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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하얀 원피스, 검은 다리털

레이스 장식이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고, 벨벳 소재의 폴라넥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립스틱 색까지 핑크빛으로 맞췄다. 가지런한 단발머리에 화려한 귀고리까지 여성스럽다. 손목에는 투박한 쇠팔찌를 차고, 팔뚝에는 엉성한 문신이 있다. 다리를 벌리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 거뭇한 다리털까지 전혀 여성스럽지 않다.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상반된 특징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그런데 둘 사이를 나눴던 나의 기준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가.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아디다스 광고. 인스타그램 캡처

 

스웨덴의 사진작가 겸 모델인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광고 사진이다. 비스트룀은 인스타그램에서 다리,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의 털을 드러낸 셀피로 유명하다. 신체 부위와 체모의 노출, 생리혈 등 인스타그램에서 필터링하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올리며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의 예술 작업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이미지를 검열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심을 던진다.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젖꼭지가 있고, 털이 나고, 피를 흘리는데, 왜 여성의 경우만 필터링되는가. 어쩌면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둘을 나눴던 나의 기준 또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에 공조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해 비스트룀은 이 광고 사진을 찍은 후 성폭행 위협을 받았다. 여성이 ‘여성스럽지 않음’을 선택할 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는 21세기에도 이렇게 흉포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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