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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시계 지우는 사람

다른 시간대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국제공항에서 시계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동안 신체 시간이 엉켜버린 이들은, 시계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간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국제선 라운지에서 유럽 대륙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여행객이라면, 천장에 매달린 대형 시계 속 노동자의 안내에 따라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그는 3m 높이의 시계 안에서 1분마다 분침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마르텐 바스, 리얼 타임, 2016 스히폴 공항 설치 ⓒ마르텐 바스

 

롤러로 시곗바늘을 그린 뒤, 잠시 시계 안을 서성이거나 구석에 세워둔 붉은색 양동이에 노란 걸레를 헹구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다음 1분이 다가올 즈음이면 다시 노란 걸레를 들고 분침을 지운다. 롤러는 다음 ‘분’으로 향한다. 언제 출근과 퇴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노동은 진행 중이며, 그의 뒷모습이 시계 뒤편, 그가 출퇴근할 때마다 여닫을 게 분명한 출입구 작은 창문으로 아련하게 흔들린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는 스히폴 공항이 개장 100주년을 맞이하던 2016년, 국제선 라운지에 ‘리얼 타임’이라는 제목의 이 시계를 설치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실제 시간의 길이가 같을 때를 ‘리얼 타임’이라고 칭한다. 나는 시곗바늘이 말 그대로 실제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시계의 콘셉트로 ‘리얼 타임’을 활용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시계 안에서는 오히려 실제 시간이 추상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12시간 퍼포먼스 영상 ‘리얼 타임’으로 흐르는 시간의 실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퍼포머의 푸른색 작업복은 공항의 청소노동자를 상징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청소노동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시계 안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근면성실함 덕분에 ‘시간의 실체성’이 노동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서 흐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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