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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비빌 언덕 가만히 한 사람의 이름을 ‘바라본다’. 그녀를 아는 사람 대부분은 본명인 ‘최정은’보다 ‘비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뜻이 꽤 알차다. ‘비빌 언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그녀의 품 넓은 언덕은 보통 밥상 위에 펼쳐진다. 건강한 식재료를 모아 온갖 정성으로 빚어낸 음식들이 마치 예술작품인 양 고고한 자태를 발광한다. 바라보는 순간부터 밥상을 물리게 될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 밥상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주며 어루만져주기까지 하는 느낌을 예외없이 받는다. 세월호 유가족, 국가폭력 고문피해자들을 포함해 사회적 그늘 아래 힘겨워하던 더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밥상, 사람을 절로 행복하게 하는 치유의 밥상이다. 지난 5월 경.. 더보기
두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아끼는 지인이 며칠 전 먼 여행길에 나섰다. 아마 지금쯤이면 커다란 배낭에 한 짐 가득한 여행보따리를 꿰차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옛스러운 골목길을 돌며 동네 주민들과 희희낙락거리고 있을 듯싶다. 출국 전 일부러 찾아온 그녀의 표정은 기대심에 잔뜩 부푼 어린 소녀처럼 맑고 화사했다. 1년 정도 생각하지만 끝날 즈음이 되어 혹시 마음이 내킬 경우 귀국일을 훨씬 뒤로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에 무조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등을 떠밀었다. 오래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아갈 꿈을 꾸어온 것을 잘 알기에 드디어 실행에 옮긴 그녀의 선택과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한 장 찍어드릴게요!” 악수를 나누고 떠나기 전 그녀는 가방 속에서 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더보기
노란 선물 꾸러미 안산에 다녀왔다. 홀로 다녀온 적은 있지만 초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느낌이 항상 있었다. 초대한 이는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이름의 시민모임. 그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라는 제목의 치유적 사진에 대한 강연을 준비했다. 단순한 기념이나 유희적 기록을 넘어 스스로 이루는 행위적 매개물로 사진을 재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강연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에 맺힌 파란 멍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사진과 심리상담을 접목한 사진치유자로 활동해 오면서 지난 5년 동안 늘 마음이 쓰인 곳이 안산이었기 때문이다. 강연 분위기는 뭉클하면서도 따뜻했다. 어릴 적 사진으로 자신을 향한 내리사랑도 .. 더보기
집으로 가는 풍경 하루 소임을 다한 태양이 아직 빛을 잃기 전이었다.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너른 들녘은 초록의 기운을 가득 품은 상태였고 사이사이 놓인 논둑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딛는 산책길은 꽤나 평화로웠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소 떼가 눈에 띄었다. 두세 마리씩 따로 모여 여러 무리를 이루었기에 처음엔 각자 주인도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만끽하게 하는 자연의 일부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덩치가 가장 큰 소 한 마리의 ‘음메에’ 하는 울음소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소들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 색다른 풍경에 집중했다. 소들의 행동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엉키거나 거침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더보기
바다를 품은 아이 우스갯소리 같지만 둘이 대화라도 나누려는 듯이 보였다. 느낌이 그랬다. 아직 기저귀도 못 뗀 사내아이와 세상을 다 덮을 듯 거푸 파도를 내뿜는 바다는 급(?)에 맞지 않는 대화상대였을 터였다. 아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중이었다. 바다는 그런 아이를 너른 마음으로 품으려는 속 깊은 어른의 형상이나 다름없었다. 온몸이 모래투성이인 세 살배기 아이의 이름은 남이윤. 바다보다 더 큰 품으로 어린 아들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빠 종민씨는 아까부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잘 놀아주는 아빠냐고 대뜸 농 섞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친구처럼 편안하다”고 즉답한 그는 자신이 놀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며 지내는 사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아이로부터 .. 