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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보통의 영웅들 짧은 머리에 양복 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뒤에는 고층빌딩과 버스 정류장, 바닥에는 보도블록이 보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보이는 건 콘크리트 교각과 강바닥의 크고 작은 돌뿐이다. 만약 회사들이 즐비한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그를 마주쳤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테헤란로에서 순간이동한 것처럼 한강에 뚝 떨어진 모습이 자꾸 눈길을 멈춰 세운다. 사진가 이승주는 오랜 친구인 ‘두훈’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두훈의 직장과 멀지 않은 한강변이었다. 사진가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이나 소품을 준비하라고 주문했고, 모델은 파란색 넥타이와 짙은 남색 양복을 택했다. 이런 식으로 주변 지인들을 집이나 회사 근처 등에서 촬영한 사진연작 ‘A’에는 결과적으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공간이, 평범하게 살아가.. 더보기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수치심 때문에 죽는다.” 영화 의 대사다. ‘내가 왜 길을 잃은 거지? 뭘 잘못한 거지?’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지면 무기력해진다. 살기 위해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수치심 때문에 죽는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TV에서 8년간 자책감에 시달렸다는 이를 보았다. ‘수치심 때문에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8년의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경직된 목소리는 40년 전 동일방직 노동자가 수치심을 견디며 부르쥔 주먹과 닮아 보였다. 1978년 2월21일, 대의원 회의를 앞두고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똥물을 뿌렸다.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 남성 중심의 어용노조 .. 더보기
하얀 신음 하얀 별처럼 반짝이는 눈발이 까만 허공에 박힌다. 촘촘한 백성좌를 향해 분홍빛 카약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비계 파이프로 얼기설기 만든 망루에 얽힌 카약은 제자리에서 꼼짝 못한다. 좌초된 카약 대신 노란 깃발들이 거센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NO! NAVAL BASE(해군기지 반대!)” 3년 전, 허공에서 제자리를 맴돌던 카약에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을 비롯한 5명이 몸을 실었다.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확정되고, 공사가 강행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엉성하고 위태로운 망루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으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날 아침, 해군은 100여 명의 용역을 투입해 망루를 철거하는 행정 대집행을.. 더보기
고양이 요즘 반려 동물들을 많이 키웁니다. 그중에 애교 많고, 대소변 잘 가리고, 공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고양이가 가장 인기가 많은 듯합니다. 온라인상에는 고양이 이미지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들이 달립니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에서는 길 고양이들이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어젯밤 아직 엔진 열기가 남아 있는 차 밑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현실에선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전히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영혼의 무게 21그램. 영혼의 무게로 불린다. 임종 직전과 직후에 그만큼의 몸무게가 차이나는 탓이다. 서울 용산 4구역 남일당의 부서진 망루 주변에 하얀 연기가 나타난 노순택의 사진을 보며 떠올린 것은 영혼의 무게였다. 쪼그라든 망루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1그램은 5센트 5개의 무게,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코바 하나의 무게와 같다. 그렇다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 그들의 영혼은 5센트 30개, 초코바 6개의 무게와 같을까.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들이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했다. 진압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경악스러운 대참사였지만, 누군가 쫓겨나는 장면은 그 어디선가 늘 되풀이되는 일이기도.. 더보기
들리지 않는 눈물 세상에 순한 아이는 없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예민함을 지녔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예민함을 표출한다. 이 아이는 소리에 예민해 소리를 지르고, 저 아이는 잠자리에 예민해 잠투정하며, 또 어떤 아이는 음식에 예민해 음식을 뱉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주어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 순하다고, 착하다고. 그러나 각자 타고난 예민함은 달큰한 말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고도 마냥 아이처럼 유난스럽게 예민함을 티낼 수 없기에 스스로 자신을 억누르는 요령이 생길 뿐이다. 소리 없이 울거나 억누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내면에 잔존할 것이다. 젊은 작업자 이옥토의 사진을 보면서 그.. 더보기
엄마는 24시간 한 손에는 별금당이라고 적힌 장바구니를, 허리에는 포대기를 한 여인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예닐곱 살 아이가 영화 의 포스터 속 키스 장면에 정신이 팔려 있다. 오른쪽에 버스 정류장 표지판인 것 같은 쇠기둥이 보인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짐작되는 여인의 얼굴에는 오늘의 고단한 외출이 그대로 묻어 있다. 어디 오늘뿐이었을까. 어제도 내일도 두 아이를 챙기며 생활을 꾸려야 하는 엄마의 무게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함석판에 붙은 영화 포스터 속 여인의 웃음은 엄마의 검은 얼굴을 더욱 수척하게 만든다. 그 절묘한 대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사진가(고 권태균)는 놓치지 않고 화면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결코 영화 제목처럼 ‘나인 투 파이브’할 수 없는, 끝내 퇴근이 없었던.. 더보기
