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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동굴에서 아파트까지


“더운 한여름 피서로 동굴이 인기입니다.” 장을 발효시키는 자연동굴에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동굴 관리자는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16도로 유지된다며 자랑한다. 머루를 발효시키기 위해 조성된 인공동굴 온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고 왜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거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동굴은 배후지로서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한 최적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베제레 계곡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베제레 계곡은 석회암 지역이다. 벽화가 발견된 동굴 중 상당수도 석회동굴이었다. 왜 그럴까? 석회벽이 밝은 흰색이라 그림 그리기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뼈가 칼슘(Ca)이기에 같은 칼슘인 석회가 친숙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시멘트의 주원료도 석회다. 구석기인들의 동굴과 현대의 건축재료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동굴 밖으로 나왔다. 정착을 시작한 신석기인들은 동굴을 찾아다니지 않고 땅 위에 동굴을 지었다. 신석기 도시 유적으로 여겨지는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차탈회위크(Catalhoyuk)가 대표적이다. 복원된 조감도를 보면 건물 모양이 독특하다.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전체가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출입구가 천장에 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건물 위로 다닌다. 땅 위에 지어진 이 거대한 인공동굴에 8000~1만명 정도가 거주했다고 하니 아마도 옥상이 거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건축재료와 공법이 발전을 거듭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수십층 높이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차탈회위크의 수평 건물이 수직축의 빌딩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땅속이 아닌 20~30층의 하늘에서 생활한다. 공간의 효율성은 좋아졌지만 에너지 효율성은 떨어졌다. 동굴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지만 현대의 아파트는 반대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여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야만 한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구석기 동굴과 아파트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일까? 인류문명과 기술의 발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가끔은 인류문명의 방향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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