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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삼산이용원 삼산이용원에 가면 늘 웃음이 나온다. 사진전 ‘삼천원의 식사’와 ‘자영업자’를 준비할 때, 몇 번이고 기웃거렸던 곳이다. 서로 다른 주제의 사진을 찍는데도 그때마다 끌리는 곳이었다. 일찍이 ‘나는 이발소에 간다’라는 주제로 작업을 했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이발관에 관심을 갖는 일이 여자로서 드문 일이라고들 했다. 미용실에 밀려 사라지게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에 앞서 한때 ‘남자들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나는 시큼털털한 면도용 크림 냄새와 함께 음험(?)한 농담이 배어 있을 것 같은 곳,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가서 의자 팔걸이에 얹힌 판자에 걸터앉아 머리를 자르던 곳. 이발소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붙잡고 함께 늙어가고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삼산이용원의 무심한 주인과 노인장들의 대화는 볼 때마다.. 더보기
돼지고기 한 근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고기와 함께 동네에서 만든 두부 몇 점과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끓인 찌개가 겨울철의 별미였다. 눈길을 따라 마을 안 가게까지 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올 때, 손은 시렸지만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올려진 밥상을 보면 추위가 싹 가시곤 했다. 구례장에 가니 돼지고기를 탁자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팔고 있다. 정육점 앞이었지만 난전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농촌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엔 동네 정육점에 가면 손쉽게 신선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날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귀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 더보기
3000원의 식사 행운집 할매는 자기가 나온 책 (눈빛)를 가져다주러 간 나를 반긴다. 지금은 시장이 모두 새로운 구조로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세 평 남짓한 낡은 가게에 탁자 두어 개와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몇 개가 전부인 허름한 국숫집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이었다.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와 앉자마자 그곳의 분위기가 객쩍은지 한 남자가 친구를 가리켜 무슨 회사 전무라고 하니까 주인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여긴 시인도 오구먼요.” 나는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시인’을 주저 없이 우선으로 여기는 주인장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이 집의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팥 칼국수, 동지 죽으로 단출하다. 잔치국수는 맑은 장국에 양념간장 한 술 넣고 애호박 채 몇 가닥 얹은 국물 맛이 시원하고, 애기상추와 직접 담근 .. 더보기
‘근대화상회’ 그 후 ‘근대화상회’를 찍고 10년이 지났다.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근대화상회’ 주인장의 둘째 사위인데 책에 나온 ‘장인’어른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다음날 큰딸 부부와 작은딸 부부라면서 네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 모두가 ‘근대화상회’가 있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같은 동네 친구들로 아버지 때부터 막역한 관계여서 결혼도 위·아랫집으로 사돈을 맺은 것이다. 백운장은 임실, 성수, 마령, 진안, 백운 등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물건 판돈을 미처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이불 홑청에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꾸깃꾸깃한 돈을 밤새 펴는 것이 일이었다고 큰사위가 입담 좋게 늘어놓았다. 작은사위는 많은 자료를 엮어서 가져왔다. 이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