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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한국의 인상파, 해주백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흐와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는 고전 미술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마음껏 표현했다. 서양 미술은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까지 감각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해 왔기에 이 단절은 아주 특이한 사건이다. 이 흐름은 피카소와 마티스, 몬드리안과 바우하우스로 이어져 현대 추상주의 미술과 모더니즘 디자인 양식을 낳았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한국 미술과 공예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세기 한국 공예의 특징은 달항아리의 재발견이다. 왜 18세기 달항아리가 20세기 한국 공예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말레비치의 ‘흰사각형’과 같은 러시아 절대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추상 양식으로.. 더보기
돌하르방의 프로토타입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실제로 존재할까. 굳이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곳 중 하나가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상류다. 이곳에 인류 최초의 신전이라 불리는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가 있다. 해발 760m 언덕 정상에 묻혀 있던 괴베클리 테페는 1963년 미국과 터키의 공동조사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유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연대(年代)다. 괴베클리 테페는 약 1만5000년 전부터 기원전 8000년까지 유지되었는데 이 시기 인류는 수렵채집에서 농경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유적에서 야생동물의 뼈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본래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다. 유적 곳곳에 약 200개의 T자형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큰 것은 높이가 거의 6m다. 돌기둥을 세우기.. 더보기
인류 최초의 문자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라스코 동굴 깊숙한 곳에 묘한 그림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토트(지혜의 신)처럼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새인 반인반수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형식이다. 다른 벽화는 대상의 모습을 다소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이 그림은 몇 개의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졌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가장 중요한 의미요소만 남은 상태랄까. 약 1만5000년 전 그려진 터라 이 그림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얼 그리고자 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올림픽의 픽토그램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아이콘처럼. 픽토그램과 아이콘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학자 오토 노이라트에 의해 처음 시도됐다. 디자인 역사에서 이를 ‘아이소타입(Isotype)’이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노이라트는 글자를 모.. 더보기
빗살무늬토기와 브랜딩 빗살무늬토기(사진)는 신석기 농업 문명을 대표한다.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전환되자 수확한 곡식을 저장할 용기가 필요해졌기에 신석기 사람들은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진흙을 적당히 반죽한 다음 둥글고 긴 띠를 만든다. 이 띠를 빙빙 돌려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그릇의 형태가 완성되면 표면에 진흙을 발라 평평하게 만든 다음 장식적인 무늬를 새긴다. 마지막으로 그늘에 말리거나 불에 굽는다. 초기에는 토기를 땅에 묻었기 때문에 아래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표면에 새겨진 촘촘한 무늬다. 자세히 보면 토기마다 무늬가 다르다. 사실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무늬 새기기이다. 그럼 신석기인들은 왜 그토록 정성껏 무늬를 새겼을까? 여기서부터는 상상.. 더보기
구석기 예술과 현대 예술 구석기 예술은 제의(祭儀)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신성한 느낌이 있었다. 농경문명이 시작되고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법이 등장하면서 점차 신성함이 사라졌다. 산업혁명 이후 사진 기술이 발명되자 탁월한 모방도 설 자리가 옹색해졌다. 사진 덕분에 모방의 압박에서 해방된 예술가들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구석기 벽화가 발견되었다. 동시에 아프리카와 태평양 부족들의 예술품들이 소개되었다. 이 예술품들을 통해 예술가들은 그동안 잊었던 예술의 신성함에 새롭게 주목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포토샵 같은 디지털사진 조작 기술이 없었기에 그림은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수월한 방식이었다. 인상파는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고갱과 고흐, 세잔은 소묘 중심의 기존 아.. 더보기
구석기 시대 예술가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기록이 없기에 당시 그림을 그린 예술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동굴 벽화는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져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출입이 용이한 입구에서 생활했기에 벽화가 그려진 장소가 깊숙하다는 것은 특별히 소중한 공간이었다는 의미다. 마치 현대의 성당이나 신전처럼 신성한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동굴 벽화는 사제나 제사장처럼 신성한 공간을 관리하는 주술사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주술사의 성별이다.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오래된 조각에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술사는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단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더보기
가장 흔한 구석기 흔적, 손바닥 가장 오래된 손바닥 도상은 약 5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사실 손바닥 그림은 세계 곳곳의 구석기 유적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은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서 손의 윤곽이 드러나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했다. 그럼 전 세계 구석기인들은 왜 손바닥을 그렸을까? 구석기 시대는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그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양정무는 “원시미술을 볼 때는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손은 나를 표현하고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두 발 보행을 시작한 영장류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도구를 발명하는 등 손을 자주 사용하면서 뇌도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발달된 뇌는 다시.. 더보기
