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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기억저장소

마크 레키, Dream English Kid, 1964-1999AD, 2015, 4:3films, 5.1 surround sound, 23분 2초 ⓒMark Leckey, Cabinet London


이제,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뮤지션 양준일에 대한 정보는, 그가 <슈가맨>에 나와 이슈몰이를 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을 떠다녔고, 사람들은 20년 전 영상 속 그의 모습을 ‘시간여행자’라 호명하면서, 바로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기억과 시간에 접속했다.


유튜브에서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부틀렉 음원을 발견한 작가 마크 레키는, 1979년 그의 나이 15세, 리버풀의 클럽 ‘에릭’에서 이 밴드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밴드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음원은 그의 15세를 환기시켰다. 어느 정도 희미해진 그의 기억들이 온라인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반기를 ‘온라인 데이터’로 정리하기로 한다. 


그는 영화, 광고, 뉴스, 드라마, 뮤직비디오 영상을 뒤적이며 자신이 태어난 1964년부터 Y2K버그에 대한 염려가 온·오프라인의 세계를 위협하던 1999년까지, 그의 인생에 닿아 있는 정보들을 찾아냈다. 1964년에는 미국의 무인 달 탐사선인 레인저 7호가 달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고, 1983년에는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했다. 비틀스가 전 세계 음악팬의 인기를 휩쓸었다. 레이브 파티가 젊음을 흔들었다. 유튜브, 비메오에서 추출한 많은 푸티지들을 자신의 호흡과 템포로 매만지니, 그의 기억에 닿는 모양새로 얼추 끼워맞춰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내가 했던 경험들을 복제하려는 것 같다.”


그가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 엮는 이 작업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나와 나의 세대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다루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는 작가는, 온라인에서 우리의 과거를 집단기억으로 부활시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은 왜곡과 삭제의 과정을 거칠지언정,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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