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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 펜(10×15㎝)


겹겹이 쌓인 색들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저 밑에 깔린 초록색부터 빨강, 파랑, 분홍, 노랑, 흰색까지 각자의 색을 뽐내면서도 주위의 다른 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혀 안 어울리는 빨간 꽃에 초록잎까지도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하나의 단색도 강렬하고 이쁘지만, 서로 다른 다양한 색이 모여 더 편안하고 눈이 즐겁습니다. 이런 꽃들처럼 우리들도 혼자 있는 것보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울릴 때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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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고기와 함께 동네에서 만든 두부 몇 점과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끓인 찌개가 겨울철의 별미였다. 눈길을 따라 마을 안 가게까지 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올 때, 손은 시렸지만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올려진 밥상을 보면 추위가 싹 가시곤 했다.


구례장에 가니 돼지고기를 탁자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팔고 있다. 정육점 앞이었지만 난전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농촌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엔 동네 정육점에 가면 손쉽게 신선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날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귀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 장날에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장에 나오면 푸줏간에 들려 ‘좋은 부위’로 고기 근이나 끊어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겐 비싼 소고기보다는 싼 돼지고기에 눈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는 잔칫날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오줌통은 이미 사내아이들의 차지가 되어 축구공으로 쓰이고, 머리 따로 내장 따로 부위별로 잘라놓고 서로 나누어 가져가던 생각이 난다. 시골 장은 아직도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정육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고기가 한 근(600g)이다. 앞다리 부위로 한 근에 6000원인데 5000원만 내라고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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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내 주요 비엔날레들은 오랜 연구 없이 잠시 반짝한 남북한 화해 분위기에 기생한 전시를 기획에 빈축을 샀다. 작품 ⓒ천민정


올해 총선에 나선 여당 예비후보들의 주된 표제는 문재인 대통령 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길을 걷다 보면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건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으며, 예비후보 경력에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포함시킨 경우도 심심찮다.


단지 전·현직 대통령 이름을 빌렸다고 지역일꾼으로 뽑는 유권자들이 있을까 싶다가도, 효과가 있으니 저런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국민들을 위한 정책과 비전이 아닌 이념과 계파주의로 승부하려는 전략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아니, 솔직히 필자는 그들의 양태를 친문마케팅이라 쓰고 ‘기생 정치’라 읽는다.  


일반적으로 ‘기생(寄生)’은 숙주(宿主)에 의지하여 생존·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숙주와의 관계에 따라 공생하기도 하나, 대체로 해를 입히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술계에도 기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시에서 곧잘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2018년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북한’이었다. 당시 국내 주요 비엔날레 중 한 곳은 출품작의 다수가 북한을 주제로 한 것이었으며, 또 다른 비엔날레는 아예 섹션 하나를 북한 선전화로 채웠다. 이밖에도 북한을 다룬 사진전, 북한미술 소장품전 등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문제는 오랜 시간 연구된 성과로서의 전시라기보다는 잠깐 반짝하고 말 남북한 화해 분위기에 기생한 전시였다는 데 있다. 또한 정치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면서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는 기획들이었음에도 숱하게 만들어지고 이내 산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숙주로부터 필요한 영양성분을 섭취하여 살아가는 기생 전시들은 드물지 않다. 원작의 가치 따윈 아무 의미 없다는 듯 거장들의 이름에 빌붙어 예술인 양 하는 ‘짝퉁전시’들이 그렇고, 감동의 기억에 앞서 기록을 우선시하는 인스타그램용 전시들이 그렇다. 


