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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31 회귀
  2. 2020.03.27 낯선 시간
  3. 2020.03.27 물리적 거리 두기
  4. 2020.03.26 ‘착한 대학’은 없을까
  5. 2020.03.23 격리
  6. 2020.03.20 하얀 문
  7. 2020.03.20 봄나들이 가자
  8. 2020.03.17 빗살무늬토기와 브랜딩
  9. 2020.03.16 간호사
  10. 2020.03.13 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11. 2020.03.13 행복한 순간
  12. 2020.03.12 기술의 진보로 점점 옅어지는 공간의 의미
  13. 2020.03.09 민주주의의 위선
  14. 2020.03.06 어둠을 이기고
  15. 2020.03.06 마스크
  16. 2020.03.05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17. 2020.03.02 진실을 찾아서
  18. 2020.02.28 수선화
  19. 2020.02.28 두려움
  20. 2020.02.24 게잠트쿤스트벨크

김지연의 미술 소환

피터 도이그, 100년 전, 2001, 캔버스에 오일, 229×358㎝, 퐁피두센터 소장, ⓒ 피터 도이그


딱히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다. 이 시큰둥한 마음은 어쩌면,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 모두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역설적으로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보기 전. 면접에 들어가기 전. 탈락하기 전. 집값이 오르기 전. 주식이 폭등하기 전.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건물이 무너지기 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전쟁이 나기 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웹소설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회귀물’을 뒤적이다보면, 지금 여기를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의 아쉬움, 미련, 후회, 욕망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 살아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살이에 대한 노하우와 미래에 대한 정보로 무장한 ‘젊은’ 회귀자는 과거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의 인생뿐 아니라 주변의 인생을, 환경을 변화시킨다. 빛나는 미래의 보석을 알아볼 안목이 생길 리 없는 나는, 위기를 기회로 돌리기 위해 의지를 불사르는 주인공들에게 빙의하여 악을 응징하고, 세상을 구하고, 콤플렉스도 해결해본다.


모든 것이 왜소한 한 남자를 화면 안에 그려넣은 피터 도이그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알고 있다. 고요하지만, 조심스럽게 일렁거리는 화면 안에서 긴 머리에 깡마른 이 남자는 우리를 본다. 메마른 이 남자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나, 세상은 아직 그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다. 


그런 눈은 아마도 100년 뒤에나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잔잔한 풍경을 고요하게 흔드는 붓질로, 푸른 물결에 깊이 박힌 오렌지빛 그림자로, 지나고 나면 그제서야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기록한다. ‘100년 전’이라는 이름으로.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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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천국보다 낯선. 2002. ⓒ김영경


2002년은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한밤중에도 동네가 들썩들썩했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축구 경기 하나가 온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우리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에도 좌우가 갈라서는 오늘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김영경은 저물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거대한 도시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의 프레임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정직한 기록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색감에 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사진에 색깔로써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필터나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황량한 도시의 감각을 그녀 특유의 색감으로 살리고 있다.


월드컵 열기는 사라지고 가을이 왔다. 함성이 사라진 도시의 한 종합경기장은 텅 비어 있다. 교교한 정적이 흐르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붉은 아스콘 바닥은 빨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것은 아픔도 슬픔도 아닌 그저 낯선 시간의 풍경이다. 경기장 옆 아파트 벽면의 그림에서 황홀했던 시간의 흔적을 잠시 엿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을 돌아보니 온통 암울한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의 고통도 시간과 함께 도도한 세월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리라 믿는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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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컬러펜 (21x30cm)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자고 합니다. 저의 하루를 되돌아봅니다. 매일 출퇴근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부딪히고, 사람 많은 곳에서 같이 밥을 먹고, 빌딩숲 사람들과 산책을 하며 커피도 마시고, 회사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일하고, 헬스장에서 같이 땀 흘리며 운동도 합니다. 제가 하루를 보내면서 가까이 지나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물리적 거리가 가깝게 생활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젠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당분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봄은 왔으나 이렇게 떨어져 있는 우리들의 공간은 아직 겨울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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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강력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대학들도 캠퍼스를 폐쇄했다. 강의는 온라인으로 옮겨 갔다. 지난 22일 기준 연세대, 한남대, 홍익대, 서울대, 경희대 등 다수의 대학들이 비대면 강의 연장을 확정했다.


