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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율곡 자운서원 파주 법원리 사거리를 지나 시가지 서쪽 끝지점 우측으로 2차선 도로가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언덕길을 넘어가면 우측에 ‘경기도 율곡교육연수원’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율곡이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연수원 본관과 정문, 경비실 모든 구조물에 한옥지붕이 얹혀 전통의 이미지가 풍겨 나온다. 이 연수원 아래쪽으로 너른 주차장이 있어 이곳이 율곡 이이(1536~1584)의 유적지임을 알려준다. 유적지의 정문인 삼문을 지나니 중앙의 너른 잔디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잔디밭 외곽에는 율곡을 기념하는 공간들과 그 일가의 묘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율곡이나 신사임당을 생각하면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게 되는데 정작 율곡의 본가가 서울 근교인 파주였다니? 율곡이 태어난 곳은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 더보기
고령산 보광사 의정부에서 북한산 외곽을 돌아 고양시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로 겨울길을 달린다. 장흥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용미리로 이어지는 78번 국지도가 이어진다. 이 국지도에서 다시 갈라지는 367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달리면 우측으로 일주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령산 보광사’라고 씌어 있어 국지도에 바로 붙어 있는 사찰이 있음을 알려준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넓은 주차장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 산사까지는 걸어 올라가라는 뜻일 게다. 걸어 올라가야 할 시작점에는 ‘해탈문’이라고 쓰인 또 하나의 자그마한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사찰의 경내임을 알려준다. 보광사의 주산인 고령산(622m)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어서 사찰의 진입로.. 더보기
반구정 무술년 연초.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쌀쌀한 겨울바람을 가르며 나의 운전대는 파주 임진강가에 위치한 반구정으로 향한다. 임진각 직전에 위치한 당동IC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로 1㎞ 정도를 더 가면 ‘방촌 황희선생유적지’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주차장이 나를 반긴다. 고즈넉한 한옥담장과 한옥으로 지어진 매표소는 이곳이 잘 정돈된 유적지임을 암시한다. 이곳이 고려말에서 조선조 세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나라의 살림을 맡았던 청백리 황희 정승(1363~1452)이 말년을 보냈던 데이다. 티케팅을 하고 한옥대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정원이 오른쪽에는 방촌기념관, 그리고 왼쪽에는 영당(影堂)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기념관에서 정승의 일대기를 살펴본 후 영당 쪽을.. 더보기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1호선 전철의 종착지 소요산역 두 정거장 전에 위치한 보산역에 가면 이색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가의 전철역사 옆으로 길게 드리워진 저층 상가들의 모습에서 이국적인 풍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형형색색의 현란한 건물들과 외국어 일색의 간판들은 외국의 한 소도시 모습이다. 교각 밑은 플리마켓 등 다양한 거리축제가 가능한 산뜻한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980~1990년대 음식점, 클럽 등 많은 점포들이 길 건너에 주둔하던 미2사단 2만여명의 미군들을 상대로 크게 성업했던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군들이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곳 상권은 급속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동두천시는 침체된 상권을 살리고자 이곳을 외국인 관광특구로 지정하였다. 건물의 외관을 현란한 그라피티로 덧입히고 다양.. 더보기
첫눈 내리는 허브빌리지 지난 11월20일 월요일. 이날은 연천에 있는 허브빌리지를 방문하겠노라 그곳의 팀장과 약속을 일찍이 잡아 놓았던 날이다. 그날 오후. 쌀쌀한 날씨에 하늘도 잔뜩 찌푸려 한바탕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눈이 펑펑 쏟아졌다. 첫눈 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렸다. 휴대폰의 내비는 목적지를 큰길이 아닌 좁은 산길로 안내한다.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었던 탓에 도로에는 주행이 만만찮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첫눈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다소 긴장한 상태로 조심조심 산길을 넘었다. 다행히 큰길을 만나 잠시 중단되었던 첫눈에 대한 감상에 젖어본다. 그사이 어느덧 차는 목적지인 허브빌리지에 도착한다. 눈이 많이 와서인지 허브빌리지를 찾는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에 팀장과 여유있게 .. 더보기
연천 ‘조선왕가’의 설경 경기 의정부에서 동두천을 지나 연천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는 연천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 우측의 2차선 도로와 만난다. 재인폭포로 이어지는 이 도로를 따라 약 4㎞를 달리면 도로 왼쪽으로 여러 채의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쪽으로 펼쳐져 있는 널찍한 평야는 가슴 시리도록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평야 앞쪽으로는 한탄강이 크게 굽이쳐 흐르고 뒤쪽에는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있어 이 한옥은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가’라는 이름을 가진 한옥 호텔이다. 겉으로 봐서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데 왜 조선왕가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 북쪽에 조선왕가와 무슨 연고가 있기는 한 걸까? 내용은 이러했다. 원래 이 한옥들은 현재 명륜동에 있던, 고종의 손자 이근이 살았.. 더보기
고려의 제례공간 숭의전 동두천을 거쳐 연천으로 가기 전 전곡에서 파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를 접어들면 연천의 유명한 전곡 선사유적지를 지나게 된다. 유적지를 지나 잠시 차를 달리면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임진강변으로 고려시대의 종묘인 숭의전(崇義殿)에 다다른다. 차에서 내려 왕건이 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는 ‘어수정(御水井)’에서 물을 한잔 마시고 홍살문이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경사진 언덕길을 잠시 오르면 우측의 절벽 저 아래로 크게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조선조 태조는 새 왕조를 건설하면서 전통적인 예법에 따라 전 왕조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곳에 왕건의 전각을 세웠고 정종 때는 왕건 외에 고려왕 7명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종 때에는 제후는 5묘를 세워야 한다는 .. 더보기