여기에 우리 작가들을 외면한 채 막대한 세금까지 퍼주며 모셔오는 외국 작가들의 사대주의적 이벤트성 전시와, 연예인들의 자본과 유명세에 묻어가는 수준에 불과함에도 거창하게 가공된 전시들 역시 기생 전시라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전시들은 시류에 편승한 대중영합주의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 호들갑스러운 마케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기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만 한국 문화예술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되고 나면 후회와 공허함만 부유한다. 허옇게 포토샵을 한 얼굴을 한 정치인들의 표제를 볼 때마다 떨쳐내기 힘든, 그 경험적 후회와 공허함과 똑 같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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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베 동굴 벽화(왼쪽)와 아스퍼거 증후군 나디아의 그림(오른쪽).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기록이 없기에 당시 그림을 그린 예술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동굴 벽화는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져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출입이 용이한 입구에서 생활했기에 벽화가 그려진 장소가 깊숙하다는 것은 특별히 소중한 공간이었다는 의미다. 마치 현대의 성당이나 신전처럼 신성한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동굴 벽화는 사제나 제사장처럼 신성한 공간을 관리하는 주술사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주술사의 성별이다.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오래된 조각에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술사는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단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자폐증이라 불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 반면 이미지 사고력과 기억력이 뛰어나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겪는 생생한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인 템플 그랜딘은 뛰어난 동물학자이자 축사디자이너다. 그녀는 동물들이 이미지로 사유한다고 주장하며 동물 입장에서 축사를 디자인한다. 기억력이 뛰어나기에 도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상상만으로 완벽한 디자인을 해낸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나디아는 생후 2년6개월 때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묘 능력은 정확하고 생생했다. 나디아가 그린 말은 마치 쇼베 동굴 벽화를 연상시킨다. 나디아의 그림을 분석한 심리학자 니컬러스 험프리는 문자가 없던 인류의 마음이 아스퍼거 증후군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추론했다.


위 내용을 종합하면 동굴 벽화를 그린 주인공의 직업은 주술사이고 성별은 여자이며, 그림으로 사유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아스퍼거 증후군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추정을 통해 여성 화가가 드물고 아스퍼거 증후군을 정신장애로 취급해온 인류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위 ‘문명’이라 불리는 문자 이후 시대가 과연 문명적인지.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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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2019. ⓒ 황수현


사실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경험하는 육체적 통증을 나는 느낄 수 없으며, 타인의 행복, 슬픔의 감정 역시 그저 상상할 뿐 정확히 그의 느낌에 닿을 수는 없다. 만일 내 경험이 축적한 느낌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타인의 감정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사치의 ‘느낌’을 찾아냈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를 향해 표현한 공감의 제스처가 타인의 마음에 닿았다면, 그때 우리는 공감했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공감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서로의 느낌에 닿지 못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황수현 연출로 세 명의 퍼포머가 둥글게 모여 앉은 관객 사이에서 1시간가량 펼친 퍼포먼스는 세번째 날의 분위기가 가장 무거웠다고 했다.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가린 세 퍼포머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있다. 관객마저 ‘관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퍼포머들은 똑딱거리는 시계추처럼 발을 까딱대며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극도의 긴장감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 움직임이 만드는 근육의 감각을 상상하면 알아차릴 수 있다. 문득 옆자리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는 퍼포머의 동작은 그로테스크와 유머 사이를 오갔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리듬은 다채로워지고, 호흡은 휘파람에 실려 서로 신호를 주고받듯 허공을 가로질렀다. 의자를 타고 넘던 그들의 몸은 바닥으로 향하고 서로 얽혀들어 움직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날의 관객들은 견고했고, 좀처럼 퍼포머의 유머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날의 관객들은 퍼포머들이 느끼는 것을 생각했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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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행운집 할매는 자기가 나온 책 <삼천 원의 식사>(눈빛)를 가져다주러 간 나를 반긴다. 지금은 시장이 모두 새로운 구조로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세 평 남짓한 낡은 가게에 탁자 두어 개와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몇 개가 전부인 허름한 국숫집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이었다.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와 앉자마자 그곳의 분위기가 객쩍은지 한 남자가 친구를 가리켜 무슨 회사 전무라고 하니까 주인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여긴 시인도 오구먼요.” 나는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시인’을 주저 없이 우선으로 여기는 주인장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이 집의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팥 칼국수, 동지 죽으로 단출하다. 잔치국수는 맑은 장국에 양념간장 한 술 넣고 애호박 채 몇 가닥 얹은 국물 맛이 시원하고, 애기상추와 직접 담근 고추장을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비빔국수도 맛깔 난다. 막걸리 한 병을 시켜도 눌린 돼지 머리와 얼갈이김치 안주가 나온다. 국수 씻을 때 곁에 서 있으면 국수 몇 가닥을 집어 올려서 손가락에 감아 입에 넣어준다. “맛나제라. 이것이 젤로 맛나.” 흐흐 웃음이 절로 난다. 잔치국수 시켜놓고 옆에서 주문한 팥 칼국수가 맛있겠다고 하자 한 국자 나누어 끓여서 작은 그릇에 떠준다. 늘 무심한 얼굴 뒤에 이런 정이 숨어 있다. ‘행운집’ 할매는 십년 전에 3000원 하던 국수값을 500원 더 올릴까 말까를 망설이면서 아직도 3000원을 받고 있다.


