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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48건

  1. 2018.09.21 서울의 목욕탕
  2. 2018.09.17 다바왈라의 점심
  3. 2018.09.14 광대
  4. 2018.09.14 검은 장갑
  5. 2018.09.13 김포성당
  6. 2018.09.10 사소하게 진부하게
  7. 2018.09.07 출근
  8. 2018.09.07 로우-컷
  9. 2018.09.03 아모스의 세상
  10. 2018.08.31 마음속의 말
  11. 2018.08.30 문수산성
  12. 2018.08.28 물렁뼈와 미끈액
  13. 2018.08.24 나의 공간
  14. 2018.08.24 장면과 날짜
  15. 2018.08.20 연습을 위한 연습
  16. 2018.08.17 빛나지 않아도
  17. 2018.08.17 빙산
  18. 2018.08.16 덕포진
  19. 2018.08.13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산 이야기
  20. 2018.08.10 더위에 맞서다

오래되고 낡은 목욕탕 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물함과 텔레비전, 냉장고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손님이 줄었거나 혹은 자판기라도 들여와서 퇴역했을 냉장고는 본연의 임무 대신 텔레비전 받침대로 사용된다. 플러그가 꽂혔던 왕년에는, 목욕을 마친 꼬마들이 저 냉장고에 뽀얀 얼굴을 들이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 사이에서.

 

서울의 목욕탕, 산호탕 ⓒ박현성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6699프레스, 2018)에 담긴 장면 중의 하나다. 책은 서울에 위치한 30년 이상 된 목욕탕 10곳의 일상적인 풍경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전달한다. 시간의 무게에 부서지고 허물어지는 목욕탕의 외관에서, 대야와 앉은뱅이 의자 등 더 이상 새것으로 바뀌지 않을 목욕탕 기물에 묻은 손때까지 모두 사진에 살뜰하게 담겼다. 그 이미지들은 이곳이 내일 사라질 것이다, 현실을 일러주는 동시에 이곳이 어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환상을 부풀린다.

 

그러나 내일의 현실이든 어제의 환상이든, 개의치 않을 서울의 목욕탕은 오늘도 ‘목욕합니다’와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 사이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러한 목욕탕의 일상을 가만히 멈춰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사진책에는 특별한 일화도 없고,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바람 잘 날 없는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들어서는 목욕탕의 미덕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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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다바왈라는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부다. 그들은 고객의 점심을 가정에서 받아와, 기차로, 수레로, 자전거로 오후 1시 전까지 사무실 책상에 배달한다. 고객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빈 도시락통 ‘다바’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비로소 일이 마무리된다. 여름에도 격식을 갖춰 하얀 긴팔 셔츠를 입는 인도 남성들에게 점심 도시락통과 함께하는 출퇴근이란 안될 말이다. 한 명의 다바왈라가 50명의 도시락을 책임지고 배달하는 시스템 덕분에 평균 2시간 안팎의 출근길이 가볍다. 다바왈라의 활약은 어느새 100년이 넘었다.

 

천경우, 다바왈라의 점심, 2017, 퍼포먼스와 50개의 인도 도시락통 ⓒ천경우

 

첨단 기술도, 전문 지식도 없이, 심지어 문맹자들까지도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인간노동력 중심’ 다바왈라 배달 시스템은 8000만건 가운데 사고는 300~400건에 머물 정도로 정확하다. 페덱스 같은 운송업체를 포함한 일류 기업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천경우는 배달이 직업인 그들 손에 그들을 위한 ‘다바’를 배달해주기로 했다. 작가는 50명의 ‘다바왈라’에게 원하는 점심 메뉴를 물었다. 매일, 매 끼니, ‘뭐 먹을까?’ 이야기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이 질문이 그들에게는 생소했다.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사는 왈라들은 메뉴를 선택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피자’가 그나마 독특한 주문이었고 대부분은 작가가 준비하는 데 무리가 없는 인도의 평범한 식사를 이야기했다. 작가는 스태프와 함께 그들이 원하는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서 점심시간에 맞춰 그들 손에 배달했다. 새로운 ‘점심 문화’가 점점 퍼져나가는 뭄바이에서,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직업군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왈라들은, 그렇게 단 한번, 자신이 선택한 ‘점심’을 서비스받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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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나무에 아크릴(12×41㎝)

