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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의 다리 살다보면 깨닫는다. 어쩌면 이리도 다를 수가. 부부라면 이 말이 더 절실하고, 친구 혹은 직장 상사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원성원의 ‘자존심의 다리’는 이렇듯 완벽하게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부부들에 대한 우화다. 한쪽은 앵무새처럼 차갑기만 하다. 차가워도 보통 차가운 게 아니라 주변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반대로 건너편 곰의 세계는 막 불이 붙기 시작했다. 불같이 화가 나면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는 성격이다. 상대편의 냉랭함이 오히려 화를 더 키우고 있는 모양이다. 여차하다가는 비닐하우스마저도 태워 버리게 생겼다. 그 둘 사이에는 여러 가지의 다리가 늘어서 있다. 과연 어느 다리로 지나가야 자존심을 잃지 않을까. 원성원은 이렇듯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편의 우화를 만들어 내는 작가.. 더보기
니케, 예술이란 이런 거야! 유경희 | 미술평론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나의 멘토의 게스트룸에는 ‘사모트라케 여신의 승리’가 걸려 있다. 물론 복제된 포스터다. 나는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그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이 작품은 고즈넉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니케(나이키) 여신상은 기원전 190년께 제작된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조각이다. 로도스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상은 승리의 감격을 알리기 위해 니케가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앉는 순간, 갑자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휘날리게 해 다리에 감기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1863년 에게.. 더보기
생명나무 사려니 숲에서 한 그루 나무가 피어나고 있다. 아무렴 꽃도 아닌데 피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무는 분명 가지마다 주렁주렁 빛을 매단 채 새롭게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깊다 못해 영험한 숲속이나 잔잔하다 못해 그윽한 바닷가처럼 나무가 태어나는 숙연한 장소들은 이 심증을 훨씬 굳히게 만든다.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연이 온 힘을 쏟아부어 한 그루 나무에 땅 밑의 모든 기운들을 모아주고 있는 듯한 숙연함마저 든다. 이정록은 이렇듯 한 그루 나무를 성스러운 장소로 옮겨와 새롭게 생명을 주는 일을 벌이고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이정록의 행위에 쓰이는 나무 또한 예사로울 수가 없으니, 작가에게 작품 속 나무는 ‘신목’이나 다름없다. 무속신앙에서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거.. 더보기
반 고흐의 고갱 생각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다. 아를에서 고갱과 생활을 할 때 그린 의자지만 고갱이 쓰던 의자는 아니다. 고갱을 생각하며 그린 초상화라고나 할까. 반 고흐는 다섯 살 연상의 고갱을 흠모했고, 고갱이야말로 칭송받아 마땅한 화가며, 그에게서 받은 영향을 인정했다. 귀 자르기 사건으로 고갱과 헤어지기 불과 며칠 전 반 고흐는 이 빈 의자를 그렸다. 동양식 카펫을 배경으로 곡선미가 두드러진 세련된 팔걸이 의자 위에 촛불과 책이 놓여 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반 고흐 자신의 의자와 두 화가의 대조적인 성격과 창작 방식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고갱의 의자는 가스등이 켜진 밤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이는 증권거래소에서 일했고, 화려한 아파트에서 살았던 세.. 더보기
사탕꽃 사탕이 달콤하기로서니 작품의 소재가 될 만큼 대단한 물건일까. 그러나 포장을 뜯어낸 뒤 화려한 꽃의 모양새를 갖추면 얘기는 달라진다. 구성연은 우리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모양의 사탕을 모아 모란꽃을 피워낸다. 실제 모란꽃보다도 더 현란한 그 사탕꽃들은 작가의 손놀림에 따라 두 폭 병풍이 되기도 하고, 화분에 꽂힌 단아한 정물이 되기도 한다. 모양이며 빛깔이 하도 정교해서 볼수록 매혹적인 사탕꽃을 빚어낸 작가의 솜씨는 가히 장인에 가깝다. 어쩌면 그녀가 만들어낸 최종 작품은 사탕꽃이고, 사진은 그저 그 꽃의 기록물에 불과하다는 착각마저도 인다. 그럼에도 구성연이 사탕꽃 아티스트가 아니라 사진가인 이유는 바로 이 착각에 있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가짜인 대상을 찍음으로써 사진이 사실적 재현이고, 사진.. 더보기