<김지연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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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의 생각그림

종이에 아크릴 펜(21×31㎝)


빠져 버렸습니다. 나오려고 해 보았지만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다들 구멍에서 빠져나가려 허우적대고 있지만, 아무도 빠져나간 사람은 없습니다. 빠져나가더라도 그것은 잠시. 또 다른 구멍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모두들 각자의 크고 작은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지만,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민은 그림자처럼 언제나 나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이상하듯, 고민 없는 사람도 이상할 거 같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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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인스타그램 계정


“여러분, 환영합니다. ‘더 스크랩’은 한국의 창작자들로부터 홍콩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사진/이미지를 전달받아 출력하고 전시합니다.”


2016년, ‘사진을 보는 일, 생산하는 일, 유통하는 일에 대한 고민과 의문’으로 출발한, 일종의 사진 유통 플랫폼 ‘더 스크랩’은 이미지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같은 크기, 같은 재질의 사진 가운데 취향에 따라 사진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예술품 유통의 현실뿐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 감각, 청년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문제의식도 이끌어냈던 이 기획은 이제, 서로 교류하고 취향을 확인하는 경험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를 통해 각자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고, 세상과 연대하는 경험의 장을 만들면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홍콩 바깥의 우리가,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의 현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인터넷의 사진, 영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SNS에 떠 있는 사진에 ‘좋아요’와 ‘공유’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일 말고 그들과 연대하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 기획단은, ‘닿을 수 없는 연결이 주는 무기력함’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2019년의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에서 구매권을 구입한 1282명의 관객은 165명·팀의 작가들이 출품한 1000여장의 사진 가운데 각자 10장을 선택하여 한 권의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이들의 책은 2부씩 제작되었으며, 선택자의 사인이 담긴 1부의 스크랩북은 1월 열리는 홍콩 아트북페어 기간 동안 홍콩 시민들에게로 간다. ‘더 스크랩’은 멈추지만, ‘교류가 연대가 되고 지역, 문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지형을 그려보고’ 싶은 이들의 바람은 계속 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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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상회 연작. 2010. ⓒ 김지연


‘근대화상회’를 찍고 10년이 지났다.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근대화상회’ 주인장의 둘째 사위인데 <근대화상회> 책에 나온 ‘장인’어른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다음날 큰딸 부부와 작은딸 부부라면서 네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 모두가 ‘근대화상회’가 있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같은 동네 친구들로 아버지 때부터 막역한 관계여서 결혼도 위·아랫집으로 사돈을 맺은 것이다. 


백운장은 임실, 성수, 마령, 진안, 백운 등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 판돈을 미처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이불 홑청에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꾸깃꾸깃한 돈을 밤새 펴는 것이 일이었다고 큰사위가 입담 좋게 늘어놓았다. 작은사위는 많은 자료를 엮어서 가져왔다. 이미 사라진 ‘근대화상회’를 중심으로 ‘가족사’를 책으로 엮어 보겠다고 가편집을 해서 들고 온 것이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책이 만들어지면 가져오라고 당부를 하면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엮은 <진안골 졸업사진첩>을 선물로 주었다. 


오늘 둘째 사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졸업사진 책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았다며 그 내력까지 적어 보냈다. ‘1946년(14세) 6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1945년 해방이 되자, 나라가 어수선하여지고 다음해(1946) 3월이 되었어도 졸업식은 연기되고, 그해 여름에 졸업식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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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45×53㎝)


지하철을 타니 온통 검정 외투를 입은 사람들뿐입니다. 거기다가 요즘 유행하는 롱 패딩을 입고 있으니 거대한 검정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 밖으로 나와 보아도 세상은 무채색뿐입니다. 흐린 겨울 하늘과 칙칙한 회색 건물들만 잔뜩 있습니다. 


