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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 펜(35×25㎝)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꺼져있는 휴대폰 화면에 비친 나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피곤이 잔뜩 쌓인 표정의 아저씨가 보입니다. 그리고 고개 들어 퇴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들이지만,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사람, 무언가 고민이 가득한 찡그린 표정의 사람,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았는지 혼자 히죽거리는 사람,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열심히 꽃단장하는 사람,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고 있는 사람 등 모두들 자기만의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보기가 좋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 속 나의 얼굴을 보며 한번 쓱 웃어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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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2016년 3월23일. 자신을 고문했던 505보안대를 찾은 5·18유공자 이성전씨가 36년 만에 지하 고문실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딛고 있다. ⓒ임종진


“저게 뭐이냐믄 나를 의자에 앉혀 묶어놓고 몇 시간씩 벽을 보게 하고 고문하던 그 자리요. 암튼 밤낮으로 맞고 터지고 그랬으니께! 참말로 나도 여그서 죽겄구나 싶응거이 반항은 생각도 못혔제.” 한 낡고 오래된 건물 지하계단에 내려선 이성전씨(70)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시의 기억을 토로했다. 몇 해 전 자신을 고문했던 ‘505보안대’를 처음 찾아간 그는 훼손되고 억압되던 ‘자기’를 직면했다. 칠성판에 묶인 채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으로 몸서리치던 자신을 36년 만에 다시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80년 오월 당시 시민군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들을 오가며 온갖 고문수사를 받았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고문에 의한 뇌졸중으로 몸의 반쪽까지 마비된 상황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 온 이씨는 최근 다시 절망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얼마 전 오월정신을 폄훼하는 일부 정치권력자들의 국회 발언이 알려진 직후였다. 그는 ‘부서진 몸이라도 벌떡 일으켜 역사의 진실을 남기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지팡이를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겨우 삶의 의지를 회복해 가던 터에 또다시 분노와 좌절감으로 치를 떨게 된 것이다. 진실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신의 몸을 강제적으로 유린당했던 이들에게 회복의 이유이자 살아갈 명분이다. 내년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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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차도는 1968년 만들어진 940m 길이의 아현고가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도로를 공중으로 들어 올린 고가차도는 근대화의 찬란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전국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환경적으로 집과 거리에 그림자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지역을 단절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가를 허물고 아래 하천을 복원하거나 구조를 보강해 상부에 공원을 만드는 수고를 하고 있다. 이런 급진적 시도들을 전반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능상 철거가 쉽지 않은 고가가 서울에만 180여개에 달한다. 고가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는 면적으로 따져보면 여의도의 절반, 축구장 200여개에 맞먹는 규모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고가 하부 공간은 주로 노상 주차장이나 창고와 같이 방치되어 있지만 점차 가용지가 부족해지는 고밀화된 도시에서 잠재력 있는 유휴공간이기도 하다.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보자. 지역을 단절하던 고가 하부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해 다시 이어줄 수 있다. 이곳에 주변 어린이들을 위한 다목적 북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자. 책 읽기가 정말 재미있다는 사실을, 오늘 미디어세대 어린이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책에 빠져드는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면 좋을 것이다. 고가 하부에 독서 아지트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자. 방과 후 어린이의 책놀이터이자 함께 오는 부모들의 사랑방, 퇴근 후 직장인들의 여가 활용을 위한 공간, 주말에는 인근의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 문화강좌 등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공간으로 만들자. 책과 지식을 매개로 해서 주민이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고가의 선형적인 특성을 활용해 지역을 가로질러 확장시키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근 보행권 거리 내의 다양한 특색 있는 공간들과 연계해 활용한다면 마을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고가 하부 활용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다만 대부분 상업적 용도라는 아쉬움이 있다. 도시 재생 측면에서 20세기 말 스페인의 빌바오 효과는 스타 건축가로부터 비롯됐다. 낙후된 발바오 지역에 구겐하임미술관이라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만들어진 후 관광객이 몰려들고 호황을 맞았다. 또 뉴욕의 하이라인같이 폐기반시설을 녹지로 전환함으로써 재생효과를 얻은 사례도 많다. 이에 비해 고가 하부 유휴지의 다목적 북카페는 보다 쉽게 만들고 이용할 수 있는 보행 가로의 입체적 재생방식이 될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Posted by Kh-art

버지니아 리 몽고메리, 허니문, 2018, 4K 디지털 비디오, 2분50초, 뉴욕 타임스스퀘어 설치, (사진촬영: Ka-Man Tse)

 

건물 입면 대부분을 전광판으로 뒤덮은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시공간 안에서 현실감을 장착하는 건 어색하다.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이다 못해 ‘우주의 중심’이고자 한다는 이 ‘세계의 교차로’에 들어서면, 빠른 섬광을 날리며 롤리팝처럼 돌아가는 현란한 광고 영상에 시선을 빼앗겨 생각을 멈추기 일쑤다.