 

알록달록 옷을 입고 광대짓을 합니다. 구르고 넘어지고 마술도 하며 사람들을 웃깁니다. 넘어져 아프고, 힘들어 짜증 나도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나에게 화를 내고 비웃고 욕을 해도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내 감정은 그게 아닌데 언제나 그렇게 웃고만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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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1968년 10월17일 멕시코 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200m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영광스러운 자리인 시상식에는 기쁨과 환호 대신 한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시상식 장면. AP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상대에 맨발로 올랐다.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검은 장감을 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른바, 흑인 저항운동 ‘블랙파워’에 지지를 표시하는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였다. 스미스의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는 흑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며, 카를로스가 지녔던 묵주는 희생당한 흑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이후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촌에서 추방됐다.

 

50년 전의 그들을 닮은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미국이 시끄럽다. 2016년 그는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 꿇는 행동을 했다. 이듬해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은 괘씸죄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해 선수 활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그가 광고에 나오자 뜨거운 지지와 함께 나이키 매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도 SNS에 올라온다. 아직도 백인 중심의 세상에는 여전히 ‘검은 장감’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용기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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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올여름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14년 만의 기록적 폭염이었다니. 그런데 계절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9월이 되자마자 갑자기 이렇게 가을 날씨로 확 바뀌는지.

 

가을과 함께 개강을 했다. 몇 편의 김포 원고를 쓰다 보니 알고 있는 김포의 이야기 소재가 동이 났다. 그런데 개강하는 날 같은 건물에 있는 미대 교수를 건물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김포 출신의 교수였다. 혹시나 하고 김포에 소재한 흥미있는 건축물의 존재 여부를 물었더니 대뜸 김포성당을 소개한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자신의 학창시절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김포성당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소나무숲 언덕을 배경으로 구 성당과 새 성당이 함께 놓인 사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차를 몰아 김포로 향했다. 낮의 해는 여전히 따가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코밑을 간지럽힌다. 일산대교를 건너 김포시청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측으로 난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좁은 길을 들어서자마자 우측 경사로 위의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를 하고 성당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인터넷에서 보던 이미지가 눈앞에 다가섰다. 1999년에 붉은 벽돌 마감으로 지어진 새 성당은 단차가 있는 맛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 전면에는 고딕성당의 요소인 장미창(rose window)이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좌측의 높다란 종탑과 어우러져 건축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우측으로 완만한 돌계단이 길게 이어진 정점에 석조로 지어진 구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구 성당은 1956년에 건립되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건축된 석조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어 2013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면은 고딕건축에서 주로 사용되던, 앞뒤로 길쭉한 실내의 안쪽 좌우로 날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세로로 긴 십자형(라틴크로스,†)으로 되어 있다. 전면 종탑 아래쪽을 둘러싼 첨두(뾰족) 아치의 창이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두꺼워지는 지지벽은 고딕건축의 요소이다. 그런데 주출입구 원형의 아치와 종탑 위의 뾰족 돔은 르네상스 요소에 가깝다. 또한 건물 측면에 뚫린 박스형의 세로창들은 모더니즘의 요소이니 결국 구 성당의 건축양식은 여러 양식이 혼합된 절충주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우측으로 울창한 소나무숲이 발길을 이끈다. ‘십자가의 길’로 조성된 오솔길이 구 성당과 새 성당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랜 세월 이 언덕을 지켜왔을 수많은 소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늘어뜨려 낯선 방문객을 붙잡는다. 소나무들 사이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구 성당과 새 성당이 서로 병치되어 멋진 풍경화 한 점을 만들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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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때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피로도가 고점을 찍는 순간, 회의감, 환멸감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한 설득의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된다.

 

기록매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당대의 정서와 호흡하지 못한다고, 잊을 만하면 끌려나와 사망선고를 당하는 회화는, 당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실은, 회화 매체로 작업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붓을 들고 싶은 자기 자신이었다.