색이 필요합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찾아낸 것은 살짝 보이는 노란색 목도리와 빨간색 립스틱뿐입니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지만 알록달록 예쁜 색들이 보고 싶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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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자연에 가까운 건축. 구엘 공원의 열주 회랑.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우디를 떠올린다. 마치 도시 자체가 한 건축가의 이름으로 등식을 성립하는 특이한 경우이다. 가우디가 제자들에게 남긴 중요한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실 인간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발견할 뿐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 질서를 갈구하는 건축가는 신의 업적을 모방함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독창성은 창조의 근원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과 기술을 통해 기발한 것을 만들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바탕이 되는 재료는 항상 자연으로부터 온다. 공기나 빛, 광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자원들 모두 인간이 무에서 창조한 것은 없다. 창조의 주체는 조물주인 자연일 뿐이다. 또한 자연에는 무수히 상호 작용하는 관계성이 존재한다. 식물의 광합성이나 먹이사슬에 있어서 어느 하나의 기능이 다른 것들의 존재를 성립하게 하고 그것들의 복합적인 체계로 자연은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는 그러한 관계성의 차원을 한 단계 확장하고 자연의 요소들을 표현이 아닌 원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사진은 가우디가 1914년에 완성한 구엘 공원 한쪽 언덕 하부를 들어내 열주로 떠받친 산책로이다. 마치 나무줄기같이 기울어진 기둥들은 공원 내 도로를 내기 위해 파쇄한 쓸모없는 돌들을 사용하였다. 기둥 상부에는 주변에 자라고 있던 야자수를 심고 돌기둥 위에 놓인 뿌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 안으로는 물이 흐르게끔 만들었다. 지면으로부터 나온 돌을 인간의 지혜를 활용하여 건축함으로써 야자수가 자라는 자연의 일부로 다시 환원시킨 것이다.


조경과 건축의 구분이 의미 없고 땅 자체가 건축인 구엘 공원은 구석구석이 이러한 가우디의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건축을 자연과 조화시키는 방식, 디자인을 자연으로부터 차용한 것을 보고 종종 ‘아르누보’ 건축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아르누보 건축은 식물이나 동물의 표면적 형태를 모티프로 장식화하는 것에 비해 가우디의 건축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내재된 질서를 자연에 근접시키고자 하였다. 자연을 담고자 하는 그의 수법은 그것을 이론이나 공식으로 파악하는 과학자이라기보다 직관에 의해 파악하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내는 장인에 가깝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감각에 의존하게 되고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만 습득이 가능한 것이다.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금욕생활과 작업에만 몰두한 가우디는 공사현장 앞에서 전차에 치여 1926년 78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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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체 바리니,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2017, 오스나브뤼크 마르크플라자, 독일, ⓒ펠리체 바리니


펠리체 바리니가 도시 곳곳, 그러니까 건물 바깥의 길, 벽, 지붕, 유리창, 아니면 쇼핑몰이나 사무실 내벽과 천장, 복도에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려넣은 것은, 사람들을 모두 어떤 단 하나의 자리에 세우고, 단 하나의 장면을 목격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감탄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작가가 설정해 둔 어떤 위치를 찾아 그곳에 선 자는,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페인트 자국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꽤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별 의미 없이 조각난 듯 보이던 색면이 마법처럼 하나의 형태로 모이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관객은 3차원 공간이 그 패턴으로 인해 입체감을 상실하고 평평해 보이는 경험을 한다. 작가는 그렇게 관객들이 건축과 도시를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단다.