 

타임스스퀘어 연합이 뉴욕 광고 클럽과 제휴하여 광고용 전광판에 ‘예술’을 담기 시작한 것은 더 다양한 홍보 콘텐츠를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능하고도 불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와 배양하고, 활용도 만점의 콘텐츠로 성장시키는 역량을 과시하여, 100년 이상 오락, 문화, 도시 생활의 아이콘으로 군림해 온 타임스스퀘어의 창의성과 에너지를 무한 작동시킨다. 이 모든 작업은 파트너들에게 여기 전광판이 그들의 브랜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이곳에서 최고의 사업성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타임스스퀘어는 전 세계 다른 도시에 ‘프랜차이즈’를 흩뿌리며 지구상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상업지구로서 영생을 누릴 태세다.

 

타임스스퀘어 아트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2012년 시작한 미드나이트 모먼트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곳곳에 밤 11시57분부터 자정까지 영상 작품을 상영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2월 작품을 상영 중인 버지니아 리 몽고메리는 꿀이 흐르는 달을 들고나왔다. 화면을 가득 채운 하얀 달은 여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그 위로 금빛의 꿀물이 흘러내린다. 주변의 광고판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달팽이인 양 느리게, 끈끈하게 흘러내리는 꿀물은 시간의 뒤꿈치라도 붙잡은 모양새다.

 

“우리는 종종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달을 붙잡는 영감은 꿈에서 나왔다. 꿈에서 나는 달을 만지고 평화를 찾았다. 타임스스퀘어는 너무 빨리 움직인다. 허니문이 속도를 줄이라고 부탁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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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나무에 아크릴펜(13×17㎝)

 

날이 따뜻해 공원으로 산책을 갑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습니다. 서로 짖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같이 잡기놀이도 하며 추운 겨울 집 안에만 있어야 했던 답답함을 친구들과 풀고 있는 듯합니다. 강아지 주인들도 서로 한마디씩 하며 강아지들이 노는 동안 짧은 대화를 합니다. 강아지를 위한 산책인지, 주인을 위한 산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산책으로 잠시나마 혼자인 것을 잊어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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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하나. 사진 속 누군가의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거나 한 점 잡숴 봐아! 배고프잖여어?” 오랜만에 만난 옛 지인을 향한 반가움 가득하게 건네셨을 말인사가 그대로 들렸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우셨던 듯 쑤욱 팔을 내밀어 가래떡 한 점을 권하시는 어머니의 온정이 방앗간의 후끈한 열기를 더욱 채워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가진 기운이 모락모락 따사롭기만 했다.

 

전남 장흥군 장평면 선정리의 동네 방앗간에서 조희철씨가 찍은 어머니의 모습. 2013·12.

 