 

빌헬름 사스날, 무제, 2010, 캔버스에 유화, 200×220㎝ ⓒ 빌헬름 사스날, 안톤 컨 갤러리

 

예술가가 되기 전 건축을 전공한 빌헬름 사스날은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는 197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불어닥친 ‘격변’의 시대에 20대를 보냈다. 황량한 세상을 목도하며, 전쟁, 선전선동, 자본주의의 폐해, 부패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는 작업도 했지만, 그는 사실 회화에 ‘선전 선동’의 힘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회화가 가지고 있는 돌풍의 반경은 너무 작다. 세상 모두가 ‘큰 그릇’이 될 필요는 없으니, 마이크로 스케일은 거기에 맞는 대화법을 쓰면서 살면 된다.

 

그래서 그의 화면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맨발로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처럼 소소하다. 그렇다고 ‘거대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엉망진창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고 싶고, 때로는 나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심을 긍정하고 싶을 뿐이다. 사소하고 진부해져도 무엇인가는, 누군가는, 때때로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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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캔버스에 아크릴(45×53㎝)

 

단정하게 가르마 탄 머리와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그리고 칼같이 다림질한 셔츠와 양복을 입고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켜면서 눈을 감습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가득 찬 덥고 답답한 지하철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딴 세상이 나타납니다. 과거나 미래로 갔다가 외국으로도 갔다가 그러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여행하다가 갑자기 자동적으로 눈이 떠집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와 회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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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로우-컷 #07, 피그먼트 프린트 위에 흰 먹선, 140x180cm, 2018 ⓒ김천수

 

김천수의 사진전 <로우-컷, 로우-패스>(일우스페이스, ~10·2)는 강북의 한 고급아파트를 독특하고 기묘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작가는 개발 당시 갈등과 논란이 빚어졌던 그 아파트를 다양한 거리와 앵글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아파트가 완공되기 이전의 풍경들 또는 설계도와 평면도에서 차용한 아우트라인을 사진 위에 흰색 먹줄로 튕겨 중첩시켰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탐색하려는 문제는 ‘현대 도시의 과밀성’이다.

 

도시는 한정된 공간 안에 다양한 편의 시설과 많은 인구를 집중시키며 발전한다. 고층 건물, 주차 타워, 상업 지역, 역세권 등 또한 효율성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작은 폭탄이 터져도, 잠시 정전되어도 도시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효율을 극대화한 도시 재개발이 심각한 갈등을 낳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효율성이 오작동되는 도시를 디지털 이미징 프로세스와 견준다. 최신 기술이 집약된 고해상도의 디지털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는 유령을 닮았다. 사진마다 건물의 형체가 보이지만, 어느 것도 온전한 이미지는 없기 때문이다. 흐릿하거나 휘어진 건물의 형상은 어둡고, 선명하고 곧게 뻗은 실선은 희다. 흐릿하거나 선명하고, 휘어지거나 곧고, 검거나 하얀 대비 속에서 온전히 보이지 않는 유령 건물을 바라볼수록 환시처럼 불길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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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에반스, 아모스의 세상:에피소드 1, 2017, 건축·비디오 설치 ⓒ세실 에반스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을 짓고 싶다. 아니,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아니,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다.” 세실 에반스 작품에 등장하는 건축가 아모스는 뛰어나지만 악랄하고, 좌절과 분노 사이를 오가는 생활에 익숙하며, 능수능란하게 거짓을 말하는 오만함을 즐기는 백인 남성 건축가다. 그는 사회적으로 꽤 급진적인 요소들을 장착한 공동주택을 설계했다. 도시에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도 남을 이 주택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모스는 “자본주의 시대를 위한 완벽히 개별적이면서도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공간”을 꿈꾼다. 그가 꿈꾸는 생활공간을 만들기 위해 작가 에반스는 ‘이상적 공동사회로서의 집합주택’ 모델로 등장했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마르세유 집합주택, 모듈화의 기수로 꼽힌다는 모셰 사프디의 해비타트 67, 철거 진행 중인 앨리슨·피터 스미슨 부부의 공동주택 로빈후드 가든 등을 모델로 삼았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작가에게 ‘공동주택’은 감정의 여러 케이스를 상상할 수 있는 효율적 장소다.