필수적 예방의 일환으로 개정된 교육방법에 대해선 교수와 학생 모두 이해하는 입장이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분위기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이 한 달 단위로 규정된 등록금 면제 최소 휴업 기간을 고려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콘텐츠 부실, 실험·실습 부재에 따른 교육의 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자는 등록금 감면 혹은 재정적 배상 요구의 배경이다.


실제로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예술대학생네트워크 등은 지난 19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의 질 하락에 따른 각 대학들의 등록금 반환을 촉구했다. 충남세종대학생연합회는 등록금 감면분을 정부가 재정지원을 통해 충당해달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을 상대로 한 학생들의 요구는 합당하다. 특히 각종 실습 및 실기를 전제로 한 의학 및 공학, 예술 관련 학과의 재정적 부담 완화 주문은 대면 교육에 의한 유무형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축소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지극히 온당하다.


시각예술학과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강의는 실기의 필수요소인 창작과정에 따른 공동체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할뿐더러, 서로의 작품에 대한 학생들 간 소통을 제약한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지 못함으로써 비평적 감수성과 관찰력을 떨어뜨리고 전시라는 무대를 통해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한다. 외부 비평가나 기획자들과의 상호교류에도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적지 않은 등록금을 내는 것은 위 모든 요소들이 원만히 이뤄질 것이라는 대학과의 약속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라면 등록금을 일부라도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대학 측은 전례 없는 재난에다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 차질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오히려 자신들도 어렵다며 도움과 협조를 말한다. 


그러나 대학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부담하는 법인전입금은 쥐꼬리만 하고, 교비로 토지를 구입하고 현금 보유를 늘리며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본재산을 증식시켜 온 사학재단들의 양태를 생각하면 공감이 쉽지 않다. 적어도 상생을 위하여 자진해서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착한 임대인처럼 ‘착한 대학’을 기대하는 학생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홍경한 |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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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휴고 건즈백, The Isolator, 1925 ⓒSyracuse University Libraries,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예술계 정보를 전하는 웹사이트 이플럭스를 열었더니,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휴고 건즈백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인류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볼 만한 키워드, 읽어볼 만한 글을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에디터는 그 첫번째 키워드로 ‘전염’을 제시했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한 휴고 건즈백은 발명가이자, 저술가, 잡지 발행인으로 살면서 기발한 발명품을 발표하고, 과학소설 잡지를 창간하는 등 현대 기술을 예견하고 과학소설의 미래를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발명품 ‘아이솔레이터’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야를 한정시키는 도구다. 나무로 제작한 헬멧에 산소통을 연결할 수 있어 착용해도 호흡엔 지장이 없다. 사무실 안에서 주변과의 관계를 기능적으로, 또 선언적으로 차단하는 이 도구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환경으로부터 직장인을 보호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행동강령으로 선포된 현재, 우리가 처한 자가격리의 상황은 ‘아이솔레이터’로 활용 가능해 보인다. 일상의 흐름을 무너뜨리면서 생존을 위협하고, 혼돈과 침체에 빠뜨리는 이 멈춤과 격리의 상태가,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사회적 관계를 무한 증식시키고, 만남의 관성을 끊지 않은 채 매일을 ‘이벤트’처럼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고독’을 격리된 방 안에서 마주한다. 서로를 멀리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는, 곧 지금과는 단단히 달라진 세계가 오고 말 것이라는 걸 예견하며 방 안에 앉아 있다.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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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놓다, 보다’ 연작 2015. ⓒ김지연