상황 둘. 이 사진을 찍은 당사자이자 주인공 어머니 아들의 마음도 말을 걸어왔다. “아휴! 초점도 나가고 빛 노출도 안 맞고. 엉망이네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을 놓다가 부랴부랴 셔터부터 눌렀다는 그는 내심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엉망일 이유도 잘 못 찍은 사진도 아닌, 사진 자체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눈길이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에둘러 표현한 아쉬움마저 당신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2013년 12월28일 오전. 한 시골 동네 방앗간의 소박한 풍경이다. 관악구청 주무관으로 있는 조희철씨(46)는 울컥거리는 감동이 있는 그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로한 두 부모님을 가슴에 담는 시간을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그사이 부친은 임종하셨지만 올해 여든이 되신 위질순 어머니는 평생 하시던 대로 여전히 농사일로 소일하신다. 지금까지 희철씨의 사진들에는 무엇이 담겨졌을까. 몸과 마음을 함께 들일 때 사진은 도구가 아니라 사랑이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진은 사랑’이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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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임명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15년 한 칼럼을 통해 “관장 공모 형식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관에 관장이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역량 있는 적임자가 응모할 수 없는 구조”라고 썼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공모로 뽑는 현행 제도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불과 3년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정권이 바뀌자 없애야 한다던 관장 공모에 나선 모순을 드러냈고, 제도 자체를 ‘촌스럽다’고까지 한 소신은 온데간데없이 임명장을 받았다. 윤 관장은 같은 칼럼에서 당시 관장 선임을 차일피일 미루던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 인사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며 질타하기도 했다. 한데 문체부는 이번에도 인사 잡음을 냈다. 공직자의 최소 기준인 역량평가를 건너뛰려다 이미 속으로 정해놓은 ‘코드 인사’를 밀어주려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역량평가를 통과한 후보가 있음에도 탈락한 이들에게 재평가라는 혜택을 줘 특혜 시비가 일었다. 그 중심에는 윤 관장이 있었다.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1988). ‘다다익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징이지만 1년째 꺼져 있다. 문체부는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임명했으나 불공정 특혜 및 정권 코드 논란으로 시작부터 어둡다. ⓒ 국립현대미술관

 

윤 관장은 잡음의 배경인 지금의 문체부는 나무라지 않았다. 특혜를 거부하지도, 석연치 않은 인선 과정에서 발을 빼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처신은 부조리와 불평등, 반민주적인 것에 함몰되는 세태를 꾸짖던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위치와 가깝지 않다. 2002년 발간한 비평서 <미술본색>에서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던 준엄한 평론가와도 거리가 있다.

 

예전 같으면 진영, 색깔, 코드, 특혜라는 단어만 들어도 버럭했을 그가 침묵으로 넘겼다는 점은 2013년 한 글에서 패거리 의식과 인맥 제일주의를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이자 ‘근친상간의 구조’라며 격하게 표현한 예와 상반된다. 결과적으로 당착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윤 관장이 한국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서 적임자인지는 의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데 비해 그는 근대미술 이론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미술관장 경험이 없어 정책 및 경영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고, 더구나 첫 역량평가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공정·공평해야 할 기회를 갖가지 의혹, 논란으로 채웠다. 미술인들이 그런 문체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윤 관장이 역량평가를 두 번 받았다는 사실도 끝내 문체부가 숨기려 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미술인들의 어떤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미술인들은 부도덕, 불의한 세상과 부당한 권력에 맞선 민중적 사고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윤관장에게도 스스로 떳떳했는지 되물을 것이다. ‘한국에서 줄 없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던 <미술본색>에서의 역설이 실은 타자화한 본인의 민낯이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미술계의 갖은 연(緣)을 적폐로 규정하며 작가들의 의식 부재와 속물근성을 지적해온 그의 진실성에 금이 간 것이, 불합리함의 타파를 통한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 및 사회변혁을 담은 그동안의 말과 글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게끔 한 행태가. 이제 윤 관장은 이런 안타까움, 의혹과 비판을 불식시킬 만큼 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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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간대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국제공항에서 시계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동안 신체 시간이 엉켜버린 이들은, 시계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간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국제선 라운지에서 유럽 대륙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여행객이라면, 천장에 매달린 대형 시계 속 노동자의 안내에 따라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그는 3m 높이의 시계 안에서 1분마다 분침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마르텐 바스, 리얼 타임, 2016 스히폴 공항 설치 ⓒ마르텐 바스

 

롤러로 시곗바늘을 그린 뒤, 잠시 시계 안을 서성이거나 구석에 세워둔 붉은색 양동이에 노란 걸레를 헹구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다음 1분이 다가올 즈음이면 다시 노란 걸레를 들고 분침을 지운다. 롤러는 다음 ‘분’으로 향한다. 언제 출근과 퇴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노동은 진행 중이며, 그의 뒷모습이 시계 뒤편, 그가 출퇴근할 때마다 여닫을 게 분명한 출입구 작은 창문으로 아련하게 흔들린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는 스히폴 공항이 개장 100주년을 맞이하던 2016년, 국제선 라운지에 ‘리얼 타임’이라는 제목의 이 시계를 설치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실제 시간의 길이가 같을 때를 ‘리얼 타임’이라고 칭한다. 나는 시곗바늘이 말 그대로 실제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시계의 콘셉트로 ‘리얼 타임’을 활용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시계 안에서는 오히려 실제 시간이 추상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12시간 퍼포먼스 영상 ‘리얼 타임’으로 흐르는 시간의 실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퍼포머의 푸른색 작업복은 공항의 청소노동자를 상징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청소노동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시계 안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근면성실함 덕분에 ‘시간의 실체성’이 노동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서 흐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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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모종을 다듬고 있는 쿠카무커피협동조합 농부들. 르완다. 2018. ⓒ 임종진