 

입주자들은 건축가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다. 신중하게 설계하고 구성한다 한들, 네트워크에 균열이 생기고 인프라가 붕괴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건물이 거대해질수록, 개인들은 거대한 규모로 공존하고 건물의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에 결합·의존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은 나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무조건 순응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권리와 시스템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있다. 작가는 이 공동주택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상 가능한 일들을 TV 드라마처럼 펼쳐내며 개인과 공동체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판타지를 섬세하게 무너뜨린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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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나무에 아크릴(20×26㎝)

 

누구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시원하게 입 밖으로 뱉어내고 싶지만 사람들 눈과 귀가 무서워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크게 외치고 싶지만 혼자만의 공간을 찾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마침 혼자 타게 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크게 소리치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내뱉어 봅니다. “야, 이 XXX야. 그렇게 살지 마! 너나 똑바로 해!”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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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인 경기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에는 개량 한옥으로 지어진 처의 본가가 있다. 그 집 대문 앞에서는 철책선 너머로 북한 땅이 보인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과거 대북확성기를 틀 때면 밤새 시끄러운 대북방송이 이 마을의 밤풍경을 대변해주었다.

 

이 집의 대청마루에는 처가댁 어른들이 신주 모시듯이 고이 모시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그 액자에는 처의 선조 할아버지가 고종황제로부터 받은 ‘절충장군 겸 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임명한다는 교지가 들어 있다. 군인으로서 매우 높은 위치까지 오르셨다는 증표여서 처가에서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산이다. 할아버지 나이 30세 때 병인양요(1866)가 일어났고 프랑스군과 격전이 벌어졌던 문수산성이 집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5㎞ 떨어져 있으니 분명 이 할아버지는 군인으로서 이 전장에 계셨을 것으로 처가에서는 믿고 있다. 처가 식구들에게 문수산성은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다. 

 

문수산성은 김포시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376m)을 둘러싼 산성으로 조선 숙종 때 축성되었다. 이 산성은 염하강 건너 강화도의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는 요새였다. 병인양요 때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강화도와 전략적 요충지인 문수산성을 점령하게 된다. 이후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 몰래 강화도의 정족산성을 점거하고 진을 친 다음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격퇴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분풀이로 문수산성의 남문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문수산성은 1993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복원사업에 따라 북문과 남문 그리고 정상의 장대를 비롯한 성곽의 일부가 복원되었다.   

 

무덥던 어느 날 처와 함께 장인어른 내외를 모시고 문수산성을 찾았다.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잠시 오르니 문루 지붕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이 우리를 맞이한다. 염하강 물줄기가 맞닿는 한강 하구 저 너머로 나지막한 산들이 겹겹이 쌓인 북한의 원경이 바라다보인다. 장인어른의 표정이 묵직하시다. 이곳에서 프랑스군과 접전을 벌이셨을 선조 할아버지의 힘찬 기개를 느껴보시려는 듯.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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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빨간 엉덩이가 높은 백두산에 다다르는 여정처럼, 동해 추암의 기암괴석은 해안의 절경을 낳고, 상상을 낳고, 전설을 낳고, 소원을 낳고, 믿음을 낳고 ‘촛대바위’가 되었다.

 

임영주, 밑_물렁뼈와 미끈액, 캔버스에 유화, 2017, 40×20㎝×7pcs, ⓒ임영주

 

담벼락 위의 얼룩무늬, 진흙수렁처럼 자연이 의도치 않게 연출했을 무질서한 흔적 속에서 형태를 뽑아내라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조언은 시각의 오류가 상상의 미덕에 닿는 쾌감을 제공하지만, 그런 연상의 과정은 어쩐지 전형적이고 통속적이다.

 

울릉도 저동항에 있는 촛대바위는 추운 겨울 일하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효녀라던데, 추암의 촛대바위는 본처와 소실을 거느렸던 남자란다. 두 여인의 지나친 투기에 하늘이 노해 벼락을 날려 남자만 남겨놓았다니, 에로는 호러와 닿아 있다.