어떤 훌륭한 건물도 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다. 건물 안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건물에서 문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이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건물이라도 문이 없으면 그것은 한 물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통의 창구이자 폐쇄와 욕망의 장치이기도 하다. 위엄 있게 잘 갖추어진 고급 빌라,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진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문을 먼저 확인한다. 나오는 길을 못 찾을까봐서이기도 하고 공간을 못 본 채 눈앞에서 유혹하는 물체에 갇혀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놓다, 보다’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숲에 오브제를 가져다놓고 촬영을 했다. 숲에 문을 달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을 것이다. 수만마일을 날아가는 철새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생존’이라는 명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확실한 경계를 설정해 보고 싶었다. 실존을 위한 자유나 자유를 위한 자유라는 관념을 얼마나 오랫동안 허비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그 무언가를 규정짓기 위해 새벽에 뒷산으로 올라가서 문틀을 만들고 문을 달아서 촬영을 시작했다. 자연은 나의 이런 행위가 그릇된 욕망, 무분별한 소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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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8×19㎝)


봄을 먼저 맞이하러 들판으로 달려가봅니다. 아직 찬바람이 불고 그늘 쪽은 겨울이지만, 햇살이 비치는 곳은 따스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연초록 새순들이 나뭇가지에서 크고 있고, 노랑 분홍 하얀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났습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은 팽팽한 목줄을 당기며 뛰어다니려 하고, 아이들은 마스크를 끼고도 힘차게 뛰어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답답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지만, 빨리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마스크를 벗고 봄을 가슴속 깊이 맞이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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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사진)는 신석기 농업 문명을 대표한다.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전환되자 수확한 곡식을 저장할 용기가 필요해졌기에 신석기 사람들은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진흙을 적당히 반죽한 다음 둥글고 긴 띠를 만든다. 이 띠를 빙빙 돌려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그릇의 형태가 완성되면 표면에 진흙을 발라 평평하게 만든 다음 장식적인 무늬를 새긴다. 마지막으로 그늘에 말리거나 불에 굽는다.


초기에는 토기를 땅에 묻었기 때문에 아래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표면에 새겨진 촘촘한 무늬다. 자세히 보면 토기마다 무늬가 다르다. 사실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무늬 새기기이다. 그럼 신석기인들은 왜 그토록 정성껏 무늬를 새겼을까? 여기서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브랜드’는 디자인의 주요 키워드이다. 브랜드(brand)는 태우다(burn)와 어원을 함께한다. 옛날 사람들은 인두로 가축에게 낙인을 찍어 자신의 소유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브랜드는 소유를 의미한다. 이 ‘낙인=브랜드’라는 인식은 자본주의에서 생산과 소비를 위한 상품 기호가 되었다.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고민한다. 거꾸로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브랜드 가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더 많은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브랜딩에 정성을 기울인다.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소유 개념이 시작되었다. 토기를 만들어 곡식을 저장했기에 ‘저장된 곡식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하기 위해 토기 표면에 무늬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토기가 저장을 의미한다면 빗살은 소유를 의미한다. 소유가 가족에서 부족으로 확대되면서 무늬도 점차 복잡해졌을 것이다. 장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정성껏 무늬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디자이너의 조상은 장인이다. 그 당시 장인을 디자이너로 생각한다면 빗살무늬토기의 복잡한 빗살무늬는 신석기시대 브랜딩 작업이 아니었을까.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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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프린스, Emergency Nurse, 2004, 캔버스에 잉크젯, 아크릴릭, 152.4×116.8㎝ ⓒ리처드 프린스


예술가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해결책 없는 문제제기나 질문은 염증을 일으키지만, 탁월한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여하지도 않은 전시에 참여했다는 거짓말을 한 뒤 ‘거짓말이 나의 출품작이었다’고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을 재촬영하여 제작한 ‘새로운 초상화’ 시리즈를 완판시키며 예술의 창작과 모방, 복제 논란에 또다시 불을 붙였던 리처드 프린스는 늘 광적으로 이것저것을 수집하고 들여다본다. 그는 전유와 도용, 모방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와 유머를 미술 안에 끌고 들어와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질문을 던지는 데 능숙하다.


