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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디포짓 영화 처럼 지독한 가뭄 속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혹은 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주인공이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지구의 미래를 극단까지 몰고 간 영화의 상상력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인류는 과연 무엇으로 생명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척박한 기후 속에서 싹을 틔울지는 모르겠으나 식량으로 삼을 만한 볍씨나 바나나 씨앗 같은 종자를 구해야만 할 것이다. 먹이사슬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쥐나 바퀴벌레,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의 유전자도 발견해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DNA도 필요할 것이며, 이 모든 생명체들의 복원에 지침서가 될 정보로서의 데이터 또한 필수일지도 모른다. 과연 이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지금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스위스 사진가 얀.. 더보기
50+1 임재천은 뚜벅이 사진가다. 운전을 못하는 탓도 있지만, 설령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고 간다 해도 그는 발로 걷고 몸으로 느껴 국토 풍경을 담는다. 그의 풍경 속에는 사람이 빠지지 않으니 그는 사람을 만나러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밥벌이를 해나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가식 없는 삶과 장소에만 마음이 가는 사진가들은 어떻게 밥벌이를 해결할까. 산천을 걸으며 사진으로 시절을 담는 일이 한곳에 붙박고 사는 이들에게는 꽤 멋진 한량 직업으로 비칠지 모르겠으나 사진가 본인에겐 밥을 낳지 못하는 노동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밥이 안된다고 해서 일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 작가로선 난감한 노릇이다. 이런 이들을 응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중에.. 더보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또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 내는 일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가는 과정이다. 그 시간 속에는 한때 미치도록 보고 싶던 이도 살고 감추고만 싶던 부끄러운 일들도 숨어 있다. 어쩌면 적당한 용기와 뻔뻔함 없이는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정근이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건 자신이 찍은 이들에 대해서 아는 게 의외로 많지 않다는 회의 때문이었다. 관심이 있다는 핑계로 사진을 찍지만 그건 결국 피사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우일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를 더 잘 찍기 위해서라도 나를 .. 더보기
183_3540_36152320 이미지는 점들의 조합이다. 텔레비전 모니터나 디지털 카메라에 맺힌 상들은 모두 이 입자들이 만들어낸다. 고해상이라는 건 그만큼 입자가 곱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을 맺는 이 입자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는 노랑색인데 녹색으로 인식하거나 색깔이 있는데 검정으로 인식해 버린다. 사양이 좋은 디지털 카메라여도 이런 불량 입자는 생겨난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자마자 처음 치르는 의식은 렌즈 마개를 닫고 촬영한 뒤 불량 화소를 점검해 오류를 정정하는 일이다. 대안공간 지금여기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김천수는 의도적으로 이 오류를 시각화시킨다. 픽셀 하나마다 가로, 세로 1㎝가 되도록 확대한 그의 작품에서는 이 불량 화소들이 선연한 색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작품 제목 ‘183_3540_361523.. 더보기
함일의 배 오랫동안 이 사진을 좋아해 왔다. 집 밖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온 듯 편안한 트레이닝 바지에 나름의 감각을 잃지 않게 만드는 빨간색 셔츠의 조화. 녹색 숲을 배경으로 그 빨강은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숲은 깊어 저 멀리로는 초록이 연두로, 다시 연둣빛 하양으로 변해간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로 숲과 조화롭게 어울린 그 분위기로 인해 그의 시선을 같이 좇을 뿐이다. 강렬하게 호기심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장면. 김옥선의 사진집의 표지 사진이다. 함일은 난파선을 탄 채 표류하다 제주에 정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한국식 이름이다. 김옥선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제주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함일을 초상으로 기록했다... 더보기
