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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타협하지 않는 자

2003년 어느 날, 함부르크시 관계자가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오래된 코코아 보관 창고 사진을 들고 스위스의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을 찾았다.

 

사진 속 벽돌 건물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이내 건물 위에 파도처럼 바람처럼 일렁이는 드로잉을 하나 얹었다. 그 드로잉은 14년 후에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엘브필하모니로 탄생한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 엘브필하모니 드로잉, 2003 ⓒ헤르조그와 드 뫼롱

 

새로운 랜드마크의 등장은 순조롭지 않았다. 2010년으로 약속한 개관은 2017년에야 이루어졌고, 1억8600만유로로 책정했던 건축비는 7억8900만유로까지 늘어났다. 공사가 중단되고, 책임자가 교체되고, 공사기간이 늘어지고, 예산이 증가할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줄을 이었고, 시민사회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콘서트홀은 그저 “상류계층의 퇴폐적 기념비” 아니냐는 비판, 다른 프로젝트들이 예산 절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엘브필하모니 프로젝트만이 끝없이 예산을 지출하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사회 안에서 갈등과 분노를 키워나갔다.

 

그 사이 건축가들은 그들이 디자인한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쓰고 있었다.

 

흡족한 빛의 굴절률을 가진 전구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전 세계를 뒤져 찾아낸 유리공방에서 홀 천장용 전구 1000개를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완벽한 소리를 위해서 이미 시공을 마친 1만개의 음향 패널 틈새를 모두 메웠다.

 

엘브필하모니를 통해 이곳이 그저 유서 깊은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 그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건축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이 건물이 우리의 모든 경력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했으니 이 총체적 난국을 책임져야 했다.” 책임을 지기 위해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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