그는 사스로 인해 전 세계가 히스테리의 최정점에 도달한 2002년 당시, 우리 모두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로맨스 소설 표지를 뒤적이며 간호사 관련 삽화를 찾아 작업한 뒤 간호사 그림 연작을 발표했다. 눈 밑부터 턱을 크게 감싸는 흰색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은 특정 개인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 익명의 얼굴은 하나의 개인을 넘어 더 큰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아이콘이 되어 화면을 채운다. 태양이 저무는 듯 노을이 드리워진 어둑한 대기를 가르는 그의 몸짓은 어딘가 조급하다. 1950~1960년대 간호사의 전형적인 흰색 유니폼에 푸른 재킷을 걸치고 진료가방을 든 그의 상체가 살짝 앞으로 쏠린 때문인가. 긴장감이 감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공포와 위로를 동시에 목격하는 지금 우리의 상태는 2002년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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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피는데 산새 날고. 2020. ⓒ김지연


꽃도 시절을 잘 타고나야 더 빛나게 핀다. 이번 겨울은 포근해서 눈 한번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추위가 없을까 했더니 얼마 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지나갔다. 우리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는 이미 한겨울부터 가지 끝에 진주알을 머금은 듯 봉오리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날마다 집을 들고나며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니, 조금 이르지 않니?” 말을 걸어 보는데 눈치도 없이 몇 개의 봉오리를 일찍 터뜨려 놓고는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또 산책길 옆 조그만 텃밭에서 피는 홍매화는 매년 사람들에게 새로운 봄을 알려주는 깜찍하고 가녀린 녀석이다. 이 나무도 피다만 봉오리가 얼어서 피멍이 든 붉은 입술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겨울이 따뜻했기에 더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그 뒤로도 지나치다보면 꽃만 피어났을 뿐이지 생기를 잃고 있어 안타까웠다.


올봄은 생각지 못한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힘겹다.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다보니 꽃을 보는 일도 드물어지고 어쩌다 핀 꽃을 보아도 그저 덤덤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스산한 산책길을 걷다가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 매화 한 그루가 만개한 것을 보고 다가갔다. 무심코 사진을 찍는데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 끝에 앉는다. 녀석은 주위에 신경도 안 쓰고 유유자적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꽃을 바라보다가 한 잎씩 따먹는 것이다. 아~, 평화! 


그날이 또 그날 같은 특별하지 않은 날들마저 그리워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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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 펜(24×32㎝)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하게 쉬고 싶어졌습니다. 멀리 떠날 수 없기에 예전 여행 다녔던 사진들을 찾아봅니다. 따스한 햇살 속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상쾌한 공기와 맑고 깨끗했던 바닷속이 생각납니다. 불과 1~2년 전 사진이지만 사진 속 가족들은 지금 모습보다 훨씬 앳되어 보입니다. 아이들은 쑥쑥 빨리 커버리고 어른들은 팍팍 빨리 나이 들고 있는 듯합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순간순간이 소중해집니다. 올해 봄과 내년 봄의 사진 속 가족들의 모습은 또 달라지겠지요.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어릴 때, 조금이라도 내가 젊을 때, 조금이라도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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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르쿠엥트(1793)의 육군병원과 풀무로 작동하는 환기 체계(왼쪽 사진). <그림2> 마레와 스프로(1782)의 병원 계획. 상부의 단면도와 하부의 평면도 모두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다.


18세기 세균학이 정립되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오염된 공기가 전염병을 전파한다는 공기감염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치유의 공간인 병원 건축은 늘 공기의 흐름이 주요 과제였다. 과학자 보일의 기체 연구를 토대로 병실의 환기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가지 방식은 &lt;그림1&gt;과 같이 커다란 풀무를 건물 외벽에 설치하여 정화된 공기를 주기적으로 공급하였고, 또 다른 방식은 &lt;그림2&gt;와 같이 공기 흐름을 고려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의사 마레와 건축가 스프로의 협업에 의한 1782년 설계도를 보면 병동은 공기가 흐르는 형태 그 자체를 따른다. 평면적으로 모서리 없이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단면적으로는 위가 좁고 높은 반원형 곡면을 통해 공간 자체가 공기를 자연스레 통과하는 방식이다. 의학적 전문 지식이 건축물 형태를 부여하고, 호흡하는 기계로서의 건축이 탄생한 것이다.