더보기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친구 잃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가만히 그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게 부푸는 아름답고 멋진 친구였다. 동갑내기인 데다 자기 분야에서 나름의 열정을 채운 뒤 마흔 즈음이 되어 캄보디아를 찾아 새롭게 인생의 항로를 재설정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과 몸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 친구에 반해 사진작품이나 조금 건지겠다며 허세를 부리던 당시의 나는 비교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힘겹고 고달픈 이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가슴으로 온기를 나누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친구였다. 열악한 환경의 도시빈민촌에 아예 들어가 살면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의 참모습을 경탄스럽게 바라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즉부터 그의 몸에 스민 병마가 아니었.. 더보기
콩새의 귓속말 대화를 끝낸 그는 조용히 평상 위에 누웠다. 가을하늘 품은 햇살이 그의 등을 따사롭게 덮었다. 조금 전 그는 이 옥상 아래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조폭들이니 조심하라는 귓속말을 내게 건넸고 나는 내 안위를 염려하는 콩새의 마음에 고맙다는 화답을 마친 참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진짜가 아니다. 애칭 ‘콩새’로 불리는 그는 후천적으로 생긴 조현병으로 인해 정신장애가 있다. 발병 이후 세상과 담을 쌓은 콩새가 유일하게 집 바깥을 찾는 곳이 이 옥상 아래 입주해 있는 수원정신보건센터다. 우리는 몇 달째 ‘카메라로 세상 마주보기’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오는 사이였다. 심리적 불안 상태라 하더라도 마음을 다한 ‘충고’를 내게 건네는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콩.. 더보기
세월을 품은 향기 가슴에 ‘쿵’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내용설명이 없어도 고스란히 감동이 밀려왔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수없이 보아 왔고 그래서 익숙했던 기존의 감흥들과는 밀도가 꽤 달랐다. 시큰해진 콧잔등을 가린 채 이 사진을 찍은 하동진씨(36)와 이야기를 나눴다. 동진씨는 87세의 고령에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외할머니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몹시 안타까웠다. 문득 고향집 구경을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외갓집을 찾는다. 사진은 그 집 앞에서 오래도록 야채노점을 해온 광산댁 할머니(79)가 대뜸 외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울먹이는 모습의 찰나를 찍은 것이었다. 동진씨는 평생 언니동생으로 우애를 나눠 온 두 분의 ‘애틋한’ 순간을 지켜보면서 뭉클한 심정으로 .. 더보기
세월에 동화되는 시간 한세월 가득한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잦다. 길거리를 지나거나 채비를 갖추어 떠난 여행지 등 어디서나 늘 접하는 평범한 노인들의 얼굴이다. 느낌이 좋다 싶으면 한동안 곁에 쪼그리고 앉는 일도 많다. 언젠가 잘 아는 지인이 내게 “네 사진의 반은 노인들이더라”며 농담을 건넨 적이 있다. 처음엔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노인어른들에 대한 관심 또는 애정(?)에서 비롯된 나의 시선은 어릴 적 경험에서 크게 부여받았다. 방학 때마다 차멀미를 마다하고 찾아간 외갓집에서의 기억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던 그 환한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생을 농사일에 찌들어 검게 탄 외할머니의 얼굴은 내게는 누구와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친숙한 얼굴이다... 더보기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들 보기에 너무 좋아 감동이 일렁이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기분 좋은 여운도 오래 남는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카메라를 들곤 한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어린아이들과 연세 높은 어르신들 그리고 여러 가족이 한데 모여 함께 흥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들 중 유난히 시선을 끄는 참가자들이 있어 짬이 될 때마다 그 옆에 가까이 서서 모습을 지켜봤다. 살아온 세월이 70~80년은 족히 넘었을 동네 할머니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할머니들은 사물놀이패의 구성진 장단에 맞춰 소싯적 솜씨를 자랑하시며 흥겹게 춤을 추셨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오유순 할머니(83)는 점점 솜씨의 수위를 높이시더니 곱게 화장한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춤판을 거두지 않으셨다. 숨겨둔 끼를 죄.. 더보기
