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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읽기

사자 인간은 누구일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 독특한 모양의 조각을 소개한다. 몸은 인간인데 얼굴은 사자다. 지금까지 이런 형상의 생명체가 발견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아마 사자 인간이 조각되었던 수만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경험한 적이 없던 이 형상을 어떻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순간 인간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집단을 응집시키기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가령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허구적 신화나 신을 만들어 믿음을 유도하고 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말하고 사자 인간 조각을 증거로 제시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사자 인간은 정말 상상 속의 동물일까?” 나는 상상력으로 작동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사피엔스가 살던 동굴에 들어가 사자 인간을 찾아보았다. 앗 저기 있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자 인간을 조심스레 따라가 보았다. 그는 커다란 모닥불이 있는 거대한 공간에 도착했다. 벽면에 그려진 동물들은 일렁이는 불빛에 살아 있는 듯 꿈틀댄다. 그는 사피엔스들 앞에 나와 뭐라 웅얼거리더니 춤을 추며 의식을 주도한다.


요란한 의식이 끝나고 다소 지친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자탈을 벗는다. 아 사자 인간은 사자탈을 쓴 주술사였구나! 아마 용맹을 상징하는 부족의 주술사였을 것이다. 그의 보금자리는 다른 사피엔스들이 사는 동굴 입구가 아닌 깊숙한 안쪽이다. 그는 사냥이나 채집에 참여하지 않고 벽화를 그려 신화를 기록하거나 종교의식을 주관한다. 가끔은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사피엔스들에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을 선사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 주술사의 선반에 놓여 있는 작은 사자 인간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상상을 하니 헷갈린다. 하라리 말대로 사자 인간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조각일까. 아니면 누군가 주술사를 보고 재현한 조각일까. 하긴 사자탈도 주술사의 상상력에 의해 디자인된 것이니 하라리의 주장이 틀릴 것은 없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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