 

‘천 개 언덕의 나라’로 불리는 곳이 있다. 해발 1500m의 고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국토가 수많은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데다 그 모습이 구름언덕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에 콕 끼어 있는 이 작은 나라 ‘르완다’의 역사는 기구하다. 서구 열강의 분열적 식민지배로 심각한 민족 간 갈등을 겪으며 수백만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던 가슴 아픈 내전의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몇 장의 사진들은 송곳처럼 가슴에 박혀 오래도록 남아 있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딛게 된 날 아련한 감흥이 먼저 일렁였다. 얼굴을 스치는 사람들마다 같은 느낌이 반복되었다. 과거의 상처에 기댔던 아픈 마음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천혜의 지역적 특성으로 커피 재배에 최적이라는 르완다의 시골 마을들을 두루 살피던 중, 수도 키갈리에서 서쪽으로 다섯 시간을 달린 뒤 큰 호수까지 건너 도착한 쿠카무 지역의 한 농장 풍경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손가락 마디마디 주름 가득한 이들이 주거니 받거니 손을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왔다. 커피모종을 매만지며 일일이 물을 주거나 섬세하게 모종을 다루는 솜씨는 정성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서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그들의 몸짓에 고개를 잠시 숙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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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의 생각그림

나무에 아크릴 펜(20×16㎝)

 

졸업, 입학, 입사, 인사이동 등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의 옆에는 누가 앉을까? 좋은 사람이 와야 할 텐데? 싫어하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짝을 기다려 봅니다. 좋은 사람이 오면 다행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올 한 해는 이 짝과 함께 보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보면서 저도 좋은 짝이 되어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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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치는 어느 저녁,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사무실에 그가 설계한 위스콘신의 윙스프레드 주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한 식사 도중에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져 난감한데, 어떻게 된 거죠?” 라이트는 당황한 기색 없이 “식탁 위에만 빗물이 떨어집니까?”라고 물었다. “그렇소. 음식들 바로 위에!”라는 대답을 들은 라이트는 “그렇다면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식탁을 옮기시고 식사를 계속하십시오”라고 했다. “…?” 건축가의 황당한 처방에도 집주인은 이후 라이트가 설계한 집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빗물이 조금 새는 것쯤이야 시공기술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후 간단히 해결됐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그 집의 공간적 가치였던 것이다.

 

윙스프레드 하우스 (1939년 완성, 1989년 국가 역사 기념물 지정)

 

건축 설계란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공간들을 조직하는 일이다. 주어진 기능을 생각하고, 건물이 자리할 장소의 의미와 훗날까지 유용할 시대적 가치를 담는 일이다. 자그마한 집 한 채의 설계에도 철학, 생태학, 환경학, 사회학, 도시계획, 공학, 시각예술 등 다양한 학문들이 동원된다. 짓는 과정에서도 건축가는 필요한 구조, 전기, 기계, 재료, 시공 전문가들과의 협동을 조율하는 중재자인 것이다.

 

건축가의 지휘 없이는 이 많은 전문가들의 팀워크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건축가에게 시공 전문가가 해야 될 일을 기대함은 잘못이다. 건물에서 물이 새는 것은 의학으로 말하자면 ‘감기’와도 비슷하다. 환자는 괴롭겠지만 감기는 의사의 문제라기보다는 간단한 처방으로 치유 가능한 것이다. 누수뿐만 아니라 단열, 차음 같은 것들만을 좋은 집의 절대조건으로 한다면 우리 건축문화는 도태될 것이다. 집이란 통풍, 채광, 조망도 중요하다. 사는 이의 안락함과 디자인의 심리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의 조화 속에서 좋은 건축은 만들어진다. 문명의 편의성이란 함정 앞에 전문적 요소에만 집착하다보면 공간이 가져야 할 인간성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라이트는 92세로 생을 접을 때까지 정열적으로 1000채가 넘는 집을 설계하였다. 그는 말년에 식탁을 치우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붕에서 물이 새지 않았다면 건축가가 충분히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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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메카스(1922~2019)의 편집실에는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작품을 완성하고 남은 필름조각을 담은 통이 잔뜩 있었다. 90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둔 2012년 어느 날, 그는 이 빛바랜 푸티지 가운데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의 장면들을 추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로 한다.