늙은 오렌지를 바라본다는 것 사물 하나와 거의 매일 눈을 맞추며 지낸다. 휴일이거나 종일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예외가 없다. 대단히 귀하거나 뭔가 특별한 품새를 지닌 것도 아니다. 통칭 과일로 불리는 오렌지가 그 주인공이다. 애초 입맛을 채우기 위해 과일가게에서 산 여럿 중 하나였다. 사무실 책장 한 귀퉁이에 일부러 두고 바라본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시간의 궤적이 쌓이는 동안 당연히 오렌지의 외양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싱싱한 상태로 내 앞에 ‘생성’되었던 오렌지는 어느새 특유의 주황빛과 탄력을 거의 잃은 ‘소멸’의 시기에 들어선 지 오래다. 바닥에 닿는 부분에는 곰팡이까지 잔뜩 피어 있고 시큼한 냄새도 별로 좋지가 않다. 썩어서 퇴화 중인 보잘것없는 사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이 생성과 소.. 더보기
광식씨의 세상나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양파를 다듬고 있었다. 인사 한마디 건네볼까 싶었지만 방해될 게 뻔해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말을 붙일 수 있었다. 말을 붙이려던 이유는 단순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쯤 아랑곳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나이 쉰을 넘긴 그의 이름은 김광식. 1급 지체장애를 가진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1998년 여름 경상북도 문경 인근의 한 작은 농촌에서 열린 장애인농활 행사 즈음 시작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몸에 새겨진 장애와 상관없이 그의 몸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지런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떠다닌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에게 버려진(?) 아픈 기억도 구타와 통제가 심했던 장애인시설에서의 성장 과정도 .. 더보기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 어버이날 다섯 살 딸아이에게서 꽃편지를 받았다. 동년배 친구들은 자녀 대부분이 대학생이거나 성년이 되었는데 아마도 이날 손편지의 ‘맛’을 진즉에 다 보았을 터였다. 비록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손길로 잘 다듬어져 있긴 했어도 뒤늦은 나이에 어린 딸아이의 사랑 가득한 선물을 받고 보니 뭉클한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다. 뭉클함의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체취가 덩달아 그리워져서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2년 전에 급작스러운 병환으로 먼 길에 드셨다. 숨을 멈추시던 새벽 그 긴 시간 동안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한없이 흘리던 눈물도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아직도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밑반찬이 냉장고 깊숙이 보관되어 있다.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직접 만들어 주신 멸치와 콩을 볶.. 더보기
5월의 소망을 품고 5월에 들어선 때문인지 어린아이들이 눈에 자주 든다. 푸른 5월의 하늘처럼 맑은 기운이면 좋으련만 근래 들어 전파를 타고 들리는 가슴 아픈 소식들 탓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더 많다. 그 먹먹함에 크게 절망했던 오래전 기억이 하나 있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잠시 머물렀던 때다. 현지의 분위기는 우려를 훨씬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폭음과 성한 데 없이 총탄 자국으로 가득한 건물 담장들 사이에서 만난 아이들은 낯선 동양인의 출몰을 동심 어린 호기심으로 맞이해주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총질을 하는 것은 물론 나름 선의로 준비한 과자봉투를 빼앗아 내 얼굴에 던지기도 했다. 심지어 내 등에 돌을 던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려움은 날 선 눈빛과 거친 행동 때.. 더보기
허리에 파스 붙이는 날 ‘경기장’ 한가운데서 허리가 꺾이는 즐거움을 경험했다. 실제 허리가 휘는 듯한 통증이 있었음에도 히죽히죽 자꾸 웃음이 나왔다. ‘놀아주기’ 임무를 부여받은 나는 스무 명의 6세에서 7세 사이 ‘꼬마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를 반복했다. 서너 명씩 조를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진 선수들은 쉼 없이 나를 호출하며 자기네 조와의 맞상대를 강요하거나 숨넘어가는 미소로 유혹하기도 했다. 결기를 가득 품은 한 선수는 손수 종이로 만든 광선검을 자랑하다가 빈손인 나를 측은히 여기고는 즉석에서 검을 만들어 주는 통 큰 배포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닐곱 명의 또 다른 선수들은 저마다 책 한 권씩을 들고 먼저 읽어달라며 매달렸다. 동시에 꽤 튼실해 보이는 두 소녀 선수가 양쪽 어깨에 사이좋게 걸터앉은 채 .. 더보기
