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회색 하늘 2012년 파키스탄 집 마당에서 야채를 줍던 할머니가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아마존이 무인 배달 상용화를 선포하면서 드론이 새삼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드론의 가장 큰 역할은 군사용 무인 비행기다. 포격기의 사격 연습 대상이다가 나중에는 카메라를 달아 정찰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적 깊숙이 들어가 포격을 감행한다. 이제 조종사들은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고도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드론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걸어야 했던 ‘거룩한’ 전쟁의 시대는 이렇게 해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기 위한 이 똑똑한 폭격기 덕분에 누군가는 더욱 쉽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 벨기에 사진가 토마스 반 우트리베는 드론으로 미국을 겨냥한다. 그의 드론에는.. 더보기
사랑으로 살아남은 막달라 마리아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물이 살아남는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말했다. 사물이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져서 시간의 영향을 견디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예술작품을 온전히 살아남게 만들겠는가. 1966년 르네상스의 보고인 피렌체에서 큰 홍수가 났다. 아르노강이 범람해 도심의 성당과 미술관의 작품들이 진흙 더미로 뒤덮여버렸다. 그중에서도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1457년경)는 구제되어야 할 최상위급 작품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였던 도나텔로는 한 세례당을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조각한다. 예수의 여제자이자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는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나 예수가 매장되는 장면 등 예수와 함께.. 더보기
비오는 날의 산보 인상파 작품의 컬렉터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부르주아의 독특한 시선으로 파리 풍경과 파리인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 ‘비 오는 날-파리의 거리’는 파리 생라자르 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을 묘사한 것이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성장한 남녀들은 스스로를 볼거리, 즉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가시화하기를 좋아하는 근대의 부르주아들이다. 보들레르는 보는 동시에 보여지는 도시의 이런 구경꾼들을 ‘플라뇌르(Flanuer)’, 즉 산책자라고 명명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오스망 남작에 의해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세의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3, 4층의 적당히 높고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한편 좁고 복잡한 중세의 길들이 넓고 반듯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게다가 하수시설이 개선되니 오물로 질척거리는 더러운 거.. 더보기
조경사진 집 앞 나뭇가지가 조금만 더 자라면 방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집 앞에 울창한 숲이 펼쳐져서가 아니라, 집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을 수 있을 만큼 여유 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다른 친구는 그런 나무가 없으니 앞집이 너무 훤히 보여서 어떤 반찬을 먹는지도 맞출 정도라고 부러워한다. 더부살이를 하듯 집과 집 사이에 끼여 가까스로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 건물을 모두 배치하고 남는 자투리 땅에 심겨 당산나무처럼 번듯하지도 않고, 시골 집 마당의 탐스러운 과실수처럼 눈길을 뺏지도 않는 초라한 나무들이 그렇게 일상의 대화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은근 존재감이 있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사진가 유리와는 이렇게 해서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경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더보기
살찐 여자의 꿈 “나는 작품이 모델들에게서 비롯되기를 바란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작품이 자신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가능한 한 모델들의 느낌과 감정에 동감하기를 바랐다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불어 영국 구상회화의 독보적인 존재다. 베를린 태생으로 나치하의 오스트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33년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런던은 그의 예술적 욕망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후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철학적 사유와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프로이트는 주로 인물초상을 그렸다. 누드가 아닌 벌거벗은 몸, 공허한 얼굴, 살찐 여자의 몸, 임신한 몸, 상처가 적나라한 조폭의 얼굴 등 그가 그려낸 얼굴과 몸은 .. 더보기
두 개이면서 하나인 벽에 걸린 팽팽한 빨강 풍선과 식탁 위에서 시들어가는 빨강 풍선은 전혀 다른 물리적 상태에 있지만 실은 같은 풍선이기도 하다. 원래 벽에 걸린 그림은 식탁 위 풍선의 과거 모습이었다. 작가는 사진 속에 보이는 세트를 만든 뒤, 그림을 걸 위치에 풍선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액자 속에 담을 만큼만 이미지를 오려내어 중국 그림 공장으로 보낸다. 익명의 어느 화가가 자신이 찍은 풍선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동안, 그 실제 대상인 풍선은 자신의 ‘초상화’를 기다리며 서서히 늙어간다. 이윽고 중국에서부터 풍선 그림이 도착해 벽에 걸리면 과거의 풍선과 현재의 풍선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존 세르빈스키는 오히려 물리학자이기에 이런 고민을 시작했.. 더보기
우리는 위로받고 싶다 갑자기 미테랑 대통령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한, 금세기에서 가장 문화적인 대통령이었다. 우파 정권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도시 재생과 관련한 ‘그랑프로제’라는 정책을 바로 추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그냥 지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루브르박물관의 신관 설계를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에게 맡겨 놀라게 하더니, 이 동양인이 바로크 형식의 기존 박물관과 대비되는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안을 내놓아 많은 이들이 주저하자 대통령은 그 파격적 디자인을 적극 옹호하고 짓게 했다. 물론 그 결과로 루브르박물관은 현대적 아름다움도 같이 가지게 된다. 이뿐만인가. 가운데를 텅 비운 ‘그랑아르세’를 쇠락해가던 라데팡스 지역 끝에 지어 파리의 도시 중심축을 한껏 넓히게도 했고, 파리 외곽의 소.. 더보기