포천아트밸리 석재는 견고하고 중후하게 보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물의 마감재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재료이다. 석재들 가운데 건물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가 화강석이다. 포천은 그 화강석의 대표적인 주산지로서 ‘포천석’이라 함은 질 좋은 화강석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포천석은 1960년대 이후 국토개발과 함께 전국의 건축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포천시 신북면 일대는 포천석이 많이 생산되던 곳으로 1980년대에는 3만평에 달하는 면적에 종사한 인원이 수백명에 이를 정도였다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오랜 채석으로 채석량도 줄고 값싼 중국산 석재의 수입으로 채석은 사양산업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업체들이 하나둘 떠나간 채석장은 훼손된 자연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훼손된 .. 더보기
묵객들을 유혹한 금수정 경기 의정부를 지나 포천을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43번 국도는 포천의 주요 시가지를 경유하여 강원 철원까지 이어진다. 포천시청이 있는 포천의 중심가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우측에 ‘38선 휴게소’라는 낡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 위쪽이 6·25 이후 수복된 지역임을 암시해 준다. 이 38선 휴게소 너머에는 동에서 서로 흘러 한탄강과 만나는 영평천이 자리 잡고 있다. 다리를 건너 삼거리에서 영평천을 따라 왼쪽으로 얼마간 직진하면 교차로가 나타난다. 교차로 입구에 놓여진 ‘안동김씨고가’ 안내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 오가리 546번지에 도착하면 제법 규모가 있는 멋진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안동김씨 고가이다. 원래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몇 년 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이 고가는 사랑.. 더보기
몽베르CC 클럽하우스 포천의 북쪽에 위치한 산정호수에는 뒤쪽으로 길게 병풍처럼 드리워진 명성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은 아름다워 연중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후고구려를 건국했던 궁예의 한이 서려 있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왕건에게 쫓겨 이 산으로 숨어 들어온 궁예는 최후를 맞기 직전 이곳에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이 산은 명성산(鳴聲山)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호수 좌우에는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궁예가 왕건 군사의 동태를 망보았던 봉우리라 하여 각각 망무봉과 망봉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궁예의 족적으로 망국의 안타까움을 안고 있는 산이다. 이 산정호수 좌측 망무봉 너머에는 명성산을 배경으로 하여 조성된 몽베르CC가.. 더보기
포천 산정호수 포천의 북단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는 명성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에 에워싸여 ‘산속의 우물과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의 산정호수(山井湖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이 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명성산은 후고구려를 건립한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 산에 은거지를 만들어 생활하다 피살되었던 산으로 유명하다. 한때의 영화를 누리던 왕에서 반란군에게 쫓겨 숨어 지내는 처지가 된 궁예는 이 산에서 한동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울음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명성산(鳴聲山·923m)은 ‘울음산’의 한자 표기이다. 호수 옆에 위치한 망무봉(446m)과 망봉산(384m)은 궁예가 왕건 군사의 동태를 망보았던 곳이라 해서 그렇.. 더보기
비둘기낭 폭포 포천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43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도로는 산정호수 진입로 부근에서 크게 왼쪽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이 도로의 첫 교차로에서 왼쪽에 있는 2차선 도로로 핸들을 튼다. 고갯길을 넘어 잠시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리다 보면 차는 곧 넓은 주차장에 다다른다. 주차를 하고 표지판을 따라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우렁찬 폭포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멋진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둘기낭’이다.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은 크고 작은 하식동과 주상절리, 판상절리 등으로 곳곳마다 절경을 만들어낸다. 비둘기낭은 그 절경 중 하나로 현무암 지질구조가 만들어낸 폭포와 폭포 뒤쪽에 반달모양으로 움푹 파인 동굴을 지칭한다. 매년 겨울이면 수백마리의 산.. 더보기
임꺽정의 은신처 ‘고석정’ 1년7개월간의 서울 여정을 마치고 이제 시선을 경기권역으로 옮겨 본다. 경기권역의 첫 대상지는 포천이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어서. 포천을 시작으로 경기북부에서 경기남부로 향하는 드로잉 여행을 새로이 시작해 본다. 그 첫 장소로 한탄강 줄기에 위치한 고석정(孤石亭)을 소개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철원에 속해 있으나 포천의 최북단 관인면 냉정리와 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해서 포천편에서 소개하는 것이다. 한탄강(漢灘江)은 강원도 평강군에 있는 추가령 구조곡이라는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철원과 포천을 거쳐 연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합류되는 길이 136㎞에 이르는 강이다.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려 주변 지형을 깎아 형성된 이 강은 강 좌우로 수직절벽과 협곡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절경을 만들어낸다.. 더보기
