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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시시각각 예술 칼럼

[지금 논쟁 중]미술인 대상 서바이벌 오디션

‘미술인 서바이벌 오디션’이라 불리는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가 이달 말 방영을 앞두고 있다. 미술인을 대상으로 한 첫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미술계의 의견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는 미술인들은 <아트 스타 코리아>가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 미술의 대중화를 이룰 것이라고 본다. 또 선정된 작가에 대한 갖가지 파격적인 지원이 있는 만큼 새로운 미술가의 발굴과 양성에도 이바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정적 파장을 우려하는 미술인들은 상업성으로 인해 미술, 미술인이 지닌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미술에 대한 대중화는 이룰지 몰라도 현대미술에 대한 갖가지 오해를 더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하향평준화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 작가들 소통 통로이자 대중엔 미술 이해도 높여

<아트 스타 코리아>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다. 필자는 직접 심사위원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을 피력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청자나 관객들이 관점을 취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글을 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2010년 6월 미국에서 방송돼 두 시즌이 제작된 나 2009년 11월 영국에서 4부로 방송된 의 한국판 프로그램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리고 미술을 상업화한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이라는 등 주로 부정적인 우려가 주를 이뤄왔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핵심은 ‘상업적 예능’이라는 것이다. ‘상업적’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오락 연예 채널에서 예술가들을 이용한 흥행이나 돈벌이를 한다는 것이고, ‘예능’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결국 대중들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예술가들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젊은 예술가들에게 단기간에 작품을 만들도록 강요함으로써 예술창작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여건(창작에 소요되는 시간)조차 박탈해 버린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필자 역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이 패션이나 디자인과 다른 점은 예술가들의 창작이 일차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물론 그것이 추후에 상업적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현대미술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당대의 철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철학적 비평은 동시대 미술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진대 동시대 미술을 방송에서 게임 형식의 서바이벌로 다룬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두 가지 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보고 참여하기로 했다. 첫째는 이 프로그램이 폭넓은 시청자들에게 동시대 미술의 창작과 비평적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이해시키는 매우 흥미로운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대 미술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젊은 미술가들에게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대중들의 무관심과 몰이해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창작에 대해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텅 빈 전시장, 버려지는 도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사회 전체가 시각예술을 별세계의 일로 치부하는 현실에서 창작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당연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게임과 같은 포맷보다 작가들을 한 사람씩 자세하게 다루는 방송을 만들면 더 진지하게 느껴질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문화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거의 고사하다시피 한 예능천국이지 않은가.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위한 장치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지식 기반 리얼리티 쇼들이 그러하듯 동시대 미술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게임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시청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예술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참여 작가들의 열정이 가장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차제에 더 많은 ‘탁월한’ 미술 관련 프로그램들이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다루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프로그램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진상 | 계원예술대 교수>

미술대학 실기시험 (출처: 경향DB)


■ ‘대중성’ 잡겠다고 ‘예술성’ 놓치는 우 범해선 안돼

서바이벌 프로그램 바람이 열풍을 넘어 가히 태풍 수준이다. 방송사들마다 앞다투어 가수, 디자이너, 요리사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속속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미술 분야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 프로그램도 장단점을 갖고 있겠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마음에 자꾸 걸리는 이유는 왜일까. 우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특성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아 방송사가 말하는 것처럼 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폄훼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이라든가,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지혜, 앎, 그리고 예술과 정신에 대한 태도나 이해는 심각할 만큼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예전에 비해 좀 살 만해졌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의 오만함 때문이다. 또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로부터 기인한다.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인문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인문교양 수준으로 전락하고, 미술은 기호와 취미에 봉사하는 수준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천만 관객이 든 영화는 모두 명화일까. 예술영화 한 편 변변하게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요즘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림들을 보면 과일 가게나 디저트 가게에 온 것 같다. 울긋불긋하고 고만고만한 장식용 그림이 그 의미도 불분명한 ‘코리안 팝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버젓이 존재한다. 이태원이나 삼각지 매장 또는 신규 입주하는 아파트 정문 옆 노점에 있어야 할 기호와 취미에 봉사하는 그림들이 화랑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앞으로 50년, 100년 뒤 우리 시대를 증거할 미술품의 수준을 상상해보면서 가위눌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절박한 한국 미술의 처지에 대중화란 토끼를 잡겠다고 예술성이라는 토끼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야 될까.

경제적 성공과 실패가 예술적 성취, 아니 성공과 비례한다고 믿는 현실에서 과연 이에 편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장식용 그림도 필요하지만 고민과 진지한 자기성찰 끝에 나온 미술품도 필요하다. 당대의 미술이 현상을 넘어 역사가 되려면 후자여야 한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한국 미술도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아 결국 하향평준화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하향평준화를 통해 얻는 미술의 대중화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모레퍼시픽 ‘현대미술에 마음을 열다 강형구 작가전’을 관람하고 있는 직원들. (출처 :경향DB)


미술이라는 예술적 속성, 특히 현대미술이라는 특성을 외면하고 일주일 만에 새로운 과제를 받아 오직 생존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이는 마치 양계장의 산란용 닭의 처지와 무엇이 다른가. 미술은 많은 시간 숙성시켜야 맛을 내는 간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물론 반짝하는 아이디어로 순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듯 만든 작품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진기명기에 가깝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대중화에는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만 더하는 꼴이 될 것이 자명하다.

사실 십수년 이상을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존재해온 공모전들이 있다. 하지만 그 공모전의 대상을 수상했던 작가들 중 역량 있는 작가로 성장한 경우는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될 작가들의 미래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상에는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그 원칙이 무너진 사회의 미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묵묵하게 세상을 지켜나가는 스테디셀러는 더욱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시간에 차라리 제대로 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하나 신설하면 안될까. 대중화와 문화복지를 위해서 말이다.

<정준모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