그러나, 작가는 관객 모두가 이 하나의 자리에 서서 바로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갖는 의미로 자주 언급하는 바로 그 의미, ‘일상을 새롭게,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나는 경험은 조각난 페인트 자국이 흩어져 있는 공간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전에 없던 선들을 툭툭 마주치는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과 다른 느낌으로 공간을 경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그가 ‘큰 그림’을 그린 건 맞지만, 여기에는 관객의 동선과 관점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으니, 어떤 위치에 서고, 어떤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느냐는 오롯이 관객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거다. 그래서 관객들은 늘 그랬듯 무심하게 공간을 배회해도 좋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내 위치에 따라 자꾸 변하는 풍경 속 패턴의 향연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문득, 그의 작품을 즐기든 말든 그의 설계 안에 갇혀 통제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눈을 굴려보지만, 그 답은 외면하고만 싶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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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의 생각그림

나무에 아크릴 펜(10×16㎝)

 

 

2020년 새해를 맞이하여 다짐을 해봅니다. 이루고 싶은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적어 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에게 새해는 달력의 숫자 하나 바뀐 것뿐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을 해봅니다. 운동, 금주, 독서, 글쓰기, 여행 등등.

과연 이 많은 다짐 중에서 몇 가지나 지킬 수 있을지는 또 올해 연말이 되어서야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또 후회하고 또 다짐하면서 무한 반복되는 하루를 그리고 일 년을 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다짐을 행동으로 옮겨 보아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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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이름 모를 들꽃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대부분 화려하지도 않은 색깔에 시선을 끌 만한 자태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주하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어떨 때는 아예 세월아 하고 시간을 보내는 날도 꽤 있다. 좋으니까 그렇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일 없이 진득하게 서 있는 그 순간이 참으로 기쁘다. 어지러운 일상도 내려놓고 입도 지그시 다문 채 그저 지금 그 순간을 즐긴다. 평화에 젖어드는 느낌이랄까.

 

몽골 초원에서 긴 시간 마주했던 이름 모를 들꽃. 2019. 몽골. ⓒ임종진

 

내 성정이 평화로워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꽃 자체의 기운으로 내가 평온을 얻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 당당히 서 있지 않은가. 눈에 띄지 않는 그 평범함이 오히려 진득한 아름다움으로 변해 유난히 내 눈에 든다. 세상 어디에도 하찮게 여길 사물이란 없다는 것을 이 작고 이름 없는 들꽃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온전하게 지켜가는 삶이길 소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들꽃으로 인해 느낀 이 위로와 평화의 기운을 나는 누구에게 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이 참 빠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곧 세월이라더니 그야말로 실감이 난다. 기해년(己亥年) 365일의 ‘오늘하루’를 다 채우고 어느새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의 문이 열리는 지금, 새해 인사를 겸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년 1월 첫 주에 이 지면을 통해 ‘임종진의 오늘하루’를 시작하면서 끝을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1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모두 채우고 마치게 되었다. 지면을 허락해준 경향신문과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듬뿍 받으십시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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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미술계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서 역량 평가 낙제점을 받아 탈락한 후보가 재시험 기회를 얻어 최종 선발되면서 ‘코드 인사’ 논란이 거셌다.

 

당시 관장 후보는 민중미술계열의 근대미술사학자인 윤범모씨였고,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고위직을 역임한 도종환씨였다. 내 편 네 편 진영에 따라 달리하는 양심을 지닌 일부 기회주의자들을 제외하곤 미술계 구성원 대부분은 불공정한 관장 공모 심사 과정에 분노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액면 그대로 믿었기에 배신감도 작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 남궁선

 

그로부터 1년, 윤범모 관장체제 아래에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야말로 무색무취였다. 애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마저 사치일 수 있으나, 그래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과 맞물린 해인 데다 코드 논란으로 인한 부담 때문에라도 보통 성적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우선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비롯한 제니 홀저, 안톤 비도클, 아스거 욘, 문명 등 4개관에서 40여개의 전시가 1년 내내 열렸지만 사회적 담론 생성엔 미약했다. 이렇다 할 이슈를 이끌지도, 의미 있는 공론의 장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저 전시장 문을 연거푸 열고 닫는 게 전부였다. 윤 관장 스스로 제시한 비전 및 중점 과제에서조차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미술사 복원’이다. 그는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과의 교류를 모색해 근현대 미술사를 복원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재 그의 호언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연구와 사전 조율 없이 정권의 이상향에 기댄 비현실적인 계획이었음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야심차게 밝힌 ‘국제화 교두보 확보’는 안갯속을 헤매고 있으며, 글로벌 미술관에 필요한 브랜드 차별화 전략 또한 부재하다. 분관장 부분을 포함한 조직 안정성 측면도 미완으로 남았다. 특히 윤 관장이 그동안 수차례 언급한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은 몇 년 하다말 신분으로 과연 해낼 수 있는 과제인지 의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못한 전시의 질(質)과 그에 따른 성과 및 능력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윤 관장을 따라다닌 건 ‘이념 편향’ 논란이었다. 실제로 일부 미술인들과 보수 언론은 몇몇 전시를 예로 들며 촛불시민정권의 코드에 맞춰졌다는 주장을 내놨다.