선 위에 선 꽤 의미 있는 전시회의 준비과정에 함께했다.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둔 이 전시의 제목은 ‘선 위에 선’. 과거 군부정권들이 득세했던 시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 중 아홉 명이 주인공이다.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일상화된 고문에 의해 온몸과 마음을 다쳤던 사람들. 류낙진, 박성준, 석달윤, 신영복, 안승억, 오병철, 이구영, 이명직, 이준태 선생 등 ‘장기수’로 명명됐던 이들은 각각 수십년에 이르는 수감생활을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배울 수 있었던 서예를 통해 자기 생의 긴 일부를 지켜냈다. 이 전시를 공동주최한 대표적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은 ‘붓이 그려낸 선 위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 더보기
관식이 엄마 그녀의 노란리본이 또 눈에 들었다. 리본은 의자 뒤에 걸린 배낭에 가만히 달려 있었다. 내 가방에도 달린 똑같은 노란리본이지만 그녀의 것을 볼 때마다 뭉클한 기운이 하나 더해진다. 이제 다시 오는 ‘그날’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관식이 엄마’로 불린다. 엄연히 세 글자 이름이 있음에도 어디서든 그리 불리는 것에 각별하고도 애틋한 감흥을 품는다. 자식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관식이는 12년 전 5월 어느 날 엄마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가던 중 당한 교통사고 탓이다. 그녀는 오래도록 절망했다. 수도 없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을 원망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했다. 그녀는 수많은 이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또다시 가슴이 무너졌다. 무심한 .. 더보기
강아지가 있는 풍경 참새 한 마리가 사무실 창문에 부딪쳤다. 둔탁한 파열음이 거칠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 뼘 남짓한 난간에 쓰러진 참새는 파르르 몸을 떨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하필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던 터라 시선을 돌릴 겨를도 없었다. 심하게 다친 듯 목 부위가 뒤로 꺾인 참새를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잠시 허둥대다가 거두어 주기라도 할 생각에 다시 창가로 향했다. 참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3층 아래로 떨어졌을까 내려가 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날갯짓을 했겠지만 그 몸 상태로는 멀리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하루 전 가족들과 시골길을 운전하다가 로드킬된 동물을 네 마리나 목격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기운을 달래며 잠시 기억 하나.. 더보기
오랜 아침 풍경 매일 아침 한 ‘아이’의 전화가 걸려온다. 햇수로 10년이 꽉 찬 오랜 일상이다. 내용은 거의 같다. “삼촌! 보고 싶어요. 우리 언제 만나요?”로 시작해 예외 없이 “꼭 다시 만나요”라는 인사로 마무리된다. 분주한 아침 시간인 탓에 차분하게 맞이하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전화가 없는 날은 허전할 정도로 익숙한 일과다. 아이의 이름은 ‘서희’. 서울 소재 한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2010년 봄 처음 만났다.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아이는 이제 서른 살 ‘어른’이 되어 있다. 서희는 선천성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몸은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세상에 대한 인지능력은 예닐곱 살 정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사진놀이에 재미를 붙이게 된 후 서희는 카메라를 들고 .. 더보기
한 청년의 웃음을 품은 시선 자신의 인생경로를 바꾼 한 청년이 있다. 마음이 서니 행동이 뒤따랐다. 우선 들어가기 어렵다는 외국계 대기업의 정규직 자리를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다. 주변 지인들의 염려 가득한 만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설명으로 대부분 ‘설득’되었다. 그는 굴레와 격식에서 벗어난 가뿐한 몸으로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이끌리는 곳이 있으면 떠날 날을 정하지 않고 머무는 일도 잦았다. 특히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감이 주는 느낌에 큰 감동을 얻은 ‘부르키나파소’에서의 경험은 또 한번 청년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졌다. 1년을 넘게 머물며 매일같이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던 어느 날 그는 세상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다는 강한 성찰의 시간을 체험했다. 그때까지 단순히 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