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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안을 얻는 대한의원 본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를 나와 서울대병원 입구로 들어서면 좌우로 밀림 같은 병원 건물들이 나를 에워싼다. 정면으로 보이는 본관을 비켜서 왼쪽의 낮은 경사로를 오르면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붉은 벽돌의 단아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현재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한의원 본관이다. 1907년 고종 황제의 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한의원은 교육, 진료, 보건행정 기능을 모두 갖춘 국내 최고의 종합 의료기관이었다. 대한의원은 한일병합 후 총독부 의원이 됐다가 1926년 경성제국대학 병원으로, 해방 이후엔 서울대 부속병원이 됐다. 1908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조선 말기 재무행정을 관장하던 관청인 탁지부에서 설계와 감독을 했는데 탁지부 소속 기사인 야바시 겐키치가 설계를 주로 담당했다... 더보기
디포짓 영화 처럼 지독한 가뭄 속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혹은 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주인공이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지구의 미래를 극단까지 몰고 간 영화의 상상력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인류는 과연 무엇으로 생명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척박한 기후 속에서 싹을 틔울지는 모르겠으나 식량으로 삼을 만한 볍씨나 바나나 씨앗 같은 종자를 구해야만 할 것이다. 먹이사슬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쥐나 바퀴벌레,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의 유전자도 발견해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DNA도 필요할 것이며, 이 모든 생명체들의 복원에 지침서가 될 정보로서의 데이터 또한 필수일지도 모른다. 과연 이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지금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스위스 사진가 얀.. 더보기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바라보며 서울 남대문시장 앞 한국은행 교차로에는 넓은 사거리를 바라보며 이국적 형태를 뽐내고 있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역사(서울역), 조선호텔 등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이름이 높았다. 유럽의 성채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단아한 르네상스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좌우 원형의 돔 부분과 몸통과 지붕을 연결하는 연결부위에 바로크풍의 장식 요소를 곁들인 절충주의 양식으로 분류된다. 이 건물은 1907년 일본의 침탈이 시작될 즈음 일본인 다쓰노 긴고에 의해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설계되었다. 1912년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어 완공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직속은행의 역할을 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부.. 더보기
집시 사내 둘이 등을 맞댄 채 연주를 시작한다. 눈의 수신호 따위는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한쪽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춰주는 한 몸과도 같은 조화로움. 남루한 옷은 손에 익은 바이올린만큼이나 반질반질하고, 푸대접을 받은 탬버린만큼이나 얼룩져 있다. 다듬지 않은 수염, 푸석한 머릿결에 어울리는 거친 흙바닥에 앉았어도, 호젓한 물가의 운치를 내 것으로 삼을 줄 아는 풍류객들. 연주가 절정에 올랐는지 바이올린 켜는 사내의 어깨는 젊은이를 향해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내의 먼 곳을 향한 시선은 웃는 듯 슬픈 듯 그들이 연주하는 곡의 속도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 앞에 젊은 사진가 성남훈이 있다. 연극을 하다가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겠다며 파리로 떠나온 유학 3년 차의.. 더보기
동서의 조화 지하철 시청역에서 나와 대한문을 거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불현듯 담은 영국대사관 쪽으로 꺾인다. 그 꺾인 영국대사관 길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이국적 풍경의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서울성공회 대성당. 연속된 아치와 유럽풍의 오렌지색 기와로 지붕이 마감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다. 유럽 중세의 고딕 성당이 나타나기 전에 로마인(Roman)들이 사용하던 기술(Esque)인 ‘둥근 아치’를 즐겨 사용한 양식이라 하여 ‘로마네스크(Romanesque)’라 불리는 건축양식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영국인 아서 딕슨의 설계로 1926년 1차 완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산부족으로 설계자가 의도했던 전체의 그림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19.. 더보기