 

물론 이런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편향 지적을 받은 ‘광장’전의 민중미술만 해도 삶 속의 예술과 예술 속의 삶을 우리의 상황과 연결한 한국 최초의 자생적 사회변혁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비중이 남다른 건 당연하다. 따라서 일각의 ‘국립운동권미술관’ 운운은 과한 해석이다. 정치적 목적이 뻔하다.

 

오히려 이 전시와 관련한 진짜 문제는 진품과 복제품을 구별하지 못한 채 근대미술품을 내걸었다가 부랴부랴 교체하는 등 기획 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데 있다. 근대미술사가가 관장으로 있음에도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치욕이다.

윤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혹자는 성과를 논하기엔 다소 이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럼에도 합격자까지 밀어내며 불공정하게 자리에 앉히거나 앉았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했다. 1년에 10년의 고민을 담았어야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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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레키, Dream English Kid, 1964-1999AD, 2015, 4:3films, 5.1 surround sound, 23분 2초 ⓒMark Leckey, Cabinet London


이제,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뮤지션 양준일에 대한 정보는, 그가 <슈가맨>에 나와 이슈몰이를 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을 떠다녔고, 사람들은 20년 전 영상 속 그의 모습을 ‘시간여행자’라 호명하면서, 바로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기억과 시간에 접속했다.


유튜브에서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부틀렉 음원을 발견한 작가 마크 레키는, 1979년 그의 나이 15세, 리버풀의 클럽 ‘에릭’에서 이 밴드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밴드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음원은 그의 15세를 환기시켰다. 어느 정도 희미해진 그의 기억들이 온라인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반기를 ‘온라인 데이터’로 정리하기로 한다. 


그는 영화, 광고, 뉴스, 드라마, 뮤직비디오 영상을 뒤적이며 자신이 태어난 1964년부터 Y2K버그에 대한 염려가 온·오프라인의 세계를 위협하던 1999년까지, 그의 인생에 닿아 있는 정보들을 찾아냈다. 1964년에는 미국의 무인 달 탐사선인 레인저 7호가 달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고, 1983년에는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했다. 비틀스가 전 세계 음악팬의 인기를 휩쓸었다. 레이브 파티가 젊음을 흔들었다. 유튜브, 비메오에서 추출한 많은 푸티지들을 자신의 호흡과 템포로 매만지니, 그의 기억에 닿는 모양새로 얼추 끼워맞춰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내가 했던 경험들을 복제하려는 것 같다.”


그가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 엮는 이 작업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나와 나의 세대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다루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는 작가는, 온라인에서 우리의 과거를 집단기억으로 부활시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은 왜곡과 삭제의 과정을 거칠지언정,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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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15×28㎝)


크기가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비싸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선물은 어떤 것이라도 받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줍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선물을 고민하고 구입하고 포장한 그 마음이 고맙고 예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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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 크게 위로를 받았다는 나의 책 <천만개의 사람꽃>. 2019. ⓒ임종진


나의 사진이 가진 쓰임새는 과연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무는 날에 이르러 숙연한 마음으로 지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허허로운 생각이 커지면서 이내 삼고초려의 심정을 벗 삼아 스스로 맘을 달래본다. 그나마 얼마 전에 있었던 가슴 뿌듯한 기억 하나가 크게 위로가 되었다. 무척 바라긴 했으나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졌다. 민망함에 손사래를 쳤지만 말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두 눈가가 벌게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세상에 내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 절판까지 된 나의 책 <천만개의 사람꽃>을 읽은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믿고 따르는 한 인생 선배가 주선한 모임 자리에 참석했다가 내 이름을 알아본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암투병을 하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그녀는 이 책을 읽고 크게 위로를 받았으며 그로 인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내게 말했다. <천만개의 사람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8개 나라를 오가면서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이 지닌 가치를 사진과 짧은 글로 담담히 풀어낸 책이다. 출판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으며 이제 구할 수도 없는 이 낡은 책 한 권이 그녀에게는 생의 희망을 찾는 동력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는 오히려 내게 커다란 위안의 메시지였다. 세상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는 지금, 그동안 나의 곁을 지켜준 모든 이들에게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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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안내쉼터. 건축은 무수한 제약들을 빚어 만드는 예술이다.


