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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돼지고기 한 근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 김지연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고기와 함께 동네에서 만든 두부 몇 점과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끓인 찌개가 겨울철의 별미였다. 눈길을 따라 마을 안 가게까지 가서 두부 한 모를 사올 때, 손은 시렸지만 뜨끈뜨끈한 김치찌개가 올려진 밥상을 보면 추위가 싹 가시곤 했다.


구례장에 가니 돼지고기를 탁자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팔고 있다. 정육점 앞이었지만 난전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농촌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엔 동네 정육점에 가면 손쉽게 신선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날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예전처럼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귀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 장날에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장에 나오면 푸줏간에 들려 ‘좋은 부위’로 고기 근이나 끊어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겐 비싼 소고기보다는 싼 돼지고기에 눈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는 잔칫날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오줌통은 이미 사내아이들의 차지가 되어 축구공으로 쓰이고, 머리 따로 내장 따로 부위별로 잘라놓고 서로 나누어 가져가던 생각이 난다. 시골 장은 아직도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정육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고기가 한 근(600g)이다. 앞다리 부위로 한 근에 6000원인데 5000원만 내라고 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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