50+1 임재천은 뚜벅이 사진가다. 운전을 못하는 탓도 있지만, 설령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고 간다 해도 그는 발로 걷고 몸으로 느껴 국토 풍경을 담는다. 그의 풍경 속에는 사람이 빠지지 않으니 그는 사람을 만나러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밥벌이를 해나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가식 없는 삶과 장소에만 마음이 가는 사진가들은 어떻게 밥벌이를 해결할까. 산천을 걸으며 사진으로 시절을 담는 일이 한곳에 붙박고 사는 이들에게는 꽤 멋진 한량 직업으로 비칠지 모르겠으나 사진가 본인에겐 밥을 낳지 못하는 노동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밥이 안된다고 해서 일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 작가로선 난감한 노릇이다. 이런 이들을 응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중에.. 더보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또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 내는 일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가는 과정이다. 그 시간 속에는 한때 미치도록 보고 싶던 이도 살고 감추고만 싶던 부끄러운 일들도 숨어 있다. 어쩌면 적당한 용기와 뻔뻔함 없이는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정근이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건 자신이 찍은 이들에 대해서 아는 게 의외로 많지 않다는 회의 때문이었다. 관심이 있다는 핑계로 사진을 찍지만 그건 결국 피사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우일 때가 더 많았다. 누군가를 더 잘 찍기 위해서라도 나를 .. 더보기
거장의 숨결 3호선 전철 안국역을 나와서 창덕궁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현대사옥 끝자락에 위치한 건물 상단에 ‘空間, SPACE’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현대건축에 큰 족적을 남겼던 ‘김수근(1931~1986)’의 대표 유작이다. 그가 만든 설계사무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건축을 포함한 국내 최장수 예술잡지 ‘空間(공간)’을 지칭하기도 한 이름이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로 인해 시원스레 보이는 이 건물은 반 층씩 층을 엇갈려 설계되었고 그 반 층을 오르내릴 때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공간들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휴먼스케일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이 건물은 건축인들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특히 지하에 있는 소극장은 김덕수 사물놀이를 탄생케 하는 등 수많은 예술 활동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었다. 옆쪽에 투명.. 더보기
183_3540_36152320 이미지는 점들의 조합이다. 텔레비전 모니터나 디지털 카메라에 맺힌 상들은 모두 이 입자들이 만들어낸다. 고해상이라는 건 그만큼 입자가 곱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을 맺는 이 입자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는 노랑색인데 녹색으로 인식하거나 색깔이 있는데 검정으로 인식해 버린다. 사양이 좋은 디지털 카메라여도 이런 불량 입자는 생겨난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자마자 처음 치르는 의식은 렌즈 마개를 닫고 촬영한 뒤 불량 화소를 점검해 오류를 정정하는 일이다. 대안공간 지금여기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김천수는 의도적으로 이 오류를 시각화시킨다. 픽셀 하나마다 가로, 세로 1㎝가 되도록 확대한 그의 작품에서는 이 불량 화소들이 선연한 색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작품 제목 ‘183_3540_361523.. 더보기
함일의 배 오랫동안 이 사진을 좋아해 왔다. 집 밖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온 듯 편안한 트레이닝 바지에 나름의 감각을 잃지 않게 만드는 빨간색 셔츠의 조화. 녹색 숲을 배경으로 그 빨강은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숲은 깊어 저 멀리로는 초록이 연두로, 다시 연둣빛 하양으로 변해간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로 숲과 조화롭게 어울린 그 분위기로 인해 그의 시선을 같이 좇을 뿐이다. 강렬하게 호기심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장면. 김옥선의 사진집의 표지 사진이다. 함일은 난파선을 탄 채 표류하다 제주에 정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한국식 이름이다. 김옥선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제주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함일을 초상으로 기록했다... 더보기