[시론]유명무실한 예술인복지법 생활고로 인한 예술인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성북구 한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되었다. 영화배우 판영진씨는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생활고와 지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한 예술인의 비극적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2011년), 인디뮤지션 이진원(2010년), 배우 정아율(2012년)과 김수진(2013년), 우봉식(2014년), 가수 김지훈(2013년) 등. 최고은씨가 전기와 가스가 끊긴 월세 방에서 며칠을 굶다 세상을 떠난 지 4년이다. 그 후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예술인의 연이은 죽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2012년)에 따르면, 예술인의 창작.. 더보기
궁극의 드로잉 케테 콜비츠의 드로잉은 ‘살아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전쟁의 상흔을 그만큼 미학적으로 묘사한 화가가 또 있을까. 여자를 성적인 매력이나 여성다움으로 치부하던 시대에 ‘여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 예술을 넘어선 경지의 예술을 보여준 이가 콜비츠다.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콜비츠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대변한 여성이자 화가였다. 그는 평생 병든 사람들을 무료 진료한 의사인 남편과 동지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런 콜비츠에게 닥쳐온 비극은 시대적인 것이었다. “아기의 탯줄을 또 한번 끊는 심정이다. 살라고 널 낳았는데, 이제는 죽으러 가는구나!” 1차 세계대전 때 열여덟 살밖에 안된 둘째아들을 잃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었다. 그에게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슬.. 더보기
나폴리와 마릴린 먼로 이곳은 나폴리다. 동해안에 있는 카페. 도대체 마릴린 먼로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바닷바람에 치마를 날리고 있는 걸까. 저 흰 원피스를 날리면서 일약 섹시 스타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었던 샌들을 나폴리 지역 출신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한국전쟁 때 강원도까지 찾아와 위문 공연을 해준 답례의 표시로? 이도 저도 아니면 나폴리다운 기분을 만끽하려면 적어도 마릴린 먼로와 황금색 말과 그리스 조각상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카페 주인장의 취향 덕분에? 이유야 어떻든 제 아무리 마릴린 먼로가 유혹한다 한들, 철조망을 넘어 돌격해 오는 용감한 병사가 함께 등장하는 이곳은 나폴리가 아니다. 김전기는 6년 동안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를 누비며,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만들어낸 ‘불편한 풍경’.. 더보기
퐁타벤과 고갱의 초록 “악당이야, 하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느껴져. 한마디로 신의 예술이야!” 독설가로 유명한 드가가 고갱을 두고 했던 말이다. 주식중개인 출신의 고갱은 여느 화가들과는 다른 대범하고 마초적이며 로맨틱한 남자였다. 일요화가회를 전전하다가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만큼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던 고갱이 자주 찾았던 곳은 시골과 오지였다. 그가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나기 전 발견한 곳이 퐁타벤이었다. 사실 수년 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고갱의 타히티 그림을 보고 좀 실망했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탁한 화면, 아주 볼품없이 납작한 평면적인 화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퐁타벤에서 그린 고갱의 초기 그림은 달랐다. 아마도 인상주의적인 세심한 붓 터치.. 더보기
유모와 사진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의 전시가 화제다. 게리 위노그랜드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사회상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담아낸 전설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전문가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반면에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는 알 턱이 없었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10만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평생을 유모나 가정부로 살았던 탓에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가족도 모아놓은 돈도 없이 말년을 보냈던 그의 사진은 2007년 밀린 창고비를 챙기려는 창고 주인에 의해 처음으로 동네 경매시장에 나왔다. 우연히 이 상자를 발견한 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재조명해 부동산 값을 올리려 했던 젊은 부동산업자 존 말루프였다. 그는 단지 동네의 옛 모습을 보여주.. 더보기
어둠의 유머 의사가 편도선을 들여다보듯이 한 남자가 아이의 목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뜻 그렇게 보이는 이 그림의 실상은 황당하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El Lazarillo de Tormes)’(1808~1812)다. 이 주제는 16세기에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문학양식의 하나인 피카레스크 소설(picaresque novel)에서 유래했다. 이는 ‘피카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당대의 많은 무직자·불량배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자전적 형식의 소설이다. 이집 저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신은 물론 주인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 이 소설은 악한 소설 혹은 건달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속 화자 라사리요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기꾼의 하.. 더보기