롯데월드타워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뀌었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때문이다. 지난 4월2일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롯데월드타워가 강남 스카이라인의 중심에 우뚝 섰다. 2010년에 착공하여 6년 만에 완공된 123층, 높이 555m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다. 아래쪽은 퉁퉁하다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로 한국의 전통 도자기와 붓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높이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 서울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띄는 서울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저층부 포디엄에는 쇼핑몰, 콘서트홀, 영화관 등이 구성되어 있고 중층부에는 오피스와 주거시설, 특급 호텔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특히 저층부에는 7층에 미술관과 8~10층에 2000석 규모의 클.. 더보기
리움 -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를 나와 이태원 방향을 바라보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아치 조형물이 나를 맞이한다. 아치 옆으로 나 있는 우측의 사잇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자연스레 형성된 나지막한 경사로를 따라가면 잠시 후 리움에 다다른다. 주출입구 우측으로 목재 데크의 넓은 열린 공간이 눈길을 끈다. 중앙에 위치한 인도 출신의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작품 ‘큰 나무와 눈’은 방문객의 발길을 열린 공간으로 안내한다. 자신이 애독하던 릴케의 시집 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신들의 형상에 다른 구체의 형상이 반사되어 수많은 구체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2004년에 개관한 리움은 설립자의 성인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의 어미 -um을 합.. 더보기
서초구 명물 ‘아쿠아 육교’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앞 도로에는 2004년 완공된 멋진 아쿠아 육교가 있다.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란 프랑스 건축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 예술원 건축대상을 수상한 후 한국의 고속철도 설계에 참여하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이 아쿠아 육교를 비롯하여 대명비발디파크 소노펠리체, 서래마을 프랑스 학교, 여수세계박람회 프랑스관 등 한국에서도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현재 주한 프랑스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 육교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2002년 완공된 고속터미널 후면에 위치한 ‘센트럴 포인트 육교’를 디자인하였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타워를 이용하여 케이블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사장교(斜張橋)였다. 독특한 형태뿐 아니라 밤이 되면 주변의 교.. 더보기
운현궁 양관 서울 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운현궁 담장을 만나게 된다. 흥선대원군의 집이었던 이 운현궁 뒤편에는 한옥과는 대별되는 밝은 색의 서양 르네상스풍의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운현궁 양관(洋館·양옥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최근 TV 드라마 의 주요 무대로 활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드라마에서 공유와 이동욱이 함께 살고 있는 도깨비의 집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운현궁 양관이니 운현궁에서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운현궁 안마당에서 노락당 뒤쪽을 바라보면 측면 상부만 나무에 가려진 채 살짝 보이는 정도이다. 게다가 운현궁 뒤쪽의 후정은 높은 담으로 막혀 있어서 운현궁에서 양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이 건물.. 더보기
운현궁 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도로에 면해 기와지붕이 얹힌 담장이 도로를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운현궁 기획전시실의 뒷면이기도 한 이 담장은 정문인 솟을대문으로 나를 인도한다. 운현궁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운현(雲峴)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書雲觀) 앞에 있는 고개(峴)라는 의미에서 따 왔다고 한다. 고종이 임금에 오르자 대원군은 자신의 집을 크게 확장하면서 궁이라 부르게 하였고 이후 이 집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다. 운현궁은 원래 지금의 교동초등학교와 삼환기업, 그리고 일본대사관까지 달하는 큰 규모였으나 권불십년 대원군의 몰락과 함께 점차 지금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현재는 입구의 앞마당과 대원군을 지키던 경비들의 처.. 더보기
경희대의 벚꽃 풍경 그동안 신문에 게재해 왔던 서울의 원고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문에 싣지는 못하였지만 책의 분량을 보충하기 위해 얼마간 더 작성해 둔 원고도 있다. 대학 캠퍼스는 앞서 게재하였던 원고들로 마감하려 하였다. 그런데 지난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화제가 된 대학이 있어 다시금 책 원고에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경희대가 바로 그 대학이다. 문재인 대통령(법학 72학번)과 김정숙 여사(성악 74학번)를 동시에 배출한 대학이어서 요즘 이 대학은 큰 경사를 맞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는 벚꽃이 만발할 때면 벚꽃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림은 벚꽃이 한창일 때의 캠퍼스 모습이다. 벚꽃이 만발한 캠퍼스 중앙의 본관과 그 옆의 중앙도서관, 그리고 뒤쪽 언덕에 우뚝 솟아 있.. 더보기
정동교회 -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정동길과 덕수궁길, 서소문길이 만나는 로터리 모퉁이에 세월의 때가 묻은 아담한 교회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중 “언덕길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가사에서 나오는 교회당이 바로 이 교회이다. 그 이름 정동교회.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5년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 사학인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이 정동교회도 창립하였다. 따라서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2년 후인 1887년에는 첨두아치가 두드러진 고딕양식의 벧엘 예배당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교회는 나에게는 뜻깊은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이다. 그 옆에 있었던 배재학당을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일동으로 배재학당의 캠퍼스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