 

요나스 메카스,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 Out-Takes from the Life of a Happy Man, 2012, 68분 ⓒ요나스 메카스

 

그의 작업이 늘 그렇듯, 필름통에서 건져 올린 가족의 일상, 친구의 모습, 도시며 자연의 소소한 풍경, 고향 리투아니아로의 여행 장면이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질서’에 따라 연결되어 한 편의 서정시처럼 흐른다. 한때는 ‘완성작’에 적합하지 않아 잘려나갔던 장면이지만, 카메라가 스치듯 포착한 그 모든 순간은, 삭제되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오래된 필름을 편집하면서 그는 지금은 사라진 것들, 떠나간 사람들을 만났다. 그 장면들을 만지며 그는, 사라진 것들이 남긴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지나간 시간을 향한 회한에 잠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지나간 시간의 이미지를 그는 이를 ‘기억’이라고도, ‘과거’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메카스에게 그가 기록한 이미지는 ‘기억’이 아니라 모두 지금 여기에 있는 진짜다. “기억은 가버리지만 이미지는 여기 있으니, 당신이 보는 것, 보는 모든 순간, 여기가 진짜다.” 그는 영상에 이런 내레이션을 담았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전쟁 난민으로 떠돌다 미국으로 이주,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를 개척했던 요나스 메카스가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결코 과거를 찍지 않고, 찍을 수도 없고, 찍고 싶지도 않다. 나는 늘 지금 있다”고 말하던 그의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건 기억을 붙잡아주는 이미지 덕분이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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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삼척고정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고 김태룡씨가 처음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찍은 사진. 2017.2.


38년 만에 다시 바라본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 창문. 지난주 이야기의 주인공 고 김태룡씨가 생전에 직접 찍은 사진이다. 처음에 그는 자신에게 고문수사가 행해졌던 취조실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욕조와 세면대, 침대 등 고문도구로 쓰인 내부 시설 일체가 대부분의 모든 취조실에서 사라져 있기 때문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으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509호를 자신의 방이라 ‘우기는’ 촌극도 있었다. 


그는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당시 수사관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 겨우 주먹 하나 들어갈 넓이의 저 창문에 얼굴을 댔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가늠할 길 없는 이곳이 전철역 어디쯤이구나 싶었다던 기억. 열다섯 개의 취조실 중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은 서쪽 끝부분에만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방’을 찾았다. 온몸이 해체되는 고통이었다는 짧은 증언이 좁은 내부를 흔들었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다가 난데없이 고정간첩이 되어 ‘시커먼’ 차림의 기관원들에게 끌려갔던 곳. 자신만을 바라보던 순한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과도 헤어져야 했던 잃어버린 세월이 시작된 곳. 그곳을 계속 마주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억누른 공간과 끊임없이 ‘직면’하면서 도리어 안정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실로 당당하고 용감했다. 두려움과 분노를 조금씩 덜어내면서 되살아난 그의 웃음은 젊은 청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맑았다. 허망하게 명을 접은 고인의 삶을 기리며 그가 보여준 생의 의지를 되새겨 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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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8×20㎝)


그림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조용히 둘러보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특이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림 보며 화내는 사람, 방명록에 그림을 그리고 자기 그림 어떠냐는 사람, 그림 하나하나 꼼꼼히 다 보고 가는 사람, 작품을 건드려서 부서뜨린 사람, 뭐 먹을 거 없냐는 사람, 전시장 구석에 앉아서 애인과 빵 먹고 가는 커플 등등…. 세상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또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좋아하는 그림들도 다 달랐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그림, 다양한 반응들이 재밌는 전시회였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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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 놓인 미술을 공공미술이라 한다. 수준 높은 공공미술은 시대의 번역이자 정체성을 반영하는 기호이면서, 인간 감성을 환기시키는 심리 환경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공공미술을 일컬어 ‘공공재’라고도 부른다. 대가 없이 불특정 다수가 공동으로 마음껏 향유할 수 있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공공미술을 공공재라고 하면서 적지 않은 작품의 제작·설치 비용을 민간이 떠안는다. 정부지원금은 없다. 도리어 거리를 오가는 다중의 선호를 고려해야 하고, 적절한지 여부를 다루는 지자체 심의까지 거쳐야 한다. 내 땅에 내 돈으로 세우는 것임에도 그렇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건축물 준공검사도 받기 힘들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야 한다. 1만㎡ 이상 건축물을 신축 및 증축할 경우 건축비용의 1% 이하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한 건축물미술작품제도 탓이다.