깊은 구멍 사진 속의 장면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차근차근 보아도 잘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환과 향, 병풍이 있는 영안실은 왜 난장판이 됐을까. 도대체 무슨 연유로 벽에 구멍까지 뚫린 것일까. 1991년 5월7일, 의문사를 당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영안실에 백골단이 침입했다. 그들은 물대포를 쏘아대며 시신 사수대를 폭행했고, 해머로 벽을 뚫어 시신을 탈취해 강제로 부검했다. 이러한 정보를 얻은 후에도 사진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 담겼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돌 스타의 자살 그리고 제천 화재 참사를 둘러싼 몇몇 보도를 접하며, 구멍 뚫린 영안실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돌 스타의 비극적 죽음을 다루는 기사는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고 집요했다. 유서부터 자살 방.. 더보기
세 얼굴 사이에 부엌과 거실로 이어지는 자리에 엄마가 앉아 있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큰아들이 누워 있다. 엄마의 손은 아들의 가슴 위에 살포시 놓여 있고, 두 사람의 단단한 입매가 서로 닮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하는 엄마의 얼굴에도, 눈을 지그시 감은 아들의 얼굴에도 청량한 빛이 은은하게 감돈다. 사진가 박현성의 ‘찬란’ 시리즈는 어머니와 형의 일상을 따라간다. 꽤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진을 면밀히 바라보면서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중년의 엄마와 청년의 아들 사이에서 무릎베개가 왠지 흔치 않은 일인 것 같고, 두 얼굴을 감싸는 빛의 기울기가 우연이라 하기엔 절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업이 가족을 향한 기록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족 사이에 솟아난 공백을 더듬는 몸짓이기에 그렇다. 아버지를.. 더보기
그들만의 영광과 굴욕 1979년 12월14일, 보안사령부에서 군인들이 카메라 앞에 도열했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촬영 이틀 전 정권을 찬탈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한 그들은 자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만의 영광은 사진으로 기념됐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되기에 뒷줄 맨 우측의 백운택 준장은 따로 편집해 붙이기까지 했다. 1996년 12월16일, 그들은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 다시 카메라 앞에 도열했다. 흑백사진에서 앞줄 중앙에 보였던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등은 컬러사진에서도 역시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했다. 군복 대신 수감복을 입고, 별 대신 번호표를 단 주역들의 모습은 늙고 지쳐 보인다. 그들만의 굴욕이 찍히는 순간, 그들만의 영광 때문에 많은 이들이 .. 더보기
둘을 위한 기념사진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통속적인 영화는 대개 떠들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디서 첫 키스를 했는지, 언제 사랑이 식기 시작했는지,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 그 시작과 끝을 낱낱이 이야기하기 바쁘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와 듣지 못하는 다카코가 등장하기에 대사가 거의 없다. 게다가 감독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대신 곁에서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함께 서핑보드를 들고 가는 둘의 모습을, 시게루가 서핑하는 동안 해변에 남아 그의 옷을 개는 다카코를, 그녀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게루를 떨어져서 보여줄 뿐이다.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점은,.. 더보기
웃는 남자 -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얘야, 사진 한 장 찍자”고 했을까, 아니면 “엄마, 사진 찍어요” 했을까?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가을 햇볕이 환해서, 노란 국화가 탐스러워서 카메라 앞에 섰을 것 같다. 사진 찍고 싶을 만큼 햇살이 좋았던, 국화가 예뻤던 그날은 두 사람의 소박한 모습으로 동결된다.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기념사진이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저기 해맑게 웃는 청년이 바로 이한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한열 열사가 저리도 예쁘게 웃는 아이였단 말인가. 내가 사진으로 기억하는 이한열은 1987년 6월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이종창에게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모습뿐이다. 그렇기에 단 한.. 더보기
의미의 시차 어느 작가는 자신의 전시회 때 도슨트 프로그램에 몰래 참여한다. 관객 사이에서 자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니 왠지 짓궂다. 도슨트 입장에서 원작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민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발화자(주체)가 아닌 청자(객체)의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건 작가에게 유의미하다. 작품의 의미가 청자에게 어떻게 (오)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슬기의 ‘Sub/Ob-Ject’ 시리즈를 보며 이미지를 둘러싼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교란하거나 역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앞서 말한 작가의 행위가 떠오른다. 기슬기는 외국인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얻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이미지를 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 발화와 청취의 시차, 기록과 기억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 더보기