올 한 해 초청된 건축 강연회마다 청중에게 공통된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받았다. 하나는 창의적 설계들에서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두 번째는 다음번에 만들어 보고 싶은 건축은 어떤 것인가이다. 먼저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약’이고 두 번째에 대한 것은 ‘아무 제약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뭘 한다 해도 특별하게 만들 수 없다’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무릇 똑같은 장소란 없는 법이다. 모든 땅에는 각기 다른 제약이 존재한다. 대지 조건과 규모의 제약, 법규적인 제약,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등 매 프로젝트는 매번 다른 제약들을 내포하고 있다. 건축가는 늘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 직업이다.


훌륭한 디자인이란 가만히 보면 수많은 제약들을 극복하면서 비로소 그곳에서만 실현 가능한 매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매번 다른 제약 조건과 대지가 가진 잠재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공간, 구조, 형태, 재료 등 건축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에서 미지의 끝자락까지 끌고 나가는 것. 나는 항상 상반되고 모순적인 가치들의 양극을 오가며 고민한 끝에 비로소 한 획 한 획 건축 도면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뇌의 진폭이 크면 클수록 결과물은 역동적으로 완성된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와 그것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 또는 공간을 매개로 한 관습화된 상호 관계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마주치게 되는 제약들에 대해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제약들을 교묘히 회피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진부한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들 자체가 복잡한 시계태엽과도 같이 서로 긴밀히 얽혀 지렛대처럼 상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 주된 방법론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장점만큼이나 약점들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개인의 개성은 장점이 아닌 단점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 본다. 단점이 치명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만큼 발휘되는 개성은 남들과 차별화될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제약들을 사랑한다. 그 제약이 많으면 많을수록 꼬여 있으면 꼬여 있을수록 매력적인 프로젝트의 충분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영화의 거장 오손 웰스는 ‘예술의 적(敵)은 한계의 부재’라고 했다. 그림자가 깊을수록 대상은 밝게 빛나며, 건축은 무수한 모순과 제약들을 빚어 만드는 예술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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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손바닥 도상은 약 5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사실 손바닥 그림은 세계 곳곳의 구석기 유적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은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서 손의 윤곽이 드러나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했다. 


그럼 전 세계 구석기인들은 왜 손바닥을 그렸을까? 구석기 시대는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그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원시미술을 볼 때는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손은 나를 표현하고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두 발 보행을 시작한 영장류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도구를 발명하는 등 손을 자주 사용하면서 뇌도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발달된 뇌는 다시 손을 통해 생각을 표현한다. 손바닥을 치며 감정을 표출하고 손짓이나 악수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 연애도 손잡기에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구석기인들에게 손은 상당히 중요한 매체였다. 손바닥 그림은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알리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벽에 그려진 손바닥들이 마치 현대의 지문처럼 동굴에 거주하는 각각의 사람들을 의미한다면 누군가 그 벽화를 통해 부족의 규모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호주 카나본 국립공원에는 손바닥과 부메랑 같은 도구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이 부족의 규모와 성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초 표현주의 미술이 등장했다. 표현주의 미술이란 보이는 대상을 재현하는 미술 형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한 미술 양식이다. 표현주의 미술은 디자인 분야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구석기 원시 예술에 주목한 표현주의 미술가들은 인간의 본능과 내면의 원시성을 강조했다. 이들도 구석기인들처럼 자신들의 손바닥을 그림에 찍었다. 


우리 집에도 표현주의자가 한 명 있다. 그는 종종 물감으로 손바닥 찍기를 즐긴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구석기인들이 남긴 흔적과 표현주의 미술가들이 주장한 인간의 본능이 떠오른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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