안녕, 신흥동 지난달 군산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은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하나 반나절쯤 지내다 보니 따로따로 왔는데 단체 관광객이라도 되는 양 다들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파리에서 등산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한국 사람인 것처럼, 맛집이라 소문난 곳에 한 시간씩 줄을 서고, 지도에 박힌 답사 코스를 따라 걷고 있으면 분명 외지인이다. 그곳은 대개가 신흥동, 장미동 등 군산항 일대다. 일제강점기 미곡을 수출하면서 번성했던 군산의 씁쓸한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군산시가 공들여 다듬어 놓은 박물관이나 적산 가옥이 아니라면 이곳 또한 평일에는 쓸쓸해 보일 게 분명했다. 채만식이 에서 그려낸 미곡수탈 시대의 천태만상.. 더보기
[기고]‘법보다 예술버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는 예술의 자유 및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예술의 특권적 지위를 위해서나 예술가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시대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가 지배권력으로부터 억압받지 않고 작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의 권리를 법률로써 보호해야 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예술이 창조경제를 이끌고, 문화융성을 위해 애쓰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예술가들은 세상을 조금 더 감각적으로 마주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에 좀 더 민감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늘 국가권력의 폭력에 예민하며, 지배계.. 더보기
신과 맞짱 뜨다! 창세기 32장에는 천사가 야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엄마의 명에 따라 외숙부의 집에서 14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앞으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고 있었고, 뒤로는 딸들을 빼앗긴 외숙부에게 쫓기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처했을 때였다. 가족들을 먼저 고향으로 보내고 홀로 있던 야곱에게 누군가 다짜고짜 결투신청을 해왔다. 야곱은 자기에게 싸움을 건 자가 형과 숙부의 첩자가 아닌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음을 깨닫고 천사(곧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갈 수 없나이다.”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깊이 깨달은 야곱은 새벽이 지나도록 간청하고 또 애원했던 것. 이에 지칠 대로 지친 천사.. 더보기
매그넘 퍼스트 200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프랑스 문화원 지하실에서 정체 모를 나무 상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이 상자에서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86점의 프린트가 나왔다. 8명의 사진가가 각기 합판 한 장 위에 사진을 붙여 전시한 뒤, 보관을 위해 조잡하게 사진 크기에 맞춰 합판째 잘라낸 흔적이 역력했다. 당사자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던 매그넘의 첫 번째 사진전의 내막은 마치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처럼 무려 50년의 시간을 지나 이런 식으로 출몰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의 ‘매그넘 퍼스트’는 이 원본을 복원해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다. 화려하고 세련된 최근 전시 경향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이 사진전은 조금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예산 기획에 가까운 이 전시가 요즘 사진전의 원조 격이라는 것을 감안하.. 더보기
이 시대 우리의 건축 그리고 그 문화풍경 지난주 10년 만에 헬싱키를 찾았다. 이 도시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도시디자인 전략을 알아보는 공식적인 일 외에, 나는 핀란디아 홀 바로 옆에 최근 새로 지은 ‘뮤직센터’라는 콘서트 홀을 보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1971년에 개관한 핀란디아 홀은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이 나라가 자랑하는 건축가 알바 알토가 지은 걸작이다. 그런데 아무리 잘산다고 해도 인구 60만명에 불과한 도시에 또 새로운 음악당이라니…. 이 의문은 현지의 설명을 듣고 풀렸으나,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핀란디아 홀은 핀란드의 토속적 아름다움을 건축의 형태와 공간으로 치환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일컫는 현대건축의 보물이다. 근데 이 아름다운 건축이 음향에서 문제가 줄곧 제기되었다. 내부의 천장 형태가 건축가 고유의 디자인.. 더보기
[기고]KBS교향악단 사태와 예술적 신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청중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남긴 말입니다. 일견 오만하고도 독단적인 이 발언은 특정 경지에 이른 어느 음악가의 독특한 예술관과 확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는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음악의 이상적 완성만을 고집했고, 이것은 예술가의 정당한 소신으로써 인정받았습니다. 교향악단은 이에 필적할 정도로 확고한 성향과 신념들로 충만한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지성체입니다. 1842년에 창단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까지 여성 연주자의 채용을 거부했고, 원전악기의 사용을 고집하며, 상임지휘자 제도를 배제한 채 단원들이 직접 객원지휘자들을 임명하는 관행은, 그러한 행동양식에 담긴 당위성의 존부를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더보기
뭉크의 감정 서울 인사동에서 우연히 유명가수 C씨의 그림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평소 유명인의 전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탓에 그저 그런 아마추어의 전시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가수의 작품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분명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바로 ‘감정’이었다. 좀 진부한 방식이긴 해도 그는 페이소스가 있는 자신의 대중가요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 알았다. 사실,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예술작품은 꽤 근사해진다. 화가들조차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미숙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 미술사에서 뭉크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적극적으로 노출한 화가는 없다. 뭉크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우울을 고스란히 작업에 투사했다. 사실 뭉크만큼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한 화가도 드물다.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