시각과 사각 군데군데 찌그러졌다. 드문드문 빨간 도색도 벗겨졌다. 각질처럼 허옇게 일어난 타이어 표면은 심하게 마모됐다. 둥근 휠 가운데 호랑이 엠블럼은 작지만 눈에 박힌다. 범퍼 밑에는 물먹은 주황빛이 반짝인다.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들여다봐도 왜 찍었는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이처럼 목정욱의 ‘Car’ 연작(2006~2017)은 어떠한 이야기도 담지 않은 파편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산산조각 난 앞 유리창, 먼지와 때가 잔뜩 낀 헤드라이트,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은 사이드 미러 등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알 수 있는 건, 피사체가 자동차라는 것뿐이다. 작가의 프레이밍은 형태와 색의 윤곽을 선명하게 묘사하지만, 어떤 정보를 제공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전체를 가늠할 수 없고, .. 더보기
어두운 섬광 적막한 새벽, 칠흑처럼 먹먹한 어둠 속에서 플래시가 강하게 터진다. 창백한 섬광을 마주한 병사의 헬멧과 얼굴 그리고 요대의 버클이 부러질 듯 딱딱하게 빛난다. 그 옆에는 90㎜ 주포를 장착한 M48A2C형 패튼 탱크가 어둠의 물결에서 차갑고 육중한 몸체를 뒤척인다. 프레임 끝과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탱크와 병사가 그려낸 평행선이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 안에서 어깨를 맞댄 어둠과 밝음의 선명한 대비가 눅눅한 불길함을 자아낸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1979년 10월27일 새벽에 찍힌 장면이다. 오전 4시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의 계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몰고 중앙청을 점거했다. 뚜렷하게 보이는 탱크와 그 뒤로 어렴풋한 중앙청 건물 그리고 승용차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보기
핀치투줌 스크롤 스크롤, 클릭 클릭 그리고 핀치투줌(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는 것). 눈과 연동된 손가락은 스마트폰 위에서 분주하지만 유연하게 움직인다. 때로 손가락이 눈보다 더 빨리 반응하기도 한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수많은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어떤 사진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가락을 벌린다. 그리고 ‘아차!’ 아찔함을 느낀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얼굴 같지 않은 얼굴, 몸뚱이 같지 않은 몸뚱이가 드러났다. 그건 사람이지만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시커먼 형체처럼 보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시신이었다. 그 사진은 세월호 청문회 때 참고인으로 출석한 희생자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가 공개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헤집으며, 나는 과연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더보기
현기증 어지러운 전깃줄에 걸린 현수막 구호가 더없이 어지럽다. 검은 실루엣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없어 어지럽다. 어지러운 구호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어지러운 사내는 송경동 시인이다. 포클레인 위에서 어지러운 구호를 외치던 시인은 땅으로 어지럽게 곤두박질친다. 그는 기륭전자 옛 사옥 앞에서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을 부수려 했던 포클레인을 막고 12일 동안 밤샘 농성을 했다. 2010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던 기륭의 노동자들은 1895일간의 복직투쟁 끝에 사측과 정규직 고용에 합의했다. 그에 따라 노동자 10명은 2013년 5월부터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고, 같은 해 12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 더보기
십년 동안 흔적만 남은 중앙선 그리고 굵은 금이 간 아스팔트. 그 허름한 2차선 도로에는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전깃줄에 몸이 뚫린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피처럼 뚝뚝 떨군다. 강홍구의 개인전 (원앤제이갤러리, 9월7~30일)에는 희미한 안개와 함께 사라진 살풍경이 적막하게 펼쳐진다. 10년 전부터 경기 고양시 오금동과 신원리 일대에서 찍은 재개발 풍경이다. 흥미로운 것은, 재개발 현실을 눈앞에 둔 작가가 그 풍경을 가장 현실적으로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도 이미지를 비현실적으로 다룬 점이다. 색과 구도를 뒤틀고, 사진과 사진을 이어 붙이며,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한다. 그의 말처럼 ‘사진을 현실에서 최대한 멀리 떼어 놓는’ 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주목한 안개는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소설.. 더보기
낙차와 궤적 볼이 파일 정도로 여윈 남자가 침상에 누워 있다. 환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만큼 의사와 간호사의 경직된 포즈가 눈길을 끈다. 가운데를 가리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환자가 사진의 주인공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걸린 전시장에는 어떤 캡션도 없기에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김익현의 개인전 에는 ‘기념비’, ‘동굴’ 등 작가의 전작과 연결된 아카이브 사진을 재촬영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보통 아카이브 사진에 담긴 텍스트를 지시·암시하는 캡션이 명시되지만, 이 전시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작업 노트에서 아카이브 사진의 단서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전시장의 구성은 의도적으로 사진과 정보의 링크를 깨뜨린다. 텍스트가 소거된 전시장은 정보 대신 시.. 더보기
토마토와 손가락 한동안 토마토를 먹지 못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토마토의 살을 베려던 부엌칼은 미끄러져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토마토보다 붉은 액체가 하얀 도마를 흥건히 적셨다. 신발 끈으로 동여매도 멈추지 않던 피는 기억에도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몸에 새겨진 고통보다 기억력이 강한 것은 드물다. 의식적으로 망각하려고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토마토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시리고 아렸다. 고백하자면 토마토가 무서웠다. K와 M이 서로의 벗은 몸을 촬영한 한경은의 ‘비가시적인 전망(Invisible Vision)’을 바라보면서 토마토와 아린 손가락이 떠올랐다. K와 M은 고통이 새겨진 몸을 서로 바라보며 아렸을까. 또 무서웠을까. K와 M은 버디무비 처럼 여행을 떠났다. 둘은 얘기하며 울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