잠의 송 현장이라는 말은 참 애매하기도 하고 쓰임새가 많기도 하다. 나에게 현장은 사진 혹은 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그런 내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진가들 중에는 또 다른 ‘현장’을 드나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현장은 집회나 시위, 파업 등이 일어나는 곳이다. 내가 서 있는 현장의 잣대로 보면 그런 사진가들 상당수는 실속을 못 차리는 이들이다. 여차하면 사진가가 아닌 활동가로 오인받기 일쑤고, 자신의 사진이 인정이라도 받을라치면 현장에 있는 이들의 파국에 빚진 듯해서 마음이 가시방석이다. 이미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순간 현장에 대해 작게라도 개입했기에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들이 현장에 대해 가지는 애증만큼이나, 내가 현장사진가에 대해서 가지는 .. 더보기
집으로 가는 길 공장이 생겼다. 집도 아니고 공장이라니 이름만으로도 꿈의 부피가 다르다. 기계가 돌아가는 그곳은 생산을 위한 공간이고, 기계만 멈추지 않는다면 소금 맷돌처럼 풍요를 쏟아낼 것만 같다. 강청해가 사진을 전공하러 대학에 들어가던 몇 해 전 그렇게 부모님은 공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공장의 기계를 멈추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식품 공장이기에 새벽같이 기계를 돌려야 했고, 바쁘면 일손이 부족해서 한가하면 일손을 줄이기 위해 그곳은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몸이 고단해질수록 각자의 노동 기여도에 대해 예민해졌고, 공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날에는 미안함에 주눅들어야만 했다. 강청해의 ‘집으로 가는 길’은 집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장이 어떻게 가족의 일상을 저당잡는지에 대한 애증의.. 더보기
모기와 나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죽이거나 혹은 물리거나’라는 양자택일 앞에서 전쟁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내 피를 앗아간 모기를 잡으며 안도감과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세상 모든 전쟁이 그렇듯 끝내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이 싸움 또한 복잡한 질문을 유발한다. 선의의 폭력이란 없기에 이 미물을 살생하는 것도 온당치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물리고만 있는 것이 답일까. 아니라면 모든 번식처를 미리 차단함으로써 종의 멸종을 유도하거나 직접 피를 보지는 않는 좀 더 점잖은 살생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화생방에 의존한 살생은 과연 모기에게 덜 고통스러운 것일까. 정지필은 이렇듯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한 가지를 덧댄다. 모기의 죽음을 작품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백과사전적 기록인가,.. 더보기
공원 혹은 미니어처 외국인 사진가와 통도사를 거닐 때였는데, 일주문을 향해 걷던 그녀가 문득 형태가 소박한 문과 낮은 담장은 자연을 품기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건축과 풍경의 어울림을 알아본 작가 특유의 섬세함에 놀라는 한편, 풍경을 소유하려 들지 않던 옛 건축 앞에서 은근 으쓱해졌다. 과거 산과 하늘은 저 멀리 문 밖에도 존재하면서, 네모난 창과 문 안에도 깃들었다. 그날 사진가는 자신에게 사진을 배운 한국 학생들이 구도를 잡을 때 자연스럽게 여백을 강조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도심에서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층층이 솟은 아파트는 앞집 거실을 넘어다보게 하고,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전망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평수의 가치에 따라 소유권을 허락한다. 박호.. 더보기
북두칠낙 사라진 희귀 성씨 중에 낙씨가 있다. 윤태준의 거짓말은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한성백제가 축조한 경기 의왕시 모락산성을 배경으로 낙씨의 탄생 설화를 지어낸 뒤 그 일대에서 그럴싸한 기록사진을 만들어낸다. 모락산성에서 주어온 돌멩이에는 관리번호를 매긴 뒤 사료로 삼고, 박물관에서 찍어온 유물 사진 또한 관련 자료라고 제시한다. 그가 지어낸 얘기대로라면 낙씨의 시조를 키운 인물은 훈족에게 끌려왔다가 한성백제의 강제노역에까지 동원된 로마제국 출신의 서역인이다. 때는 465년 8월25일. 낙씨가 태어날 때는 까마귀 떼가 울었는데, 그 새들이 앉았던 바위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작업 제목 ‘북두칠낙’은 이런 줄거리에서 비롯했다. 황당무계하지만 듣다 보면 그럴싸해지는 이야기는 사진이 뒷받침돼 더욱 믿.. 더보기
