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지연의 미술 소환

불면증의 무게

류샤오동은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광장의 풍경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이미지 스트리밍 데이터를 수집하여 컴퓨터로 보내고, 컴퓨터는 그 데이터를 로봇에 전달하고, 로봇은 전달받은 정보로 그림을 그린다. 간혹 인터넷의 버퍼링이 심하거나, 끊어지거나 심지어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 전송이 멈추고 로봇의 붓질도 멈추지만, 그 결과 캔버스 위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기꺼이 예술의 한 부분이 된다.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요한 풍경에 동선을 그을 때, 로봇의 붓질은 캔버스에 추상적인 선을 쌓는다.

 

류샤오동, 불면증의 무게,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300㎝, 리손갤러리(런던) 설치 장면

 

모순과 갈등이 있는 어딘가, 역동적인 현실이 놓여 있는 바로 그곳에 이젤을 설치한 후, 매우 성실한 태도로 풍경과 사람들의 초상을 기록하던 그가 로봇에 붓을 맡긴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묻는다. 화가는 쉼 없이 작업하는 로봇을 통해 놀라움으로 가득 찬 회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타인의 삶을 작업 안에 함부로 요약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로봇의 ‘객관’에 의미를 둔다. 그려야 할 화면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작업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주체로서의 작가 자신이 로봇 뒤에 있긴 하지만, 기계의 눈과 손을 빌리면, 자신의 태도나 입장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는 그렇게 ‘객관적’이고 싶다.

 

그는 간혹 로봇의 붓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프로그래밍한 방향과 관계없이 이질적인 선을 긋는 것도 보았다. 30년 이상 빈 캔버스 앞에서 암담함을, 망설임을, 불안함을, 설렘을 느껴왔을 화가는 로봇의 흔들리는 붓질에서 동질감을 발견한다. 작업에 투입되면 일을 멈출 수 없는 로봇의 불면에서는 우울함마저 느낀다. 그래서 그는 이 시리즈의 제목을 ‘불면증의 무게’라고 정했다.

 

화가가, 어떤 식으로든 계속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쓸모 있는 이 시대에 예술가란 쓸모없는 존재이며, 쓸모없음이야말로 예술가의 존재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안, 로봇은 불면의 시간을 캔버스에 쌓으며 예술을 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말감  (0) 2019.03.25
화이트앨범을 삽니다  (0) 2019.03.11
카를 라거펠트  (0) 2019.02.25
미래를 위한 그림  (0) 2019.02.18
허니문  (0) 201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