반 고흐의 자기생각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이것은 반 고흐의 얼굴이다. 이 그림은 아를시절 고갱과 함께 옐로하우스를 꾸미려던 반 고흐의 심정을 그대로 전해주는 가슴 찡한 작품이다. 소박한 의자가 붉은색 격자무늬 타일의 초라한 실내를 배경으로 놓여있다. 특히 자신의 것이었던 이 의자는 시골 카페와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의자였다. 물론 반 고흐는 거칠고 소박한 것밖에는 살 수 없는 처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가 추구했던 성직자 같은 검소함을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 의자는 온통 노란색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어 아를의 선명한 여름 낮을 상기시킨다. 소나무로 만들어진 단순하고 낡은 싸구려 의자 위에는 그에 걸맞게 파이프와 담배쌈지가 놓여있다. 특히 담배는 반 고흐의 최고 사치품이었다. 칼뱅교 신자답게 하.. 더보기
묵정 묵정동은 먹색으로 보일 만큼 깊은 우물이 있던 동네의 이름이다. 지금 이곳에는 우물 대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여성병원이 자리해 있다. 그리고 이 병원에는 누군가의 엄마로 혹은 딸로 살아오던 여자들이 아파서 찾아온다. 큰 병원을 찾을 정도면 작은 병은 아닐 터이고, 그런 병을 앓고 있는 여자들의 속은 이미 깊고도 검다. 한경은의 ‘묵정’은 난소암을 앓고 있는 엄마가 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했다. 엄마 곁에서 간호하고 응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은이 엄마’가 아니라 ‘명호씨’라는 여자의 인생이 되뇌어졌다. 그렇게 해서 기록을 시작한 명호씨의 투병기는 같은 병동에 입원한 엄마 또래의 ‘이모’들에게까지 번져갔다. 작가는 자궁암이나 유방암 등 여성만의 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들을 복도를 배경 삼.. 더보기
겁 없는 사랑 혹은 겁나는 사랑 신화에서 최고의 사랑은? 단연코 에로스와 프시케!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 혹은 ‘영혼’이라는 뜻이며, 영어 ‘사이코(Psycho·정신, 심리, 영혼)’의 어원이다. 프시케는 새벽 하늘에서 내려온 이슬이 땅에 닿는 바로 그 순간에 태어났단다. 그만큼 순수하고 천상적인지라 사람들은 아프로디테보다 더 그녀를 숭배했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프로디테는 잔인한 신탁을 내린다. 프시케가 죽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 에로스는 엄마의 명령대로 죽음과 사랑에 빠지도록 프시케에게 화살을 쏘려 한다. 그는 프시케의 미모에 놀라 자신을 찌르고 그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 사랑은 죽음을 이긴다는 말처럼 에로스는 프시케를 구원한다. 그러나 프시케는 언니들의 질투와 자신의 의심으로 에로스를 잃게 된다... 더보기
포획된 자연 자연스럽다는 말은 들을수록 기분이 좋다. 그것은 순리에 따라 사물의 핵심에 다가갔다는 뜻이니 진정한 내공이 있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본래 ‘자연’이라는 것 자체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진가 박형렬은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던 어느 날, 산에 올라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연들이 죄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인공 자연’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나무는 콘크리트 화단 속에서 자라고, 땅은 1평 단위로 셈해지는 부동산이 되었다. 이제는 자연조차도 부자연스러운 괴물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형렬의 ‘포획된 자연’은 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꼬집는 작업이다. 거대한 자연을 조몰락거리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헛심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더보기
아주 사소하고 장엄한 풍경 하나 풍경화는 열등하다? 서양미술사는 초상화와 인물화의 역사다. 동양화의 중심이 산수화였던 것에 비하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만큼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아주 늦게 태어났다. 물론 풍경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풍경화는 초상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한 기독교 가치관은 자연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했던 것! 풍경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려면 17세기가 돼야 한다. 클로드 로랭, 니콜라 푸생, 반 로이스달에 와서 풍경은 하나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숭고한 풍경이랄까. 마치 신의 섭리를 드러내는 일종의 신앙고백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가 19세기가 되어 사.. 더보기
