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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침묵과 낭만

이갑철, 암남공원, 2014

부산만큼 여행의 정석이 난무하는 곳도 드물다. 다들 부산하면 조용필 노랫말 속의 동백섬이나 해운대의 영화제를 자동으로 연결시킨다.

간 김에 자갈치시장에 들르거나 ‘부산오뎅’을 먹는 건 빠뜨릴 수 없는 행사처럼 얘기한다. 이제는 여기에 유행처럼 국제시장까지 한몫 거들고 있다. 이런 식의 답사 코스는 한편으로는 뻔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식지 않고 쉬지 않고 부산에서 얘깃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뎅은 부산 것이 맛있고, 쌀쌀한 날 부산에서 먹는다면 더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굳이 꽃이 펴 있지 않더라도 동백섬에서 갈매기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듣는 일 또한 조용필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상으로 운치 있다.

사진가 이갑철이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산 사진에는 왜 이처럼 부산이 중독적인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1년 동안 부산을 배회하며 스스로가 ‘침묵과 낭만’이라 이름 붙인 이번 작업 속에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부산이 없다.

대신 짭조름한 바람과 사람과 어느 구석진 곳의 풍경이 어울려 한없이 끈적거리는 도시가 있다. 그의 사진은 마치 1970~1980년대 해운대에서 찍은 앨범 사진처럼 묘한 회상에 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유행이 지났다거나 도시가 정체되었다는 식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낭만을 유발하는데, 그것은 대도시의 숨 가쁜 변화 이면에 여전히 숨어 있는 부산 특유의 거친 듯 쾌활한 듯 뜨거운 정서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갑철의 즉흥적이고 강한 앵글과 만나자 부산은 낭만적인데도 꽤 세련돼 보인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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