19세기 영국은 과밀화된 도시의 열악한 위생 수준으로 인해 여러 질병이 창궐하였다. 다수의 공중목욕탕과 공공세탁장이 건설되고 1848년 공중위생법이 제정되었다. 개선의 대상은 비단 시설물과 규정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까지 확대되었다. 비위생적인 것은 죄악이었다. 청결함과 도덕관념을 결합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하였다. 근대 건축운동이 청결의 표식인 순백색을 선호한 것은 단순히 미학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위생 개념도 내포하고 있었다. 건축가는 순백의 건축물들을 통해 이전의 어둡고 비위생적인 도시 환경을 치유하는 의사이기도 하였다. 


20세기에는 눈부신 설비와 기술 발달 덕분에 하나의 작은 도시라고 부를 만한 복잡하고도 거대한 규모의 병원이 나타났다. 수천명의 환자를 수용하며 정교한 기계와도 같이 작동하는 거대 복합 병원에서는 더 이상 이전 건축가들의 고민-쾌적한 공기의 흐름을 고려한 건축물 형태-을 볼 수 없다. 첨단기술 속 모든 것은 커지고 효율화되었지만 공간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되레 감소하였다. 공간으로서 창의 위치라던가 유선형의 평면보다 천장 속 보이지 않는 강력한 공기조화기계의 효율이 모든 것을 압도하였다. 


이러한 기술진보의 다음 종착지는 어디일까.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 코로나19와 같은 현대적 전염병은 병원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건축학자 알렉산더 초니스는 “효율적이고 숭고하며 건강을 고려한 대성당을 세운 기술이 이번에는 그 대성당을 폐허화시킬 것이다. 그때가 오면 거대한 신앙(병원)은 갈 곳을 잃고 홈닥터의 책상 속으로 깔끔히 수납될 것이다”라고 했다. 즉 미래에는 병원의 기능이 공기와도 같이 일상 속 기기들로 흡수되고 시설 자체의 존재 의미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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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바니사드르, 민주주의의 위선, 2012, 리넨에 오일, 76.2×91.44㎝ ⓒAli Banisadr


이란에서 태어난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게 ‘소리’는 작업을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탁월한 공감각 능력을 타고난 그는 소리가 전해주는 이미지를 그 영감과 연동하는 붓질로 화면에 펼친다. 구상과 추상의 결을 오가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작가는 우리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성찰, 언어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유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자신의 공감각적 재능을 알아차린 건, 그의 어린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전쟁의 소리 덕분이다. 그의 가족은 이란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았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의 포화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일상을 지배하는 전쟁 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엔 파괴의 소리가 각성시키는 이미지가 차올랐다. 전쟁의 혼돈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페르시아 역사를 아우르고, 동시대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를 가로지른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촉발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향한다. 합리와 모순이 얽혀 있어 늘 판단과 선택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혼돈에 찬 공기가 그의 화면을 채운다.


하늘빛은 제법 푸르고 공기도 청명해 보이는 하늘 아래 바람에 팔랑거리는 낙엽처럼 흔들리는 형상들이 엉켜 있다. 깃발인지, 화살촉인지, 총알인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사이, 절벽을 잇는 가느다란 사다리 옆에 선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땅 위의 울긋불긋한 형상들은 분주함을 과시하듯 어지럽다. 그 덕분에 대지의 공기는 제법 흔들리지만, 그들의 기운이 하늘까지 닿지는 못했는지, 하늘은 그저 잠잠하다. 작가는 바람 소리 가득한 이 작품을 ‘민주주의의 위선’이라고 불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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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심야산보. 2019. ⓒ 김동욱


김동욱의 사진은 기록적이고 지시적이다. 그가 지정한 프레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대도시다. 대낮의 혼잡함 속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서울의 밤 풍경에 주목했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고 흔적과 기억만 남은 적막한 풍경을 장 노출로 찍어서 야간 조명이 인조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외젠 아제’의 풍경처럼 초현실적인 아우라를 보여준다. 거기다 건물의 건립연도와 이력까지 조사해서 밝혀준다. 