얼굴 없는 얼굴 영화이론가 자크 오몽은 세상에는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얼굴은 감정의 집합소, 소통을 위한 최전방의 신체, 나를 나이도록 만드는 동시에 남이 나와 다름을 깨닫게 하는 철학적 대상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얼굴은 욕망 혹은 소비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얼굴은 흔히 우리가 걸친 옷, 지닌 물건과 같은 말로 비친다.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하는 내 얼굴을 위해 우리는 치장하고 소유하고 집착한다. 김국화의 ‘얼굴 없는 얼굴’은 이 사물들로 얼굴을 대체한 작업이다. 작가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건, 매일 들고 다니는 소품들로 얼굴을 감싼 채 그들의 얼굴 없는 초상 작업을 만들었다. 얼굴 가.. 더보기
과일로 만들어진 남자 밀라노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궁정화가로 일하며 백작위까지 받았던 주세페 아르침볼도(1526~1593)는 알레고리 그림, 즉 우의화로 유명하다. 아르침볼도는 16세기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화가들이 그렇듯이 세련된 고객들을 위해 인공적인 성격이 강한 흥미로운 그림을 그렸다. 그는 1573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 ‘식물 초상화’ 연작, 즉 ‘조합두상(composite heads)’으로 당대에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여름’이라는 인물은 16세기 유럽의 여름에 재배되는 야채와 과일들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복숭아, 마늘, 아티초크, 버찌, 오이, 완두콩, 옥수수, 가지, 딸기, 밀 등이다. 오이로는 코를, 배로는 턱을, 복숭아로는 볼을, 강낭콩으로는 이빨을, 체리로는 입술을, 밀이삭과 밀짚으로는.. 더보기
조증이 만든 천지창조 천지창조를 그릴 때 미켈란젤로는 조각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엄청 투덜거렸다. 천지창조는 그의 나이 37세인 1508년부터 1512년까지 5년 동안 제작된 작품이다. 초기 프레스코 공법을 몰라 피렌체에서 온 몇몇 화공의 도움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축구장 반만 한 크기에 400명 이상의 인물을 거의 혼자 힘으로 그려냈던 것! 옷도 갈아입지 않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5년 동안 꼬박 천장을 향해 누운 채로 말이다. 빵과 포도주만 가지고 사다리에 올라가 천장만을 바라보며 일하던 버릇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평상시에도 책이나 편지를 위로 들어 고개를 쳐들고 읽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하도 오랫동안 장화를 벗지 않아 나중에 신발을 벗을 때 살점이 함께 떨어져 나왔다는 얘기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것이.. 더보기
생의 터, 기억의 집 무덤은 죽은 자를 위한 곳이 아니다. 죽은 자와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산 자가 만들어 놓은 기억의 집일 뿐. 그러므로 무덤은 산 자들을 지금의 삶에 붙들어 매놓기 위한 생의 장소다. 남겨진 사람은 무덤이 놓인 밭두렁 가장자리, 깊은 숲,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올라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을 나누고, 소소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남은 생을 함께 산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보면, 무덤이 늙어 봉분의 키는 점점 줄어들고,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진다. 더불어 무덤을 지켜주던 이 또한 세상을 떠나버리고, 병풍처럼 늘 감싸줄 것 같던 주변의 산과 바다도 모양새를 달리한다. 외롭지 않게, 먼저 떠난 이 옆으로 봉분 하나가 나란히 놓인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갑작스럽게 동생을 떠나보낸 사진가 차경희는 .. 더보기
조각가 베르니니를 아시나요 르네상스 조각의 거장이 미켈란젤로라면, 바로크 조각의 거장은 베르니니였다. 모든 면에서 미켈란젤로와 비견되는 베르니니(1598~1680)는 미켈란젤로만큼 오래 살았고, 산 피에트로 광장을 설계할 만큼 바티칸과의 인연도 상당했다. 그뿐 아니다. 그 역시 미켈란젤로처럼 다비드 상을 제작했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 가려 빛을 덜 보았지만, 역동성과 활기에 관한 한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완벽하다. 다비드, 즉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미술사의 흔한 주제다. 유대의 두 번째 왕 다윗은 음악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인물로 솔로몬의 아버지다. 양치기였던 어린 다윗은 전장의 형들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사울과 블레셋의 전쟁을 목도한다. 이때 블레셋 거인 골리앗이 다가와 일대일로 싸워 패배한 편이 노예가 될 것을 .. 더보기