 

고단한 삶과 현실, 노동의 고귀함을 담은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해머링 맨’(2002·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은 대표적 거리 미술작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물 미술작품은 도시 흉물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경한

 

본질은 사유재인데 공공재라는 무게를 강요하는 이 희한한 제도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당시 권장사항으로 출발해, 1995년 의무화됐다. 그 배경에는 작가들의 생존권 보장 및 일자리 창출을 통한 민생고 해결,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과 도시환경 개선이라는 구실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하지만 명분과 달리 이 제도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연간 1000억원대로 시장이 커지자 거간꾼들이 끼어들었고, 공공미술은 공공조형물 ‘사업’으로 둔갑했다. 소수의 전문 업체와 작가들이 설치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재산 활용의 제약에 건축주들의 불만도 쌓였다. 이는 이면계약, 꺾기 등의 편법과 심사위원 로비, 매수, 청탁과 같은 위법으로 이어졌다. 작품별 1억~2억원이 넘는 게 지천이지만 정작 작가들의 형편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상 하청업자로 전락했다. 이리저리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손에 쥘 몫은 거의 없다. 생존권 보장은커녕 불량 조형물 생산에 일조한다는 오해만 샀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설치된 1만8000여점의 건축물 미술작품 대부분은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 어렵다. 세계적인 거장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작 ‘꽃의 내부’를 무단 철거한 뒤 고물상에 팔아넘긴 부산 해운대구 사건처럼 사후 관리에 대한 인식도 엉망이기 일쑤다.

 

이쯤에 되묻게 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오늘날 과연 필요한가이다. 앞에서 벌고 뒤로 밑지더라도 당장은 먹고살아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재료비도 안되는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작가들, 매일 시각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시민들, 내 재산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건축주 등 어느 면에서든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와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는 이 제도는 시효를 다했다. 도시 흉물 양산의 원인인 이 낡은 제도를 이제 폐지할 때가 됐다. 그럼에도 공공미술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국가 예산으로 문화소외지역 등에 설치하고 기관 공모로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옳다. 조세부담에 대한 국민 동의 아래 장소와 규모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재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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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말들이 쏟아집니다.

생각이 말을 밀어내지요.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만

생각들이 통제당하면 또 병이 납니다.

 

마음이 생각을 만듭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노래가 되고요.

그런데

때론, 마음이 닫혀버리는 때도 있답니다.

아니면, 생각이 닫히고, 말이 닫히고… 그게 다 병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근래의 몇 년… 내 노래요?

내 안에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병이라 하지는 않고

다른 것에 열중이지요.

붓으로 쓰는 이야기들,

그것도 “말”이고 “노래”라고요.

 

아직은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말이 있답니다.

내 안에….

 

<정채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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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에밀리아 카바코프, 관용의 배, 2005년부터 진행 중, 혼합재료, 설치 ⓒThe ship of Tolerance


일리야와 에밀리아 카바코프는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진 어린이들을 예술언어로 교육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기획했다. ‘관용의 배’라고 명명한 이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민족의 어린이들과 예술가들이 ‘관용’을 주제로 3~4주 워크숍을 하고,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돛을 만들어 배에 달고 출항시키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이 작업의 바탕에는 인류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하는 카바코프의 질문이 담겨 있다. 더불어 이 작업은 분열된 공동체를 예술의 이름으로,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시도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가들은 문화권마다 관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워크숍을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과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어린이들은 워크숍 과정에서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론하면서 관용의 의미에 다가선다.