여기까지 보면 일상성의 낯설게 보기, 기록, 흑백의 장중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시한 사진 같기도 하다. 밝은 대낮인데도 한밤중 풍경처럼 적막한 낯선 모습의 거리. 사람의 웃음소리가 잦아든 동네, 셔터를 내린 수많은 상가, 불 꺼진 건물, 금속가게 셔터에 그려진 낙서 등은 자칫 현재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김동욱이 촬영한 시기에는 이 교교한 밤이 내일이면 어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밝은 아침이 오고 또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미래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아침은 과연 오는 것인가 하는 염려를 품고 잠이 든다. 하지만 어떤 사악한 질병과 의도도 우리 국민의 굳건한 의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우리는 늘 당당히 맞서 이겨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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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컬러 펜(21×20㎝)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거기다 겨울이라 얼굴 빼곤 꼭꼭 외투로 온몸을 감추고 있으니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만 보고 그 사람을 알아맞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나를 보고 아는 체하며 인사하는데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하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성분들은 마스크 때문에 얼굴 화장을 못하니 마스크 위로 나와 있는 눈 화장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는데, 그 창문만 보고서는 그 집주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서 이 난리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축축한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상큼한 공기를 가득 마시며 예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걸어보고 싶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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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효진 작 ‘4430_TOY ORANGE HOUSE’,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격리가 일상화됐다.


나라 전체가 웅크려 있다. 미술계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동면 상태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답답하다”라는 형용사 속에는 애달픔과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예술인을 포함한 경제적 취약계층의 삶이 허물어질까봐 걱정이다.


나 역시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놓였다. 예전 같으면 꽤나 분주했을 3월이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예정되어 있던 강의는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각종 세미나와 회의, 심사, 평가 등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던 방송도 중단됐다. 국공립미술관을 비롯한 전시공간들도 대부분 휴관에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전시마저 드물다.


집에 틀어박힌 채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 무료한 상황은 그 자체로 적잖은 초조와 불안을 유발했다. 어느 땐 한참을 미동도 않은 채 뚫어져라 허공을 응시하다가 그런 자신에게 놀라 부러 자발스럽게 뭔가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거나, 괜스레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는 이상행동까지 생겼다.


심지어 그토록 좋아하던 자연 속 삶도 시들해졌다. 엄동설한을 뚫고 싹을 틔운 생명의 경이로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건만 우울함 탓인지 무심히 스치고 만다. 마을을 지나는 철새들의 날갯소리, 늘 살구나무 반상회를 여는 참새들의 조잘거림에도 감동이 덜하다.


이처럼 비자발적 격리가 만든 일상은 기존의 삶과 거리가 있다. 특정인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별로 체감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실상이다. 그러나 고생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며 이 혼돈의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또 다른 형태의 답답함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려운 환경일수록 우리는 다른 무언가와 연대하고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나도 그렇다. 이 시간 이후 의식의 영역이 아닌 느낌과 감각, 무의식적 생명활동에조차 감사하기로 했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 보다 더 유익하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내년쯤 성가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래 연습도 추가했다. 꼭 해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일과를 핑계로 미뤄둔 것들이다.


그래,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다. 인생사가 그렇듯 뜻하지 않은 계기로 그동안 못한 일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데 음치에다 악기라곤 학창 시절 만져본 피리가 전부인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누가 아는가, 도밍고나 라흐마니노프 뺨칠지.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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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콜렉티브, 진실을 찾아서(진실 부스), 2011~현재. ⓒ원인 콜렉티브


소년이 말한다. “진실은 축구다.” 여성이 말한다. “진실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남성은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그룹 ‘원인 콜렉티브’가 제작한 거대한 이동식 말풍선 스튜디오 ‘진실의 부스’는 ‘진실은’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만화의 말풍선을 닮은 이 하얀 부스 안에는 작은 촬영 스튜디오가 있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약 2분간 발언할 수 있다. 