마리아의 치맛자락 루브르미술관에 가면 모나리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걸작이 있다.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성 안나와 성모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정신분석학자 S 프로이트가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분석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미술평론가들은 통상적으로 이 작품을 세 인물의 기묘한 결합과 자유로운 움직임, 얼굴에 매우 부드럽게 퍼진 명암, 그리고 스푸마토(sfumato·‘연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회화에서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같이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옮겨가게 하는 방법) 등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아기 예수를 희생양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지극히 모성적인 마리아와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런 딸의 행위가 부질없다고 만류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는 상식적인 수준을 토로한다.. 더보기
다섯 단계의 모노드라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은 예기치 않은 어떤 사건과 함께 변화를 맞이한다. 늘 작업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나날이기만 할 것 같았던 사진가 임형태에게 그 변화는 조금 놀랍게 찾아왔다. ‘암에 걸렸습니다’라는 진단과 함께. 그러나 그 당혹스러운 현실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신파가 아니다. 그는 일단 암환자가 겪게 되는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 중 첫 번째인 ‘부정’ 상태를 작업으로 풀어내기로 결심했다. 작품 제목인 ‘I see’는 분노의 단계를 일컫는 영어 표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계가 부정이지만, 작가는 이 감정을 훨씬 재치 있고 상상력 넘치게 형상화한다. 지천에 널린 고기는 놔둔 채 어망 가득 탁구공만 잡.. 더보기
날개 달린 존재들 예수와 4복음서 저자들, 12-14세기, 생 트로핌 대성당, 아를르, 프랑스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 가면 날개 달린 존재들이 출몰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채색사본, 팀파눔, 조각상 등에 나타나는 그들은 4복음서 저자들이다. 특히 초기 기독교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을 날개 달린 피조물로 표현했다. 마태는 날개 달린 사람으로, 마가는 날개 달린 사자로, 누가는 날개 달린 황소로, 요한은 독수리로 그려지곤 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와 같이 예수가 콩가루(?) 같은 인간 족보를 가졌다는 사실, 즉 예수의 인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을 상징물로 사용했다. 마가복음은 서두가 사자의 포효하는 울음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사자를 상징물로 삼았다. 전.. 더보기
전쟁에도 격이 있다? 아테나와 아레스는 둘 다 전쟁의 신이다. 아테나가 지혜로운 전쟁의 신이라면, 아레스는 좀 무지한 전쟁의 신이라고 할까! 아테나가 도시와 문명을 수호하는 전쟁을 주관한다면, 아레스는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을 주관한다. 아테나는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는 수호천사요, 아레스는 폭력과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미치광이 싸움꾼인 셈이다. 아테나와 아레스는 모두 제우스의 자식들이다. 아테나는 헤라의 눈을 피해 제우스가 혼자 낳은 딸이다. 그녀는 그리스 전역, 특히 파르테논(Parthenon·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라는 뜻) 신전에서 열렬히 숭배받았다. 이렇게 잘난 누나 아테나에 비해 아레스는 영 인기가 없었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의 정실 자식이다. 외모는 황홀한 수준이었으나 성격은 양아치 같았다. 그래서인지 .. 더보기
결혼을 유지하는 질투? 6월은 헤라의 달이다. 그리스 여신 헤라는 라틴어로 유노(juno)가 되었고, 이것이 영어의 6월(June)이 된 것!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미술사에서 헤라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적다는 점이다. 아프로디테에게 밀리고, 아테네에게도 밀린다. 헤라의 미모가 달려서일까? 아니면 아프로디테의 관능과 아테네의 지혜보다 부족했던 탓일까? 아마 예술품을 주문했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조강지처를 상징하는 헤라가 더 이상 구애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헤라는 통상 질투의 여신으로 알려져 왔다. 사실 헤라는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여신이다. 자신이 주관하는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제우스의 여인들을 응징하는 데 일생을 다 보낸 여자다. 고대 그리스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결혼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