 

이제는 동해의 시그니처가 되어, 해돋이 출사길에 나서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카메라로 순간포착해야 할 촛대바위는 임영주의 작업 속에서 무릎과 만난다. “뼈와 뼈가 연결된 곳에는 물렁뼈와 미끈액이 들어 있다.” 과학책에서 건져 올린 이 문장으로 작가는 촛대바위의 껍질 아래 숨겨진 생생한 물렁뼈와 미끈액을 찾았다. 견고하게 닫힌 구조 사이를 물렁물렁 미끈하게 유영한 덕분이다. 아마도 초록색 이끼로 뒤덮였을, 뻣뻣하게 말라붙은 바위 아래 매끄러운 무릎이 있고, 물렁뼈가 있고, 그 사이로 미끈액이 흘러 다닌다. 딱딱하고도 부드러운 촉감이 뼈와 뼈 사이로 파고들어 솟아오른다.

 

물렁뼈가 퇴화한 ‘늙은 관절’은 균형을 잃는다. 그의 신체는 줄어들고, 중심은 앞으로 쏠리며, 보행속도와 보폭은 감소한다. 늙은 걸음은 통증을 동반한다. 뼈와 뼈가 만나는 모든 관절에서 물렁뼈는 언제라도 소실될 수 있다. 부드러운 완충지대란 언제라도 소멸될 수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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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61×72㎝)

 

뜨거운 날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잡다한 생각들을 종이에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어떤 것이 좋을까? 이렇게 그려볼까? 저렇게 써볼까? 이것저것 여러 가지 고민만 하다가 시간만 흘러가 버렸습니다. 마음잡고 그림을 그려보지만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잡다한 그림이 되어 버렸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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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 경기도 김포의 모심기 참석. 1980년 5월 28일. 정부기록사진집 11권.

 

논 옆에 밀짚모자를 쓰고 바지를 걷어붙인 남자가 걸어간다. 농부라고 하기에는 밝은색 점퍼 안에 입은 셔츠와 뿔테 안경이 어색하다. 아무리 봐도 농부가 아니라 관료에 가까운 남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모심기에 참석했다. 매년 봄 신문에 등장할 만한 사진으로, 특별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촬영된 날짜를 살펴보면 모멸감이 치밀어 오른다. 1980년 5월28일, 5·18민주화운동이 진압된 다음날이다. 27일 새벽 3시 광주에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진입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애절한 가두방송이 채워지고, 오후 4시10분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들에게 사격했다. 무려 2만5000여명의 군인이 투입되어 오후 5시10분 진압 종료가 선언되었다. 5월29일 망월동에서는 129구의 장례식이 일제히 진행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또 수많은 시민들이 슬픔에 빠졌던 27일과 29일 사이 국가의 수장은 모심기에 참석했다. 모를 심으면서 정종택 농수산부 장관에게 전남 및 광주의 모내기 작업 현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모습은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수록되지 않은 정부기록사진집에서 1980년 5월의 시간을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사진에 보이는 현실보다 숨겨진 현실, 사진에 기록된 장면보다 배제된 장면에서 비롯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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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 연습무의 연습무, 2018, 6분18초, 4채널 오디오 설치 ⓒ오민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연습이 과정이라면, 그 종착점은 최고의 결과일까. 특정한 행동을 더 능률적으로 해낼 필요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 행동을 반복하여 몸에 익히는 연습의 과정을 거친다. 연습은 몸에 습관을 입힌다. 익숙해질수록 최고의 결과를 낼 가능성은 높다. 연습에 매진하는 오늘의 땀방울은 빛나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정말 그런가. 연습은 늘, 온전히 ‘다가올 미래’ ‘최종적인 결과’로 빨려 들어갈 뿐일까. 학부 시절에 피아노를 전공한 작가 오민은 쇼팽 이후 위상이 달라져버린 ‘에튀드’에 주목했다. 기계적인 연습 과정을 통하여 악기의 연주 기교와 표현 방식을 습득하여 ‘예술적인’ 다른 곡을 잘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 에튀드, 연습곡. 쇼팽은 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진 반복의 지루함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연습곡에 불어넣었다. 연주자들에게 ‘과정’이었던 연습곡이 ‘최종’ 무대 위에 오르면서, 연습과 최종은 흥미로운 관계망 안으로 진입했다. 결과를 위한 연습이 결과 그 자체가 되었다.

