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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관용의 배

일리야&에밀리아 카바코프, 관용의 배, 2005년부터 진행 중, 혼합재료, 설치 ⓒThe ship of Tolerance


일리야와 에밀리아 카바코프는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진 어린이들을 예술언어로 교육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기획했다. ‘관용의 배’라고 명명한 이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민족의 어린이들과 예술가들이 ‘관용’을 주제로 3~4주 워크숍을 하고,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돛을 만들어 배에 달고 출항시키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이 작업의 바탕에는 인류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하는 카바코프의 질문이 담겨 있다. 더불어 이 작업은 분열된 공동체를 예술의 이름으로,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시도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가들은 문화권마다 관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워크숍을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과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어린이들은 워크숍 과정에서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론하면서 관용의 의미에 다가선다.


2005년 이집트 시와를 시작으로 베네치아, 마이애미, 아바나, 모스크바, 브루클린, 로마, 로스토크, 시카고, 런던 등지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각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현실에 따라 작가들에게 난제를 안겨줬다. 세상에 관용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이름’만 남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작가와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조율하며 기념비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간 모양이다. 


카바코프는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한들, 세상은 전처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관용의 배에 함께 오른다면,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오지 않겠냐는 희망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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