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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구석기 흔적, 손바닥 가장 오래된 손바닥 도상은 약 5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사실 손바닥 그림은 세계 곳곳의 구석기 유적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은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서 손의 윤곽이 드러나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했다. 그럼 전 세계 구석기인들은 왜 손바닥을 그렸을까? 구석기 시대는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그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원시미술을 볼 때는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손은 나를 표현하고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두 발 보행을 시작한 영장류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도구를 발명하는 등 손을 자주 사용하면서 뇌도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발달된 뇌는 다시.. 더보기
미장제색 ‘미장산.’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길이 있다. 물과 바람이 부지런히 산세를 스치니, 봉우리는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우거진 푸른 숲, 길게 솟은 나무며 바위 틈새로 청명한 기운은 고요히 가라앉고, 계곡 위로 시선을 내린 ‘보는 자’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잃는다. 이제는 ‘숲에 내린 달빛에 가야 할 길을 물을 때’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도로에서 배종헌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났을까. 흙이며 회,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이의 손길이 만들었을 벽, 천장, 바닥, 그 터널의 표면에 들러붙은 ‘먼지’, 시멘트의 균열이 눈에 들어와 풍경이 되던 날, 풍경을 지나 ‘산수’가 되던 날, 어쩌면 그의 눈은 아무것도 안 보았을지 모른다. 뇌는 생각을 멈추었을지 모른다. 뚜렷한 대상을 향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열려 있던.. 더보기
오랜 사이 햇살 가득 품은 얼굴이 내게로 왔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눈인사에는 오랜 인연으로 빚은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꾼’. 내가 이 나라를 찾아 NGO활동가로 머물던 2009년에 처음 만났으니 벌써 10년을 꽉 채운 인연이다. 바늘과 실을 처음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녀는 지금 꽤 능숙한 솜씨를 지닌 전문 재봉사가 되어 있다. 2년 전쯤 왔을 때와는 달리 눈가에 살짝 잔주름이 얹히는 걸 보면서 세월을 함께 나눈 인연이란 생각에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캄보디아에 이런 친구들이 꽤 많다. 2004년에 처음 이 나라를 찾은 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어 아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달려와 몸과 맘을 들여 살았던 때문이다. 그 시절에 맺어진 친구들과의 인연들을 생각하.. 더보기
선물 고민 크리스마스 선물이 고민입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말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있다고 꼭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주실 거라고 기다릴 거랍니다. 웬만한 선물로는 감동받지 않는 커버린 아이에게 이번에는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선물 고민만 하고 있는 저도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아직 순수한 아저씨입니다. 더보기
전업비평가로 산다는 것 20대 후반부터 이어온 미술전문지 편집장 생활을 접은 이후 올해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잠시였으나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조직의 일부였다. 이 때문에 2019년은 온전히 ‘전업비평가’로 산 첫 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익명성의 층위를 가시화하고, 예술과 사회에 새로운 모더니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면 그 직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조화를 이뤄 생활고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직업은 없다. 난 전업비평가야말로 부합하는 직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체험해보니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컸다. 일단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계획적인 살림은커녕 평균 산출이 불가능할 만큼 롤러코스터를 탔다. 벌이도 영 신통치 않았다. 이곳저.. 더보기
삶은 예술은 바나나 토마스 바움가르텔은 1986년부터 미술관 외벽에 스프레이로 바나나 그라피티를 남겨왔다. 한 예술가의 이 ‘비공식적인 인증’ 행위는 ‘가볼 만한’ 예술공간의 표식으로 인정받으며 퍼져 나갔다. ‘바나나’의 ‘보증력’은 세월이 흐르며 퇴색된 감이 있지만, 덕분에 ‘예술 인증’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의문은 커진다. 1967년 앤디 워홀은 적당히 잘 익은 ‘바나나’ 그림을 넣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재킷을 디자인하고는 ‘천천히 벗겨보시오’라고 적어넣었다. 바나나 그림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핑크빛 바나나 알맹이가 등장했고 그의 작업은 ‘외설’ 이슈를 낳았다. 바나나 가격 폭락의 이유를 알기 위해 그 생산·유통 과정을 추적하던 함경아는, 필리핀에서 바나나 대량재배로 땅이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2006년 발표.. 더보기