 

오민은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급기야 ‘최종’에 도달한 에튀드의 시간을 다시 뒤집어 본다. 그는 안무가 이양희의 연습 장면을 담은 작업 ‘연습무의 연습무’를 통해 ‘에튀드’가 그저 ‘연습’이었던 시간을 소환했다. 화면 안에서, 이양희는 시선, 동작, 목소리라는 세 가지 그룹으로 조직한 ‘연습무’를 창작하기 위해 연습 중이다. 오민은 그 가운데 안무가가 시선을 연습하는 장면에 집중했다. 하나의 화면은 안무가의 얼굴을, 다른 화면은 안무가의 뒷모습을 담았다. 이때 그는 숲 한가운데 서 있거나, 회색빛 담벼락을 마주한 채 앉아 있다. 안무가는 대상을 바꾸어가며 초점의 깊이를 움직이고 너비를 변주하는 연습을 했다. 관객의 시선이, 멈춰 있거나 흔들리는 이양희의 눈빛과 그 눈빛이 도달한 공간 사이를 계속 오갈 때도, 연습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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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사진에는 눈부신 제주도의 하늘이나 싱그럽게 푸른 야자수가 없었다. 햇빛이 표백된 회색빛 하늘, 활력 없이 타들어가는 야자수, 모든 것은 볼품없이 회색빛으로 말라갔다. 사람의 얼굴마저도 회색빛으로 보였다. 남성도 여성도, 원주민도 이방인도 아닌, 모두 생기가 빠진 회색인일 뿐이었다. 하늘과 야자수, 사람들까지 사진 속에서는 모두 빛을 잃어가는 회색의 존재였다.

 

빛나는 백(白)으로 태어나 빛을 잃고 어두운 흑(黑)으로 향하는 회색. 백과 흑, 어느 쪽도 아니면서도 둘을 동시에 지닌 회색. 흙과 먼지가 묻고 점점 녹아가면서 다시 하얗게 빛날 수 없는 눈사람의 회색. 그런 회색빛만 가득한 사진은 ‘모든 존재는 빛난다’거나 ‘저마다 빛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빛나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인지 환기한다. 회색 사진은 오히려 빛을 잃어도,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회색의 존재라고, 모두 빛을 잃어가며 점점 녹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생이란, 눈사람이 빛을 잃고 더러워지며 녹는 과정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로 애써 반짝거릴 장면을, 빛나는 순간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그것이 잠깐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빛을 잃지 않거나 녹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색의 존재가 회색의 얼굴과 나무를 회색으로 수긍하는 회색 사진에는 결연한 의지와 산뜻한 체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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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이상기온으로 난리입니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얼음들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저지대 섬나라들은 점점 물에 잠기고, 폭우에 가뭄에 폭염에 지구가 끙끙 앓고 있습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던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 겨울과 여름만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올해 뜨겁고 긴 여름을 통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나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저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인 컵에 얼음 가득 커피 한 잔을 준비해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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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서쪽 끝단의 대명항을 돌아보고 차를 돌린다. 진입로를 빠져나와 4거리에 이르니 왼쪽으로 덕포진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좁은 도로를 따라 2㎞ 남짓. 덕포진의 너른 주차장이 나를 기다린다. 주차를 하고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른다. 올라서니 솔밭 사이로 염하강과 그 너머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잔디밭 사이로 포대가 줄지어 있다. 앞쪽에 놓인 포대가 ‘가’ 포대이고 우측 언덕 너머로 ‘나’, ‘다’ 포대가 이어져 총 15개의 포가 설치되었다 한다. 덕포진은 강 건너 강화의 덕진진과 함께 구한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때 이 사이를 지나던 프랑스와 미국 함대를 향해 맹포격하였던 격전의 현장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면 멋진 풍광이지만 외세에 대항하여 목숨바쳐 싸웠던 선조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언덕길을 따라 포대가 끝나는 지점에 잘 다듬어진 묘 하나가 눈에 띈다. 손돌묘이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고종은 강화도로 피란하게 된다. 왕은 바다를 건널 배가 없자 손돌의 작은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물길이 좁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그의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손돌은 이 지역이 물길이 험해서 그런 것이라 해명하였지만 왕은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 말하고 죽게 된다. 신하들은 손돌의 말대로 바가지를 띄워 바가지를 따라가니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경솔했던 왕은 크게 뉘우치고 손돌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한 뒤 사당을 지어 억울하게 죽은 그의 넋을 위로하였다 한다. 이후로 그의 기일인 매년 음력 10월20일에 진혼제가 올려지고 현재는 김포시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또한 그의 기일 즈음에는 추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혼이 바람으로 변하여 ‘손돌바람’이라 불린다고 한다.

