이 없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조강지처라는 한계, 그러니까 더 이상 한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예술가들을 시큰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헤라는 질투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가정과 결혼의 수호신이다. 안정적인 가정과 결혼을 위해 바람기 많은 남편을 지키려다보니 질투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된 것이다. 어쨌거나 헤라는 그리스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헤라를 어떻게 유혹했을까? 그는 그녀를 품고 싶은 욕정에 이끌렸지만 무턱대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헤라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 비 맞은 한 마리 애처로운 새끼 뻐꾸기가 되어 헤라의 창가에 날아들었다. 영리한 헤라는 거사를 치르기 전 결혼을 약속할 것을 맹세시킨다. 맘이 급했던 제우스는 결국 허락했고, 영원히 헤라의 손바닥에서 노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안니발레 카라치, 제우스와 헤라, 1597년


카라바조와 함께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2대 거장으로 알려진 안니발레 카라치가 그린 ‘제우스와 헤라’는 서양미술사상 통틀어 가장 섹시한 헤라를 그린 그림일 것 같다. 통상 헤라는 그다지 관능적인 여자로 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그림은 제우스와 헤라의 상징물을 알지 못하면 그저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그림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제우스의 신조가 독수리고 헤라의 신조가 공작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그림의 의미는 단박에 파악될 것이다.

그림 속 제우스의 얼굴 표정은 심각하리만큼 욕정으로 고조되어있는 반면 무덤덤한 표정의 헤라는 허벅지를 침대 끝에 둠으로써 제우스의 다리와 접촉하고 있다. 이미 반쯤은 그를 받아들인 것! 왼편 끝 큐피드의 손에 들려진 불번개(제우스의 무기)를 잊을 만큼 사랑놀음에 푹 빠진 제우스를 어찌 사랑스럽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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