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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천사로 산다는 것

프랑스 오통의 생라자르 대성당은 중세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귀중한 보고다. 문맹인이었던 대다수의 신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것이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더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이런 독특한 이미지 중에서도 유달리 시선을 고정시키는 형상이 있다. 전혀 압도적이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지만 은근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천사가 동방박사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다.

동방박사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동쪽에서부터 온 현인 혹은 점성가이다. 이 장면은 동방박사들의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저 별을 따라가라. 왕이 나셨다”고 계시하는 모습이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마치 한 몸처럼 한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삼위일체의 메타포라도 되듯 말이다. 그때 한 천사가 와서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세 사람을 깨운다.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 있고, 한 사람은 천사가 깨워서인지 이제 막 눈을 뜬 품새다.

심상찮게 다가오는 것은, 천사의 두 손끝이다. 한 손끝은 불꽃처럼 생긴 별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한손 검지 손끝은 동방박사의 새끼손가락 끝을 찌르고 있다. 특히 손가락은 천사의 전체적인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동방박사의 꿈, 1120~1130, Cathedral of Saint-Lazare, Autun, 프랑스



후광을 두른 고졸한 천사의 모습은 귀엽고 순진해 보인다. 앙다문 입과 손끝은 사태의 긴박함을 나타내기에는 다소 미흡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세계를 구원하려는 미션의 수행자로서의 절박함을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천사의 손끝은 더 이상 손이 아닌 송곳이 되어 살갗을 찌르고, 급기야 동방박사의 부릅뜬 눈과 연결되는 것이다.

중세시대 이 조각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아이였을까? 늙은이였을까? 여느 중세 조각가나 화가처럼 단순히 도안책과 공동체의 정해진 작업순서에 따랐던 단순한 장인이었을까?

그가 누구였든지 아마도 아주 소박한,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대범한 인물이었을 것만 같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