 

차를 움직여 덕포진을 나서는데 입구에 ‘덕포진교육박물관’이 또 발길을 막아선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사고 탓에 시력을 잃은 아내를 위해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오랫동안 수집해 온 자료들을 모아 3층짜리 건물에 마련한 박물관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학교의 모습과 교육사료들, 심지어 농경시설까지 3층 공간 구석구석 방대한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960년대 풍의 교실에 놓인 오래된 풍금 앞의 장인어른은 자리를 뜨실 생각이 없다. 교육자였던 어른은 빛바랜 음악책에서 찾은 동요 ‘꽃밭에서’를 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계셨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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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산세에 들어서면, 지침을 따라야 한다. 줄을 서고, 버스에 오르고,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산에서 수행되는 완벽한 매일의 군무에 동참한다.”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계 덴마크 작가 제인 진 카이센은 지난해 여름 백두산 관광길에 올랐다. 북한과 중국이 반씩 나눠 갖고, 이름도 각자 백두산·창바이산이라 달리 부르는 ‘민족의 영산’에 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코스, 지린성 동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로 향했다. 연길에서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가 병기되어 있는 간판을 보았다.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세계주의는 다양한 보폭을 허용한다.”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산 이야기, 2017, 멀티미디어 설치,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아카이브, 사운드 설치 ⓒ 제인 진 카이센

 

 

그는 경계를 흐르며 국경을 가르는 강물을 보았다. “국가는 국경에서 자신의 힘을 가장 격렬하게 전시한다.” 남북관계에 순풍이 불면 중국과 남한 개발자들이 몰려들어 이 지역의 땅을 샀단다. 바람이 멈추면, 신도시는 황량하게 방치되었다. 작가의 발길은, 한때 불함산·단단대령·개마대산·도태산·태백산·백산이었으며, 이제 장백산·백두산이라 불리는 성스러운 산으로 향했다. 한국인에게는 환웅이 사람이 되고자 하는 호랑이와 곰을 만난 산, 만주인에게는 분화구에서 몸을 씻던 선녀가 붉은 열매를 먹고 낳은 그들의 조상 부쿠리 용손이 탄생한 산, 북한 사람들에게는 김일성이 일본에 대항해 투쟁했던 산이다. “문화에 따른 표현들은 그 산의 상상적 풍성함에 상응한다. 하나의 주제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변주되고 공명한다.”

 

작가는 고요한 천지의 성스러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고요를 깨뜨리며 자리다툼에 집중하는 이들의 몸짓을 보았다. 그러다 그마저도 덮는 천지의 숭고함이 불현듯 관광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보았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 산 앞에 국경을 긋고, 이름을 붙이는 시간을 보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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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아크릴(17×16㎝)

 

더위를 피해 커피숍으로 피신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차가운 음료로 몸속 열기를 가라앉혀 봅니다. 그냥 멍하니 있기 뭐해서 가져온 도구로 그림을 그려 봅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펜이 가는 대로 마음껏 그려봅니다. 실제로는 더위를 피해 숨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과감하게 더위에 맞서 봅니다. 더위의 끝을 잡고 시원한 파도를 타며 마지막 여름을 즐기는 그림입니다. 이렇게 시원한 상상을 하며, 시원한 곳에서 마지막 더위에 맞서 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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