친구 사이 그는 나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혹시나 내가 화를 입게 될까 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해 당장 떠나주기를 원했다. 2003년 3월18일 저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거리. “지금 떠난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이대로 남는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로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달라는 그를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심’. 전쟁취재를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라크를 찾은 나에게 그는 현지 안내인이면서 길동무였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에 희끗거리는 반백의 머릿결이 잘 어울리던 카심은 머무는 기간 내내 마치 아버지처럼 사려 깊은 성정으로 내 동선을.. 더보기
이웃사촌 도시는 높고 거대한 사각형 건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건물 속은 조그만 사각형 공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각형 공간 안에는 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래와 위,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에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먹고 자고 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나를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상대방을 알아도 아는 체하지 않는, 가깝지만 가장 먼 우리들은 이웃사촌입니다. 더보기
다양한 부분들의 질서로 이루어진 무작위적 도시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남쪽으로 약 500㎞,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에 위치한 가르다이아(Ghardaia)는 사진과 같이 독특한 형태의 집락을 형성하고 있다. 11세기 이슬람교 음자브인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남아프리카의 지중해 해안으로부터 옮겨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일거에 만든 이른바 요새 도시이다.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오목한 지역에 위치하고, 마을은 낮은 언덕 지형으로 가장 높은 곳에 모스크의 첨탑이 있다. 이 모스크를 에워싸며 ㅁ자 중정을 가진 집들이 원심형으로 언덕 전체를 빼곡히 메우며 펼쳐진다. 실로 한 폭의 입체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마을은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불규칙하게 무작위로 들어선 건축물들이 조화롭.. 더보기
동굴벽화로 살펴본 라스코의 역사 역사는 보통 문헌에 기록된다. 사람들은 생각을 주로 문자로 기록하기에 역사가들은 문헌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피고 구성한다. 만약 문자가 없으면 어떻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이럴 땐 그림이 유용하다. 아이들처럼 그림으로 그리고 말로 보완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구석기 시대가 그랬다. 구석기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그렸다.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 증거다. 만약 이들에게 역사가 있었다면 그림으로 사실을 기록하고 구전으로 전승하며 역사를 계승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석기 동굴벽화는 미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문헌적 가치도 높다. 디자인은 역사와 유사하다. 디자이너도 역사가처럼 그림=문헌을 근거로 상황을 파악해 가설을 세우고 추론한다.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동굴벽화는 이런 방법으로 내용을 파악하기에 적합.. 더보기
아직은 헛기술 ‘불안정한 작업환경과 레지던시의 입주로 잦은 이사를 겪으며 점차 도심을 벗어난 외곽지역을 탐색하던’ 이정민은, ‘목적지가 없어야 산책’이라며 소소하게 나선 길,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을 거다. 노트에 옮겨 두었다던 ‘1839년에는 산책 나갈 때 거북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우아해 보였다. 이것은 아케이드를 어떤 속도로 산책했던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발터 베냐민의 문장을 떠올리기 좋았을 거다. ‘내일의 내가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로부터 나의 존재를 다른 위치에 놓는 방법’인 산책은 그저 몸만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었다. ‘변변치 못한 공터와 주변의 작은 숲, 덤불들 주위를 걸으며, 도시도 아니고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자연 아닌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것도 아닌 주변부의 풍경들이 변.. 더보기
두 사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의 밀착감이 한몸으로 느껴질 만큼 보기에 좋았다. 요동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엄마가 아이와 눈빛을 맞추는 정도의 움직임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몸짓의 변화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요함에 거의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 나는 없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간간이 뒤를 돌아 내 눈빛에 섞이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두 사람은 파도 건너 저 먼바다 끝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내 나는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걸 .. 더보기
이리저리 정보가 넘쳐나고 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보아야 할 것, 읽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멈추고 딴짓하다가는 이 급박한 시대에서 뒤처져 버립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요즘 새로운 것들을 익히고 알려고 노력은 해보지만 점점 그 속도는 늦어지고 있습니다. 한번 뒤처지면 다시 따라잡기는 힘들어진 요즘 시대 덕분에 억지로라도 머리와 눈과 손을 움직이며 이 시대의 속도감을 익히고 있습니다. 더보기