동굴벽화로 살펴본 라스코의 역사 역사는 보통 문헌에 기록된다. 사람들은 생각을 주로 문자로 기록하기에 역사가들은 문헌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피고 구성한다. 만약 문자가 없으면 어떻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이럴 땐 그림이 유용하다. 아이들처럼 그림으로 그리고 말로 보완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구석기 시대가 그랬다. 구석기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그렸다.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 증거다. 만약 이들에게 역사가 있었다면 그림으로 사실을 기록하고 구전으로 전승하며 역사를 계승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석기 동굴벽화는 미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문헌적 가치도 높다. 디자인은 역사와 유사하다. 디자이너도 역사가처럼 그림=문헌을 근거로 상황을 파악해 가설을 세우고 추론한다.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동굴벽화는 이런 방법으로 내용을 파악하기에 적합.. 더보기
신에서 스테이크까지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 몽티냑 마을 소년들이 강아지를 찾던 중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이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사진)이다.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원시미술을 대표한다. 벽화에는 말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머리에 뿔이 달린 가로 길이가 약 4m인 소이다. 이 소는 오록스종으로 스페인 투우에 등장하는 거친 황소들의 조상이다. 구석기인들은 왜 거대한 소를 그렸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 1만년 전 차탈회위크 유적에 거대한 소를 그린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차탈회위크 사람들이 소를 숭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약 5000년 전 크레타섬의 신화에 전설적인 괴물 미노타우.. 더보기
동굴에서 발견한 신화 인간의 조상은 누구일까? 이 문제에 크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동물이다. 전자는 창조론, 후자가 진화론이다. 불과 150년 전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조상은 신이라고 믿었다. 다윈의 이 출간되자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냐”며 크게 반발했지만 다윈의 진화 가설들이 검증되면서 이젠 ‘창조’보다 ‘진화’ 스토리를 믿는 사람이 더 많다. 디자인의 본질은 스토리에 있다. 인간은 경험에 기반한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존재를 이야기로 구성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한다. 사실 진화론도 최근의 발견이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진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군신화가 대표적이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는 본래 곰이었다. 웅녀는.. 더보기
가장 오래된 예술, 춤 무심코 TV를 켰는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음악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방송 제목은 였다. 방송 내내 의사, 뇌과학자를 인터뷰하며 춤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요약하면 단순한 동작의 운동보다 복잡한 동작인 춤이 뇌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쩐지 뇌발달이 가장 활발한 어린아이들은 춤을 많이 춘다.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춤을 권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빼놓고 대중문화를 논할 수 있을까. 춤은 아이돌이나 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일상적인 예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종 행사와 의례에서 춤을 춘다. 나는 예술을 크게 ‘춤’과 ‘건축’으로 구분한다. 두 분야는 모방대상이 다르다. 건축가는 조상의 건축형식을 모방하지만 자유로운 .. 더보기
광화문 현판 ‘광화문’은 세종대왕이 붙인 이름으로 그 뜻은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다.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의 수난 속에서 훼손과 복원의 곡절을 겪어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14일 광화문 현판 글자의 원래 색상이 금박이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다. 옛것의 복원을 내세운 것이지만 이에 대해 다른 시각들도 있다. 한재준, 강병인 등 디자인계 많은 인사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끔 광화문 앞을 걷다가 문득 광화문을 올려다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광화문 뒤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어릴 적 총독부를 무너뜨리는 뉴스를 스쳐가듯 접했지만 별반 감흥은 없었다. 사진을 보고서야 .. 더보기
버려지는 조각, 투빌락 인간은 왜 조각을 할까? 조각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활동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 이상을 담는다. 무덤이나 성전을 지키는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아시리아의 ‘라마수’도 구석기 시대의 ‘사자인간’처럼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아누비스의 머리는 자칼이다. 라마수의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사자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상상은 주어진 감각 재료들을 조립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이론가인 빅터 파파넥은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족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는다. 이들에게 예술이나 디자인 개념은 없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한다. 얼음 벽돌로 조각된 이글루는 로마의 아치형 돔을 연상시키지만 기능은 훨씬 뛰어나다. 밖의 온도가.. 더보기
사자 인간은 누구일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에 독특한 모양의 조각을 소개한다. 몸은 인간인데 얼굴은 사자다. 지금까지 이런 형상의 생명체가 발견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아마 사자 인간이 조각되었던 수만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경험한 적이 없던 이 형상을 어떻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 인간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가령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믿음을 유도하고 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사자 인간은 정말 상상 속의 동물일.. 더보기
동굴에서 아파트까지 “더운 한여름 피서로 동굴이 인기입니다.” 장을 발효시키는 자연동굴에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동굴 관리자는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16도로 유지된다며 자랑한다. 머루를 발효시키기 위해 조성된 인공동굴 온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고 왜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거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동굴은 배후지로서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한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베제레 계곡은 석회암 지역이다. 벽화가 발견된 동굴 중 상당수도 석회동굴이었다. 왜 그럴까? 석회벽이 밝은 흰색이라 그림 그리기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뼈가 칼슘(Ca)..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