2005년 이집트 시와를 시작으로 베네치아, 마이애미, 아바나, 모스크바, 브루클린, 로마, 로스토크, 시카고, 런던 등지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각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현실에 따라 작가들에게 난제를 안겨줬다. 세상에 관용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이름’만 남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작가와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조율하며 기념비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간 모양이다. 


카바코프는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한들, 세상은 전처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관용의 배에 함께 오른다면,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오지 않겠냐는 희망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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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대공분실을 다시 찾아 자신이 고문당했던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고 김태룡씨. 2017.

 

영화 <1987>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지 않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이곳은 32년 전 대학생인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사망한 곳이면서, 오래도록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수사를 빙자한 고문으로 극심한 고통이 가해진 비극의 현장이다. 평소 찾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던 이곳은 영화가 ‘뜬’ 후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개봉 이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979년 삼척고정간첩사건 피해자 고 김태룡씨. 그는 군부정권 시기 수도 없이 조작된 간첩사건의 한 희생양이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받은 실제 당사자다. 간첩이라는 사회적 매장의 그늘 아래 모진 삶을 살아온 그는 2017년 2월 38년 만에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치욕스러운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던 그는 격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토해 냈었다. 이후 반복적으로 현장을 찾으면서 심리적 트라우마를 덜어내기까지 그가 보여준 자기회복의 과정은 처연하면서도 대단한 용기 그 자체였다. 대법원 무죄판결로 간첩의 오명을 벗어내기도 했다.

 

온전히 자기 삶의 가치를 회복해가던 그는 지난해 말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또 다른 ‘김태룡’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고 싶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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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오일파스텔(20×30㎝)

 

보기 싫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꾸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적당히 안 본 체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잊히지 않고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정말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을 안 본 눈을 사고 싶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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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와 어떠한 기능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 위대한 근대 건축가로 칭송받는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주된 건축적 사상이다. 지난 20세기 건축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두 가지 생각에 기초했다. 전자는 철저한 기능 분리에 따른 고밀도화, 후자는 특색 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으로 우리의 거주 풍경을 지배하였다.


르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1925·왼쪽 사진)과 미스 반데어로에의 프리드리히가 계획(1922)


르코르뷔지에는 1925년 역사 도시 파리 한복판에 거대한 간선도로에 인접하고 빛과 녹음이 풍부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을 상상하고 설계했다. 그는 이를 이상적인 미래 도시로 보았다. 이보다 3년 앞선 1922년 미스 반데어로에는 베를린의 낮은 석조 건물들 사이에 유리로 된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초고층 건축물을 제시했다. 두 작품 모두 어느 건축가도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건축’ 그 자체였다. 양대 건축가의 1920년대 이념들은 1950년대 초반 마르세유와 시카고에서 실현되었다. 


우리의 고층 아파트는 1964년 비로소 처음 엘리베이터가 들어간 11층 힐탑아파트를 효시로 1970년대 대단지 고층인 반포주공, 잠실 주공 등이 완공됐다. 우리나라의 주택 갱신주기는 30년으로 세계적으로 매우 짧다. 실제 구조물 수명보다도 지난 시대의 개발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잠실 5구역이나 중계동 백사마을 재개발의 경우 조합과 국제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의 마찰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사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치밀한 고민은 소수의 조합이 내세우는 편향된 이기심 앞에 진통을 겪고 있다. 건축이 가지는 공적 가치와 사유재산권 사이 갈등 속 우리의 사회적 합의는 아직 요원할 뿐이다. 


양적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난 시대에 이러한 개발에 의한 고층 고밀화는 큰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서울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은 100년 전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꿈의 결실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모든 도시민의 생활환경이나 복지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점차 줄어드는 인구에 지속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모델일까?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보다 높게’는 ‘보다 싸고 폭넓게 제공될 수 있음’이 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다 높게’는 단지 ‘보다 비싸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어디서나 똑같은 방식의 외관이 유리로 된 고층 아파트가 유행이다. 더 화려하게 보여야 내 아파트가 더 좋고 비싸고 가치 있다는 잘못된 망상. 땅의 문맥, 지역의 특색을 무시한 어디서나 균질하게 진행되는 방식은 도시의 특성과 활기를 평준화시키고 나아가 사람들의 표정까지 균질화시킨다. 


‘보다 (나만) 편하게, (남들)보다 높이, 보다 화려하게’ 프레임만으로는 인간은 결코 함께 행복해질 수 없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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