세빛섬에서 여름밤을 반포대교 남단에 위치한 반포 한강 시민공원에는 독특한 형상을 한 4개의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철과 유리를 주재료로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세빛섬’으로 불리는 건축물들이다. 가빛, 채빛, 솔빛, 예빛의 네 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중 예빛 건축물을 뺀 세 개의 건축물을 지칭하고 있다. 이 건축물들은 땅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유식 함체 위에 구조물이 올려져 있어 공식적으로는 선박으로 분류된다. 이 세빛섬은 지난 2006년 시민들의 상상과 제안을 정책으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한강에 인공섬을 띄워보자는 시민 제안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섬이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사업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난항에 부딪혔다. 사업의 확대, 사업시행자 변경, 운영사 선정 문제 등으로 이 .. 더보기
잠의 송 현장이라는 말은 참 애매하기도 하고 쓰임새가 많기도 하다. 나에게 현장은 사진 혹은 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그런 내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진가들 중에는 또 다른 ‘현장’을 드나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현장은 집회나 시위, 파업 등이 일어나는 곳이다. 내가 서 있는 현장의 잣대로 보면 그런 사진가들 상당수는 실속을 못 차리는 이들이다. 여차하면 사진가가 아닌 활동가로 오인받기 일쑤고, 자신의 사진이 인정이라도 받을라치면 현장에 있는 이들의 파국에 빚진 듯해서 마음이 가시방석이다. 이미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순간 현장에 대해 작게라도 개입했기에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들이 현장에 대해 가지는 애증만큼이나, 내가 현장사진가에 대해서 가지는 .. 더보기
북촌 8경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그룹 계동 사옥을 끼고 오르면 우측으로 언덕이 나타난다. 이 언덕을 오르면 저 앞쪽 담장 너머로 창덕궁 인정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각들이 겹겹이 쌓여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08년 서울시에서 지정한 북촌 한옥마을을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 중 첫 번째 풍광이다. 창덕궁 측면을 1경으로 시작하는 북촌 8경은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원서동 공방길 2경과 가회동 11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한옥 골목길 3경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4~8경은 북촌로를 건너 가회동 31번지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남쪽 사면의 경사지에 벽을 맞대고 길게 이어져 있는 한옥 골목길의 정겨운 모습에 너나없이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연스러운 처.. 더보기
‘낙원의 가족’ 낙원을 상상하는 일은 시공을 초월한 전 인류의 유희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 속에 전해오는 낙원에 대한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보면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이라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일은 인간이 현생을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동력일 수도 있겠다. 낙원을 다룬 대표적 소설 가운데 도연명이 남긴 에는 전란을 피해 산속 깊이 숨어든 유민이 등장한다. 물고기를 잡으러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다 길을 잃은 어부가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 꽃길을 따라 정처없이 노를 젓던 중 한 마을을 만난다. 잘 가꾸어진 풍요로운 그 마을에, 혼잡한 세상을 등지고 산속 깊이 들어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유민들이 있었다. 도연명은 전란과 군벌항쟁의 세파 등 극심한 정치적 혼.. 더보기
집으로 가는 길 공장이 생겼다. 집도 아니고 공장이라니 이름만으로도 꿈의 부피가 다르다. 기계가 돌아가는 그곳은 생산을 위한 공간이고, 기계만 멈추지 않는다면 소금 맷돌처럼 풍요를 쏟아낼 것만 같다. 강청해가 사진을 전공하러 대학에 들어가던 몇 해 전 그렇게 부모님은 공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공장의 기계를 멈추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식품 공장이기에 새벽같이 기계를 돌려야 했고, 바쁘면 일손이 부족해서 한가하면 일손을 줄이기 위해 그곳은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몸이 고단해질수록 각자의 노동 기여도에 대해 예민해졌고, 공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날에는 미안함에 주눅들어야만 했다. 강청해의 ‘집으로 가는 길’은 집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공장이 어떻게 가족의 일상을 저당잡는지에 대한 애증의.. 더보기
