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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격리

휴고 건즈백, The Isolator, 1925 ⓒSyracuse University Libraries,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예술계 정보를 전하는 웹사이트 이플럭스를 열었더니,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휴고 건즈백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인류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볼 만한 키워드, 읽어볼 만한 글을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에디터는 그 첫번째 키워드로 ‘전염’을 제시했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한 휴고 건즈백은 발명가이자, 저술가, 잡지 발행인으로 살면서 기발한 발명품을 발표하고, 과학소설 잡지를 창간하는 등 현대 기술을 예견하고 과학소설의 미래를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발명품 ‘아이솔레이터’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야를 한정시키는 도구다. 나무로 제작한 헬멧에 산소통을 연결할 수 있어 착용해도 호흡엔 지장이 없다. 사무실 안에서 주변과의 관계를 기능적으로, 또 선언적으로 차단하는 이 도구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환경으로부터 직장인을 보호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행동강령으로 선포된 현재, 우리가 처한 자가격리의 상황은 ‘아이솔레이터’로 활용 가능해 보인다. 일상의 흐름을 무너뜨리면서 생존을 위협하고, 혼돈과 침체에 빠뜨리는 이 멈춤과 격리의 상태가,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사회적 관계를 무한 증식시키고, 만남의 관성을 끊지 않은 채 매일을 ‘이벤트’처럼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고독’을 격리된 방 안에서 마주한다. 서로를 멀리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는, 곧 지금과는 단단히 달라진 세계가 오고 말 것이라는 걸 예견하며 방 안에 앉아 있다.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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