골목, 기억의 목소리 이곳에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기념할 줄 아는 이가 거쳐 갔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혁명의 기운이 골목 가득 풍기지는 않는다. 점처럼 박힌 채 노란 칠마저 뒤집어쓴 그의 얼굴은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슬픈 최후 같기도 하다. 그 옆으로는 투박한 얼굴이 마냥 싱글벙글 웃고 있다. 조롱인지 희망인지 모르겠는 두 얼굴의 묘한 동거. 조만간 이 두 얼굴의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바뀔지도 모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외진 길목의 시간을 멈추지 않으려는 듯 들꽃은 이제 늙어 홀씨를 퍼뜨리려 한다. 이렇듯 무심해 보이는 골목을 문선희는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80곳이나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유년을 보냈던 80명의 이들과 인터뷰도 했다. 이제 모두 40대가 된 그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 더보기
눈의 백일몽 의자에서 뛰어내리는 슈퍼맨은 과연 안전하게 착지를 할까. 아직 자라지 않은 여린 몸, 깊지 않은 낙하의 폭은 설령 추락한다 할지라도 대형 사고가 아님을 쉽사리 감지시킨다. 그런데도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사내아이의 흔한 장난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일 텐데도 시시한 게 아니라 묘한 불안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감하게 생략된 얼굴, 파랑과 빨강의 극명한 대조, 순간 낙하의 재빠른 속도감은 정사각 구도를 꽉 찬 긴장감으로 가득 채운다. 심지어 지금 슈퍼맨은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치솟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어쩌면 슈퍼맨은 창 밖 나무와 창문에 비친 실내 풍경에서 눈을 빼앗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손이숙은 이런 착각과 착시 효과를 노린다. 그녀는 익숙한 풍경을 다시 한번 들.. 더보기
인더스트리 코리아 인간이 만들어 놓고도 스스로 놀라는 경외의 장면들이 있다. 예전에는 거대한 피라미드나 사라진 아즈텍 유적처럼 짐작 가능한 기술력을 넘어서는 건축물이 당연 이런 불가사의에 속했다. 그것은 모래폭풍이 이는 사막에 뼈대를 세우는 식의 신비스러움마저 갖췄다. 요즘에는 이런 감동을 엄청나게 크고 정교한 규모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흡사해져 가는 인공지능 같은 데서 찾는다. 인간 복제 혹은 인간을 능가하는 두뇌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은 물질의 세계가 아닌 차가운 사이버의 세계에서 경이로움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조춘만은 전혀 다른 차가운 곳에서 예전과 다른 스펙터클함을 불러낸다. 그곳은 심지어 늘 관심밖에 있었을 뿐 몹시 일상적인 중공업 현장이다. 그의 사진에서는 거대한 불똥 아래서도 생산에 여념이 없는 산업.. 더보기
침묵 3년 전 처음 미키 하세가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한창 예쁘게 자라나는 자신의 아이를 찍고 있었다. 찬란한 빛을 배경으로 춤을 추거나 장난을 치는 유치원생 소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워 보였다. 일상이 곧 작업이 되는 삶이란 얼마나 풍요로운가. 매일에 충실했을 뿐인데 작업마저 쌓이는 드물게 운 좋은 사진가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새로운 작업을 내밀었다. 오후 햇살이 부서지는 평범한 주택가 사진에는 여전히 그녀 특유의 감수성과 색감이 묻어나 있었다. 사진 속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대신 그 장소에 살던 아이나 엄마가 던진 짤막한 문장만이 병치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회면 기사의 내용처럼 건조하고 끔찍했다. 사진 속 모든 장소는 엄마의 학대로 아이가 사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 더보기
기념비의 역사 문화혁명이 시작하던 해에 태어난 왕칭송은 중국의 현실 사회와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특유의 방식으로 풍자하는 작가다. 본래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중국식 팝아트풍으로 풍자화를 그리다 1990년대 중반 사진 매체로 옮겨왔다. 그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고 모델을 섭외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맥도널드와 콜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어떻게든 올라가야 하는 신분 상승의 열망,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거친 인생 등 그가 대형 사진 한 장 속에 담아내는 장면은 중국의 오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기념비의 역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 연대기 형식으로 나열된 거대한 역사는.. 더보기