모기와 나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죽이거나 혹은 물리거나’라는 양자택일 앞에서 전쟁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내 피를 앗아간 모기를 잡으며 안도감과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세상 모든 전쟁이 그렇듯 끝내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이 싸움 또한 복잡한 질문을 유발한다. 선의의 폭력이란 없기에 이 미물을 살생하는 것도 온당치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물리고만 있는 것이 답일까. 아니라면 모든 번식처를 미리 차단함으로써 종의 멸종을 유도하거나 직접 피를 보지는 않는 좀 더 점잖은 살생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화생방에 의존한 살생은 과연 모기에게 덜 고통스러운 것일까. 정지필은 이렇듯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한 가지를 덧댄다. 모기의 죽음을 작품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백과사전적 기록인가,.. 더보기
가회동 언덕에 서서 지난해 봄 창덕궁 옆에 위치한 조그마한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전시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창덕궁 정문에서 시작하는 북촌길을 거닐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한옥 밀집지역으로 청계천과 종로의 위쪽 지역에 있다 하여 ‘북촌’으로 불렸다. 궁궐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 경사져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조선시대 권세있는 양반들의 대표적인 거주지가 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도심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주택 수요가 크게 늘자 양반들의 거주지는 작은 규모로 분할되어 지금과 같이 벽을 맞댄 개량한옥이 집단적으로 생겨났고 이는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후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다세대주택 등으로 한옥이 멸실되면서 북촌의 경관이 크게 훼손되기 시.. 더보기
‘심점환, 바다에 누워2’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뭍에 올라온 물고기는 재물을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감시자 역할을 하느라 반닫이며 뒤주의 자물통에 새겨졌다. 불가에서 물고기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채 나태와 방일에 빠진 수행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존재다. 물고기는 목탁이 되어 구도자의 타락을 방지한다. 불가에서 물고기의 상징은 중생을 생각하는 부처의 자비, 장애가 없이 자유로운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로까지 이어진다. 신라 실성왕 15년 3월, 동해변에서 뿔 달린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해 5월 토함산이 무너지고 샘물이 솟구쳤다. 이듬해 5월 왕이 죽었다. 백제 의자왕 19년 5월에는 사비하에서 길이가 30척이나 되는 큰 물고기가 죽어서 떠올랐다. 이듬해 백제는 망했다. 물고기가 죽고나면 누군가의 세상은 사라졌다... 더보기
공원 혹은 미니어처 외국인 사진가와 통도사를 거닐 때였는데, 일주문을 향해 걷던 그녀가 문득 형태가 소박한 문과 낮은 담장은 자연을 품기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건축과 풍경의 어울림을 알아본 작가 특유의 섬세함에 놀라는 한편, 풍경을 소유하려 들지 않던 옛 건축 앞에서 은근 으쓱해졌다. 과거 산과 하늘은 저 멀리 문 밖에도 존재하면서, 네모난 창과 문 안에도 깃들었다. 그날 사진가는 자신에게 사진을 배운 한국 학생들이 구도를 잡을 때 자연스럽게 여백을 강조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도심에서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층층이 솟은 아파트는 앞집 거실을 넘어다보게 하고,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전망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평수의 가치에 따라 소유권을 허락한다. 박호.. 더보기
‘귀가 막혀’ “악마를 만든 자.” 이는 ‘죄악에 물든 타락한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내는 인간을 향해 악마 가득한 지옥그림을 내놓아 경종을 울린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추정)의 별명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를 주제로 작업한 그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기묘한 상징성이 어우러진 화풍으로 오늘날까지 주목받고 있다. 그가 묘사한 왜곡된 신체, 동물과 벌레, 인간을 혼종한 군상은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견인하면서 인간세계의 죄악을 풍자하고, 세기말 특유의 염세적 세계관을 분출한다. 그의 화면은 천재지변, 전염병, 전쟁, 반란 등 역경의 14세기를 겪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닿아 있는데, 이들에게 세상은 부도덕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섭고 추한 곳이었다. 그 시대 몇몇 사람들은 1500년 세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