2011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남아프리카, 미국을 여행하고 있는 ‘말풍선’에 참여한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 예술, 기술, 연대, 가치, 폭력, 가족, 정치, 불신 등 세상의 온갖 주제를 아우른다.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가능한 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한 작가들은 이렇게 진실을 리서치하고 그 내용을 웹사이트 ‘insearchofthetruth.net’에 기록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진실이라고 생각할까. 자신이 믿는 진실은 삶에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나약한 목소리가 모이면,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고, 믿는 진실에 닿을까. 결국은 거대한 세상의 안녕을 떠받치는 기둥의 조각으로 흡수되어, 개개인이 추구하는 진실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진실을 말하는 일은 질문을 낳는다. 


작가들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진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할 일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것이 진실이기만 하다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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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 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봄꽃은 새초롬하다. 눈얼음 속에서 핀 복수초 같은 꽃은 아주 다부지고 결기까지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밭에서 어찌 꽃을 피우겠는가? 그래도 제비꽃이나 진달래꽃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여 어찌 저것들이 그 질긴 겨울을 뚫고 살아나와 꽃을 피웠을까 싶다. ‘너희들이 언제’ 이만큼 커서 꽃을 피웠느냐고 묻기도 전에 꽃은 또 진다. 그의 당찬 기색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그들은 가없이 스러지고 만다. 


이른 봄에 수선화 한 송이를 방에 들인다는 것은 새봄을 맞이하는 일이다. 나이가 드니 새봄을 맞는다는 일은 몸 전체가 서로의 세포를 건드려주는 일이다. 그 시작이 수선화의 수줍은 향기와 눈빛이 되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도는 시장 바닥 한구석 종이상자 안에서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새침한 소녀 같은 수선화와 눈이 마주치자 발길이 멈추어졌다. 꽃이라면 우아하게 고운 진열장 안에 있을 일이지 시장 길바닥에서 그 서늘한 자존심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지.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것을 찍으며 주저 없이 ‘삼천 원의 식사’ 연작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봄은 스스로 오지만 나의 봄은 맞이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한 끼의 식사값이 대수겠는가. 꽃을 파는 주인장 역시 수선화를 닮았다.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달린 수선화 화분 한 개에 삼천 원이란다. 종이상자 안에서 병아리처럼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고 있던 수선화 하나가 엷은 향기를 풍기며 내 품으로 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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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30×35㎝)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동굴, 크기를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우주와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 


지금 퍼지고 있는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를 예방하려고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하고 다녀도 그 바이러스가 사라졌는지 내 몸에 붙어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언제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기침 소리만 들려도 저 사람이 혹시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고 거리를 두게 됩니다. 


안 그래도 멀어져 가고 있던 우리들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점점 더 빨리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나서도 우리들의 이 서먹한 거리가 다시 좁아질 수 있을까요?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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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희, 게잠트쿤스트벨크, 2019. ⓒ이양희


그것은 ‘잔치’였다. 좋아하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 안무가 이양희의 오래된 지인들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의상디자이너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퍼포머로, 스태프로 협력하여 잔치의 톤과 매너, 캐릭터를 만든다. 무대와 객석을 특정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퍼포머는 손님을 맞이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음식을 서빙한다.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일컫는 ‘밀롱가’의 콘셉트를 적용한 이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닐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공간이 찰나의 정적을 스치기가 무섭게 이곳을 다른 빛과 리듬이 채우는 순간, 퍼포머들은 달라진 빛과 리듬에 기댄 움직임으로 공간을 환기시키며 그때 그곳에 있는 이들을 순식간에 그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다른 경험은 다른 감각으로 쌓인다.


오랜 시간 한국 전통무용을 교육받은 이양희는 춤사위의 요소와 특징을 기반으로 움직임 워크숍을 구성했다. 그 안에는 ‘공연예술의 발현 과정과 시공간의 요소들, 그 안에서 퍼포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배우고, 폐기하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며 고민하고 발전시켜 온 이양희의 안무 방법론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이 긴 시간 정리한 이 내용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서로 배우고 나누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게잠트쿤스트벨크(총체예술극)’가 되기를 바랐다. 잔치가 예술이 아닐 이유도 없지만, 잔치를 예술에 가두어야 할 이유도 없는 이 시공간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들과 눈 맞출 수 있기를, 공연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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