피동사물 프랑스 시민은 1789년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냈다.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허수아비로서의 시민은 비로소 모두가 평등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진정한 자유는 당시에도 온전히 지켜지지는 못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만들어진 최초의 혁명 헌법은 ‘능동시민’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평균 3일치의 임금을 한 해 세금으로 낼 수 있는 남자만이 오직 능동성을 인정받았다. 반대로 능동적으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여성도, 능동적으로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남자도 모두 ‘피동시민’으로 전락했다. 피동은 스스로가 상태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애초 성립할 수 없는 모순 조건이자, 배제와 차별의 폭력성을 전제로 한다. 뒤집어보면 이 피동의 운명이 꼭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안초롱.. 더보기
뮤지엄 아나토미 명화 한 점을 그리는 데 8~15시간 정도가 걸린다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캔버스가 사람의 맨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최소한의 생리적 현상만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팔을 머리 위로 올리거나 등을 구부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면 몸이 통째로 굳는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드윅과 스펙터는 특이한 작업을 펼치는 팀이다. 이들은 복원 중이거나 세간에 쉽게 공개되지 않는 19세기 이전의 회화 작품을 몸 위에 그린 뒤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그림은 하루 만에 완성하지만, 자료를 조사하거나 해당 미술관을 방문하고 밑그림을 구상하는 등의 준비 기간은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FBI와 런던경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를 참고 삼아 도.. 더보기
변신 상쾌한 저녁 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퇴근하는데 정말 고약한 방귀 냄새가 났다. 무취에서 악취까지 0부터 10으로 표현한다면 10점 만점이었다. 불의의 후각 공격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앞을 보니 두 명의 직장인이 아기염소처럼 즐겁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억울했다. ‘거기 방금 방귀 뀌었죠!’라고 항의를 하려니 그 역시 우습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소화기관 내 가스를 의도적으로 배출했다는 증거가 없을 뿐더러, 혐의를 부인하면 그만이었다. 기분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맑은 공기를 허파꽈리 깊숙이 들이켜 후, 하고 흘려보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방귀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이다. 볼기 사이로 이산화탄소·수소·메탄 가스가 섞인 기체가 소리를 동반하며 배출되는 생리적 현상을 신기해하는 것은 에.. 더보기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던 50가지 이 담배꽁초, 질서 정연한 배치로 보아 분명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금연 캠페인이라 하기에는 덜 무섭고, 광고라 하기에는 딱히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관리 상태가 너무 깨끗해 범죄 현장의 증거물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진의 정체가 뭘까. 바로 사진가 페리트 쿠야스가 하루 동안 피운 담배의 총량이다. 각 꽁초 밑에는 자그맣게 담배를 피운 시간까지 적어 놓았다.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두 종류의 담배를 피운 이 남자는 아침 7시5분22초를 시작으로 그 다음날 3시35분27초까지 무려 36개비를 피워댔다. 반복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꽁초의 길이는 몇 모금만 빨고 장초로 남겨 놓은 뒤, 다시 불을 붙여 마지막까지 피우는 그의 독특한 버릇마저 눈치채게 만든다. 굳.. 더보기
[사진 속으로]텐슬리스 하늘색 벽을 넝쿨 뿌리가 온통 휘감았다. 계절이 기우는 것인지 생명이 저무는 것인지 넝쿨 색은 시들어 배경의 상큼함을 더욱 무색하게 한다. 깨져버린 창문은 쓸쓸함에 더해 스산한 기운마저 풍긴다. 그 앞 거칠게 가지를 뻗은 나무는 바람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초록 가지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에 눈을 고정시키려는 순간 죽은 염소의 머리뼈가 우리를 바라본다. 도대체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인지 살아 있음을 축복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사진 속에는 죽음과 생명이, 자연과 파괴가 함께 뒤엉킨다. 더없이 자극적인 색과 장면에 홀려 절대 들어오면 안 되는 금단의 땅에 들어선 듯한 불안감 속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미궁에 빠질 뿐이다. 박형근이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놓은 ‘텐슬리스’ 연작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