헐거우나 볼만한 국립현대미술관 ‘광장’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동시대까지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을 미술의 언어로 풀어낸 300여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근·현대사를 골격으로 예술가와 작품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그려왔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 아래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우린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한국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중심어로 ‘광장’을 내세운 건 “한국사의 역동성을 가장 뚜렷하게 각인시켰던 지점”(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 더보기
설근체조 혀의 움직임은 당신의 표정을 바꾸고, 턱선을 바꾸고, 얼굴형을 바꾼다. 몸짓을, 말투를, 음색을, 발음을, 어쩌면 마음의 위치를 바꾼다. 유연한 세치 혀라면, 당신 아닌 타인의 마음마저 능숙하게 움직인다. 혀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면, 운동성을 과시하면서 어설프게 움직인다면, 그 혀는 당신의 치열을 밀어내고, 구강구조를 망가뜨리고, 숨쉬기마저 방해할 것이다. 그런 혀일지라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보겠고, 말을 쏟아 내겠고, 타인의 마음을 유린할 테지만, 그런 혀는 마침내 당신의 턱관절을 비틀고, 얼굴의 윤곽을, 몸통을 뒤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윤정은 혀뿌리를 움직여보던 중, 혀근육이 턱근육, 심장근육, 전신으로 뻗어 있는 온갖 근육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혀.. 더보기
장막이 걷히고 나면 바람 시린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1월이 아직 며칠 남아 있는데 목을 타고 스미는 기운이 한겨울처럼 제법 차다. 굳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자꾸 타고 든다. 최근 들어 가까이 여기는 지인들의 전화나 만남의 시간들이 연이어 그리고 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내용은 모두 자신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슬프거나 마음 아픈 일들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를 찾을까 싶어 두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들을 대하려 애를 쓴다. 며칠 전에도 귀히 여기는 한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주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는 후배이자 인생친구라 여기는 사이였다. 웃을 일이 없는 구닥다리 농담으로 늘 쾌활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가라앉아 있기에 금방 무슨 일이 있구나 싶.. 더보기
안 잡아먹어요 안 잡아먹어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냄새도 안 나고 이상한 짓도 안 해요. 겉보기엔 좀 그래도 마음은 착해요. 피하지 마세요. 최대한 팔다리를 모으고 조용히 잠자고 있을 테니 그냥 사람으로 대해주세요. 안 잡아먹어요. 저 괴물 아니에요.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여자들이 아저씨 옆의 빈자리에는 잘 앉지를 않습니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여 앉고, 아저씨들은 아저씨들끼리 끼여서 앉아 있습니다. 가끔 여자들 사이의 빈자리에 앉으려면 양쪽에서 째려보는 눈빛이 느껴집니다. 더보기
신에서 스테이크까지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 몽티냑 마을 소년들이 강아지를 찾던 중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이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사진)이다.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원시미술을 대표한다. 벽화에는 말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머리에 뿔이 달린 가로 길이가 약 4m인 소이다. 이 소는 오록스종으로 스페인 투우에 등장하는 거친 황소들의 조상이다. 구석기인들은 왜 거대한 소를 그렸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 1만년 전 차탈회위크 유적에 거대한 소를 그린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차탈회위크 사람들이 소를 숭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약 5000년 전 크레타섬의 신화에 전설적인 괴물 미노타우.. 더보기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멕시코만 바다에서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마침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청새치를 낚아 올렸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는가 보다. 그는 청새치의 살점을 상어 떼에게 고스란히 뜯기고, 앙상한 뼈만 매단 채 돌아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성공의 기억을 뒤로하고 노인은 피로한 몸을 뉘었다. ‘길 위쪽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작가그룹 무진형제는 나이가 들면 남을 따분하게 만들지 않는 현명한 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으로 적은 것을, 낡은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할아버지를 이.. 더보기
나의 질문을 바꾼 사람들 굶주리는 이들 앞에 서서 배가 얼마나 고프냐고 이제 묻지 않는다. 절망과 고통에 쌓인 이들 앞에 서서 얼마나 살기 힘드냐는 질문도 하고 싶지 않다. 병들어 누워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을 생각 또한 없다. 장애를 지닌 이들 앞에 서서, 그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묻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의 시선을 어떻게 견디어 내느냐는 질문은 정말이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한때 그런 질문과 염려에만 거의 100% 기대고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답을 들은 뒤 마치 세상을 다 바꾸어줄 듯 섣부른 약속으로 그들을 탐해왔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나의 시간들이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은 질문의 내용과 방식이 바뀌었다. 고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