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건축과 장소, 그리고 시간

오만과 편견의 아베도 이 건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착공을 앞두고 있던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의 설계를 원천적으로 바꾸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공사비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이유를 받아들였다지만 사실은 더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이 경기장은 그 크기나 모양이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단게 겐조가 설계한 기존의 경기장들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모습에, 건축계를 중심으로 건립 반대운동이 일었던 차였다. 점잖은 인품을 지닌 노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까지 그 선봉에 있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싫어하는 일본의 지식인과 건축가가, 남이 설계한 작품 그것도 공모형식을 통해 당선된 세계적 외국 건축가의 건축을 두고 안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며 어쩌면 금도를 벗어나는 태도였지만, 도쿄의 전통적 풍경을 해칠 것을 확신한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우주선을 닮은 그 경기장의 당선자는 자하 하디드며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인 이 여성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건축가다.

재작년의 일이다. 베이징에 하디드가 설계하여 지은 갤럭시소호라는 이름의 주상복합 건축에 대해 영국왕립건축협회에서 국제건축상을 수여하려 하자 ‘베이징 문화유산보호회’에서 항의서한을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33만평방미터 규모의 이 거대 건축은 베이징의 고유 풍경에 대한 전형적 파괴행위였으며 유산보호법규마저 수없이 위반한 바 있다”라는 힐난으로 그 서한은 시작한다. “이 건축이 베이징의 옛 거리 풍경과 역사적인 도시구조, 전통적 주거단지의 보존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는데도, 이를 시상하는 행위는 힘 있는 또 다른 이들에게 문화유산의 파괴를 더욱 부추기는 일”이라고 적시하면서 “영국왕립건축협회가 이런 분별없는 개발로 중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이해해줄 것”을 촉구하고 항의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우려한 베이징의 문화유산 파괴행위는 하디드가 처음이 아니다. 예컨대 톈안먼 광장 인근에 세운 오페라극장은 베이징 전통가옥인 사합원 수백채를 멸실하고 얻은, ‘달걀을 반으로 쪼개어 뒤집어 놓은’ 거대 구조물이었다. 또한 베이징의 현대적 상징이 된 듯한 CCTV 사옥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거대 건축으로, 엄격한 질서를 가지고 있었던 역사도시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갱신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후퉁과 오래된 건축들이 속속 파괴되었고, 그 역사적 기억이 누적된 땅 위에 짓는 건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시정부와 디벨로퍼들은 외국 건축가들을 대거 초청하여 마음껏 설계하도록 부추겼다.

물론 이런 반달리즘적 현상을 비판하는 지식인층이 등장하기도 했다. 어떤 문화평론가는 “서양 자본주의 광기가 베이징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는 글을 쓰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미, 베이징은 서양 건축가들이 자국에서 할 수 없었던 건축을 마치 분풀이하듯 쏟아낸 각축장이었으니, 이 2000년 역사도시의 땅은 현대도시의 꿈을 잉태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그들 욕망을 받아내었다. 갤럭시소호는 그런 문화제국주의에 중국의 지성들이 집단으로 분노하여 항의한 첫 번째 사건이 된 것이다.


하디드의 우주선 같은 건축이 급기야 서울에도 등장했다. 동대문 옆, 디디피(DDP)로 불리는 이 건축도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탄생했다. 이 땅은 서울의 옛 성곽이 지나간 중요한 지점이며 조선시대 훈련도감이 있던 곳이었다. 또한 낙산과 남산을 이어주는 구릉이 있어 수십년 동안 서울시민들의 격정과 환호를 뿜어내게 한 경기장이 위치했으니 수백년 역사적 기억이 누적된 중요한 장소였다. 그러나 영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정한 심사위원회에서 선택한 당선안은 이 모두와 어떤 관계도 가지지 못하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착공을 앞두고 지표조사를 시행하던 중 당연히 옛 성곽의 유구가 나타났고 땅속에 묻혀 있던 이간수문 같은 중요한 역사유적이 드디어 발굴되었다. 그러나, 약간의 설계변경으로(그러나 이로 인한 추가 비용은 막대하였다) 이 역사적 사실을 초현대식 건축 뒤에 숨게 하고 만다. 발굴된 조선시대 주거지는 불청객의 모습으로 뭉뚱그려 초라하게 전시되었으니, 능멸이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_경향DB



한 일간신문과 건축잡지가 공동으로 건축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에서 (속절없는 기획이었지만) 이 건축은 완공되기 전인데도 서울에 있는 최악의 현대건축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예정했던 공사비를 몇 배 초과한 이 비싼 건축이 용도조차 애초에 불분명하여 그 용처를 찾느라 애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 우여곡절의 건축이 완공되고 일반에게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건물의 곡선과 현란한 공간의 형상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세계였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찾아들 정도이니 대단한 성공으로 여겨졌다. 그 틈에 이를 기획했던 전임 시장까지 은근히 나서 본인의 업적이 후임 시장의 잘못된 정책으로 오도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우주선 같은 건축이 역사적 사실을 파괴했다고 해서, 장소에 대한 기억을 상실시켰다고 해서, 주변과 생뚱맞다고 해서, 그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 건축을 없앨 수 없다. 오히려 이 건축은 하디드의 다른 건축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대단히 아름답고 기념비적이다. 이미 시민에게 대단히 사랑받기 시작한 이 건축을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여 이 시대가 만든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 만들어야 할 책무도 우리에게 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또 하나의 일이 있다.

19세기 말 에펠탑이 파리에 세워졌을 때, 도시미관을 해친다며 파리의 지식인들이 대거 항의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반대의 선봉에 있던 모파상은 이 흉물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장소가 이 탑의 식당밖에 없어 그곳에 간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에펠탑 없는 파리를 생각할 수 있는가? 또한 파리의 화려한 풍경을 만드는 대로들도 19세기에 빈번했던 군중 소요사태를 쉽게 진압하기 위해 미로처럼 얽힌 가로망을 불도저로 밀며 만든 결과라고 한다.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만든 샹젤리제나 오페라거리지만 이 거리 없는 파리의 모습을 이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이 디디피도 서울의 풍경을 그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건축을 만든다. 그러나 그게,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희생시켜 얻은 것임을 아는 나는 너무도 뼈아프다. 다시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런 글로라도 사라진 기억을 전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너무 무력한가?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